2018회계연도 예산안은 4조 1,000억 달러이다. 특히 이번 예산안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 스탬프 예산을 1,930억 달러 삭감했다. 그리고 대학생 학자금 지원예산을 1,430억 달러, 장애인 지원 예산 720억 달러를 삭감했다. 감세 정책으로 인해서 고액연봉을 받는 부자들에겐 엄청난 혜택을 주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세수 부족은 극빈층을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 예산을 확 줄여서 예산의 균형을 잡는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공화당 하원 의장 폴 라이언은 마침내 오바마의 비대한 예산안이 막을 내렸다고 했다.

미국인 5명중 1명은 메디케이드를 10명중 1명은 푸드스탬프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메디케이드와 푸드스탬프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극빈층은 절대다수 노인, 장애인, 결손 가정이다. 이들에게 이런 사회 안전망이 축소된다는 것은 생존에 직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사회안전망 예산을 삭감하고 민관 인프라투자 펀드에 2,000억 달러를 지출하고 국방비를 540억으로 늘리기로 했다고 한다.

2016년도 6월 미국의 진보적인 논객인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가 트루스디그(Truthdig)라는 매체에 기고 한 글에 의하면 미국의 25% 가구가 월수입의 70%를 집 렌트비 내는데 급급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하루아침에 홈 리스로 전락한다고 한다. 그러니 대도시 슬럼지역은 한 집에 몇 가구가 같이 사는 일들이 흔하고, 작은 집에 과밀 인구가 함께 거주 하다 보니 삶은 더욱 팍팍 해진다. 이런 25% 가구의 가장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수입이 끊어질 때 푸드스탬프나 메디케어는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사회안전망이 된다. 그런데 사회안전망마저 무너지고 있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27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2018회계연도 예산안은 4조 1,000억 달러이다. 특히 이번 예산안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 스탬프 예산을 1,930억 달러 삭감했다. 그리고 대학생 학자금 지원예산을 1,430억 달러, 장애인 지원 예산 720억 달러를 삭감했다. 감세 정책으로 인해서 고액연봉을 받는 부자들에겐 엄청난 혜택을 주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세수 부족은 극빈층을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 예산을 확 줄여서 예산의 균형을 잡는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공화당 하원 의장 폴 라이언은 마침내 오바마의 비대한 예산안이 막을 내렸다고 했다. 미국인 5명중 1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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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시작과 함께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왕성하게 행정명령을 내렸던 트럼프 대통령, 미국내 1,200만 서류미비자들과 멕시코 특히 중동 출신 이민자들에겐 공포였지만 반 이민행정명령안은 55%의 지지도를 나타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연이어 내놓은 대규모 감세정책은 주가를 최고치로 뛰게 했다. 그러나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고 트럼프 케어를 하겠다고 하자 갑자기 오바마 케어의 인기가 높아지고 트럼프의 인기는 35% 아래로 떨어졌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20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임기 시작과 함께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왕성하게 행정명령을 내렸던 트럼프 대통령, 미국내 1,200만 서류미비자들과 멕시코 특히 중동 출신 이민자들에겐 공포였지만 반 이민행정명령안은 55%의 지지도를 나타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연이어 내놓은 대규모 감세정책은 주가를 최고치로 뛰게 했다. 그러나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고 트럼프 케어를 하겠다고 하자 갑자기 오바마 케어의 인기가 높아지고 트럼프의 인기는 35% 아래로 떨어졌다. 또 시리아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시리아의 화학무시 사용에 대하여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고, 북한의 핵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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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만주지역에는 고구려와 발해 멸망 후 거란의 지배하에서 설움을 받던 여진족이 있었다. 혹자는 이들이 고구려의 려자와 진(발해)나라의 후손이라는 뜻으로 려진(女眞)이라고 불렸는데 이후 조선과 명국이 낮춰서 기록하면서 麗를 女자로 해서 기록했다고도 한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13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오늘날 만주지역에는 고구려와 발해 멸망 후 거란의 지배하에서 설움을 받던 여진족이 있었다. 혹자는 이들이 고구려의 려자와 진(발해)나라의 후손이라는 뜻으로 려진(女眞)이라고 불렸는데 이후 조선과 명국이 낮춰서 기록하면서 麗를 女자로 해서 기록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이들을 우린 그저 북방 오랑캐로 알고 있는데 요즘 학자들이 연구를 하다 보니 이들이 세운 금(金)나라를 김씨의 나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하여튼 금나라를 세운 아구다(아 )의 성은 완완( ) 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무덤에는 성을 金으로 표기했다. 금나라는 만주의 팔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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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핵심은 감세와 보호무역이다. 사실 감세 정책은 공화당의 당골 정책이다. 감세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대통령이 레이건과 아들 부시 대통령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소득세율은 91%에 서 70%로 낮춰졌으며, 법인세율도 52%에서 48%로 낮춰졌다. 이로 인해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고질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감세정책이 실시된 후 5년이 되는 1986년에 재정적자는 무려 2,21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 빚을 갚기 위해서 클린턴 민주당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결국 극빈자들에게 지원하던 혜택을 많이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 여파는 1992년 LA 폭동의 원인인 절대 빈곤과 공권력의 충돌로 나타났다.

또 한번의 감세정책은 클린턴 행정부가 빚을 다 갚고 흑자재정으로 만들고 실업률도 6.5%에서 3.9%로 떨어트린 이후 아들 부시 대통령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너무 비대한 정부운영을 했다고 하면서, 작은 정부를 주장 했고, 자본이득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20%에서 15%로 인하하고 배당금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35%에서 15%로 인하 하였다. 그리고 2007년 미국은 1930년 대 공황이후 가장 혹독한 금융대란을 맞이하였고 미국의 경제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감세정책의 결과는, 부자들은 더욱더 부자가 되게 하였고 중산층들은 급격하게 무너지고 극빈자들은 하루 1달러를 쓸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하여 사회안전방이라 할 수 있는 소셜 웰페어는 지속적으로 삭감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공공시설들의 낙후화를 가속하였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레이건 행정부는 소비에트연방과 무기경쟁을 위한 스타워즈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제정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군수산업에겐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부었다.

특히 작은 정부를 주장하였던 아들 부시 정부는 반테러 전쟁을 위하여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였고 곧 이어 이라크전쟁을 벌여서 마침내 미국 정부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정부재정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금융대란으로 이어졌고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오바마 정부는 양적완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부자들의 빨때 월스트리트에 돈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월가가 회복되자 월가의 부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은 돈을 갚기는커녕 엄청난 이윤이 발생하자 자기들 성과급으로 나누어 갖기에 바빴다. 그리고 미국의 부자들은 더욱더 부자가 되었고 이제 미국에 중산층은 희귀한 계층이 되고 있다.

2017년 지금 미국정부는 거의 20조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이걸 국민 1인당으로 나누면 5만8,000달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로 나간 미국의 기업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법인세를 15%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이정도 세율은 조세회피처 국가들과 동일한 것이다. 거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군을 만들기 위해서 국방비를 10% 증액하고 외교상 하던 대외 원조를 확 줄이고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Made in USA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싸게 들어오는 상품들에 고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우린 그동안 값싼 생필품들을 수입해서 사용했는데 이젠 거기에 대폭 인상된 관세까지 내야한다. 문제는 그동안 연방에서 재산세에 대한 세금 감면을 해주었는데 이것을 배제하였다. 그래서 이대로 간다면 집 가진 사람들이 사실상 대폭 인상된 재산세를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제 중산층들이 달랑 하나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재산세는 대폭 오를 전망이다. 재정적자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복지예산 자체가 대폭 삭감되고 국방비를 10% 증액하게 될 경우 지금의 노인층들은 극심한 빈곤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린 높은 관세가 부여된 수입 생필품을 사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기업들은 신이 났다.

매일 월가의 주식은 트럼프 대통령의 법인세와 부자 감세에 대한 기대감으로 어쩔 줄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자 이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6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핵심은 감세와 보호무역이다. 사실 감세 정책은 공화당의 당골 정책이다. 감세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대통령이 레이건과 아들 부시 대통령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소득세율은 91%에 서 70%로 낮춰졌으며, 법인세율도 52%에서 48%로 낮춰졌다. 이로 인해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고질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감세정책이 실시된 후 5년이 되는 1986년에 재정적자는 무려 2,21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 빚을 갚기 위해서 클린턴 민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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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이민사 최대 비극 ‘LA 4 * 29 흑인 폭동’ 25주년 특별대담

그날잊어서는 안된다. 정치력신장으로 2 피해 잘라야

올해 4월 29일은 미주한인 이민사에 최대의 비극인 ‘4*29 LA 흑인 폭동’ 25주년 이다.

4*29 LA 폭동은 1992년 4월 29일 교통 단속에 걸린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은 집단 구타한 백인 경관 4명에게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분노한 흑은들이 LA 도심으로 일제히 쏟아져 나와 폭력과 약탈, 방화를 일삼은 사건이다. 흑인들의 분노는 한인에게로 집중적으로 분출돼 당시 LA 도심에 있던 한인 상정 2천 300여 곳이 약탈 또는 방화 피해를 봤다.

5월 3일 까지 이어진 폭동으로 사망자 53명, 부사아자 4천여명의 피해와 물적 피해 7~1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중 4억 달러가 한인들이 입은 피해였다.

우리 한인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4*29 LA 흑인 폭동’이 25년이 지나자 차츰 한인사회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안 될 일이다. 뉴욕일보는 ‘4*29 LA 흑인 폭동’ 25주년을 맞아 한인사회의 정치력신장과 민권 운동에 진력하고 있는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와 기획 대담을 갖고 그날의 의의와 가르침을 점검해 보았다.

Q: [송의용 기자 질문] 오늘이 4*29 LA 흑인 폭동이 일어난지 꼭 25년째 되는 날입니다. 시민참여센터는 이 ‘4*29’ 에 대한 자성에서 태동 햇습니다. 김동석 상임이사는 이 ‘4*29’ 폭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밝혀 오고 있는데…, ‘4*29’ 25년을 맞는 소회는 어떤가요?

A: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답변] 좀 답답합니다. 울화통이 터질 정도로 답답합니다. 100년을 훌쩍 넘은 미주한인 역사 속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이 1992년 LA 흑인폭동이고 이구동성으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라고 우리가 경쟁적으로 이야기하는 사건인데입니다.

그런데 오늘 25년째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그런 움직임이 동포사회에 전혀 없습니다. 도대체 한인사회에 누구 지도자가 없잖아요… 아주 갑갑합니다. 한인회를 비롯한 이런저런 단체의 회장님들이 많잖아요… 우리 한인들은 그들이 평소 회장대우를 하지 않는다고 불편해하고 불평한다는 그런 소리를 간간히 듣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누구 한사람 ‘4*29’ LA 폭동을 기억하자라는 발언이 없습니다. 깝깝한 일이지요.

“역사를 잊어 버리는 민족은 망한다!” 는 경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요, ‘4*29’ 폭동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35만 이상의 뉴욕지역 한인동포사회가 모두 이것을 까마득히 잊었잖아요. 저는 단도입적으로 뉴욕의 한인사회 소위 지도자님들께서 다들 어디에 계시는 지를 묻고 싶습니다. 물론 한인정치인들 마찬가지구요. 선거철이면 선거자금 모금을 위해서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목이 쉬라고 외치면서 돈을 좀 보태달라고 하는 한인정치인들도 다 어디에 계십니까?

‘4*29’ LA 폭동 25년째 어떤가요? 하고 물으시니 저의 가장 정직한 답변은 “깝깝합니다” 이것입니다.

Q: 우리 한인사회가 왜 이렇게 갑갑해 졌을까요? 타 소수민족 이민자들에 비해서 삶의 내영 (Life Style) 도 정리되어 보이고 경제생활도 처진 것도 아니고 더구나 교육수준도 높은 커뮤니티인데요… 왜? 벌써 ‘4*29’ 를 다 잊어 버려갈까요? 왜 주류사회내로 진출한 소위, 출세한 2세들은 거의 아무도 이 폭동의 교훈을 언급하지 않을까요?

A: 원인은 아주 명확합니다. 공동체 의식이 아주 부족한 거지요. 시민의식의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해가 낮습니다. 대개의 한인들이 자녀를 ‘전문가로 키워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토록 한다’란 것이 한인 기성세대들의 교육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우리 한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정확하게 이 수준으로만 키웠습니다. 한국계미국인님을 명확하게 인식케하는 정체성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주류사회 내 진출한 2세들이 ‘4*29’ LA 폭동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2세들이 우리 한인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서 태어난 지금 30대가 된 2세 중에 1992년 LA 폭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1세들이 스스로 2세에 대한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아무도, 어느 곳에서도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Q: 한인 2세들의 의식구조, 한인사회에 대한 인식과 1세들 (부모들) 의 책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지요.

A: LA 폭동 때 (1992년) 에 태어났으면 벌써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당시에 10살이면 지금 30대중반이구요 20대였으면 50에 접어듭니다. 한인사회의 중추가 35살 정도부터 50대까지 아닌가요? LA 폭동 등을 눈으로 직접 보고 겪은 세대가 지금 한인사회 중추입니다. 그런데 한인사회가 이렇게 조용한 것은 정말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밀레니엄이란 200년을 지나면서 정말로 한인 2세대들이 소위 주류사회의 영항력 있는 인물로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 많은 출세한 한인 2세들이 부모커뮤니티의 어려움에 진정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반 미국 시민사회가 개인주의를 걱정을 하는데요, 우리는 개인주의가 아니고 이기주의 입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첫 번째의 공동체인 한인사회에 대한 책임과 애정을 갖게 하지 못했으니 이기적이라 할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서 진정으로 안정되고 안전하게 삶의 영역을 확보하려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한인들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우리의 처지를 잘 알지 못하고 힘 있는 다수 상류층만을 바라다 본 것입니다. 같은 처지의 소수민족들, 유색인종들과 인사도 나누기 전에 상류층만 바라 보았지요. “백인을 닮기 원하네”로 아예 소문을 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자녀들을 교육시켰으니 그야말로 겉은 유색인종인데 속은 하얗게 되었지요. 출세한 2세들이 LA나 뉴욕의 한인사회를 꺼리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입니다. 우리 2세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이런 형편이니, ‘4*29’ 폭동에서 교훈을 찾자!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폭동에 관해서도 그렇지만…, ‘정체성’이 자녀교육의 출발이고 기본입니다.

Q: 뉴욕한인사회에 ‘4*29’ 25주년 관련한 행사가 전혀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4*29’ 는 뉴욕선 정말로 이미 잊혀진 사건입니다. 아무 곳에서도 25주년 관련 행가사 없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창피한 일이지요. 그런데요, LA에선 다양한 행사들이 있습니다. 폭동의 가해자였던 흑인커뮤니티, 라티노커뮤니티가 LA한인사회엔 늘 일상의 현실이고 삶의 현장입니다. 우리가 이 폭동에 관해서는 반드시 교훈을 찾아서 극복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뉴욕한인사회의 지도자님들이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래서 뉴욕한인사회의 지도자님들께 적지 않은 실망감과 불만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3*1절, 광복절, 6*25…등등의 사건 이상으로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건입니다. 특히 2세들에겐 그렇습니다.

Q: ‘4*29’를 얘기할 때 미국사회에서는 ‘한흑갈등’에서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확하지 못한 분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25주년이면 ‘4*29’ 폭동의 원인과 당시 그 배경에 대해서 이미 정확하게 규명이 되어 있어야 할 텐데요. 정확하고 만족스럽게 규명 되어 있습니까?

A: 아직 미흡합니다. ‘한흑갈등’이란 말을 우리가 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4*29’는 한흑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25일자 LA타임즈는 ‘4*29 폭동 25주년’ 이라고 특집기사를 냈습니다. LA타임즈는 가장 큰 피해자인 한인사회의 관정이나 주장은 완전히 배제한 채 흑인커뮤니티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보도 했습니다. 신문은 폭동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나타샤 할린스 (당시 15세 흑인소녀) 양에 대한 추모행사를 사진으로 소개하면서 나타샤 할린스가 한국출생 업소주인 (South Korean-born shopkeeper) 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사실을 부각시켰습니다. 폭동의 구체적인 원인은 로드니 킹 사건인데, 왜? ‘두순자 사건’을 기사로 냈는지, 이 기사를 읽어 보면요 ‘4*29’ 폭동의 원인을 한인사회가 제공한 것 같이 은연중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25년이 되었음에도 한인사회가 폭동의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노력이 덜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4*29’ 폭동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불황애서 오는 대도시 슬럼가 극빈층의 사회폭동입니다. 한인들에게 불만은 품은 흑인이나 남미계의 공격이 아닙니다. ‘한흑갈등’ 이란 말은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백인 주류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쏟하낸 용어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을 한인들 중에도 ‘한흑갈등’ 이란 용어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폭동의 본질은 빈곤의 문제이고, 그 책임은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인들이 져애 할 일입니다.

‘4*29’ 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문제에 불만을 품은 남미계와 흑인들이 ‘로드니 킹’의 재판 결과에 그 불만을 폭발 시겨서 폭도가 되어 거리로 몰려 나온 사건입니다. 책임을 져야 할 주류 백인들이 백인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등 뒤에 숨어버린 것입니다. 당시 주류 언론들은 한인과 흑인간의 갈등으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흑관계를 이간시키는 방향으로 연일 보도했습니다. 흑인이나 남미계들이 평소에 같은 소수인종의 편에 서는 것에 인색했던 한인커뮤니티를 예쁘게 보았을 리는 없었지요.

미국에서는 인종폭동이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주기는 경기변동의 사이클과 함께 합니다. 인종문제가 아니고 빈곤문제가 본질입니다. 그리고 한인사회가 폭도들의 표적이 되었던 이유는 한인사회의 정체성의 문제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집단적으로 소수계 연대에 분명한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폭동 당시나 지금이나 한인들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인종편견이 큰 문제입니다. 솔직히 한인들 가운데에 아직도 아주 쉽게 흑인을 “깜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한번씩 “누렁이”라고 불러 봅니다. 아주 질색이고 기분 나빠합니다.

Q: ‘4*29 LA 흑인폭동’은 미주한인 이민사 최대의 비극이지만, 한편 우리 한인들이 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를 가르쳐주는 가장 좋은 교과서요, 교훈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LA 폭동 이후에 한인사회가 좀 달라졌지 않습니까? 정치력신장, 민권운동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A: ‘4*29’ LA 폭동 직후 3,4년까지는 동호사회가 결집이 잘 되고 권익을 스스로 지키자는 정치력신장의 운동도 활발했습니다. 폭동을 뼈아프게 새기면서 저도 1993년부터 유권자센터 설립을 궁리했고 1996년에 플러싱에 ‘한인유권자센터’를 창립하여 지금의 시민참여센터로 22년째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치력신장의 측면에선 많이 달라졌지요. 뉴저지 한인밀집지역인 버겐카운티에서 1997년부터 유권자운동을 펼쳤는데, 그때부터 우리가 각 타운의 시의원 시장, 카운티의 프리홀더 카운티장…등의 역할과 기능, 선거에 대해 한인사회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란인들 중에 몇몇 사람들이 지역 정치인들과 교류하고 있었는데 한인사회에 유권자운동이 펼쳐지면서 이것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뉴욕, 뉴저지에서 한글로 투표할 수가 있습니다. 많이 달라진 셈입니다. 물론 다시는 폭동의 피해자가 되지 말자라는 차원에서의 정치력신장 운동이엇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만 충분하지 않지요.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2세들의 정체성 교육에 매진해야 하고 소수인종임에 각성해야 하고,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폭동을 잊지말자는 이런 노력을 함께 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1992년 폭동 이후에 한인사회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치력신장 입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뉴욕이나 LA똑같이 정치참여의 열기는 달라졌지요.

Q: ‘4*29 LA 폭동’ 25년이 지났는데요, 뉴욕일보는 4월27일자 신문 ‘4*29’ LA 폭동 25주년 기획 기사로 “LA 주민 60%가 25년전 폭동 또다시 일어날 수가 있다”는 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재발 가능성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A: 앞에서도 강조 햇지만 폭동의 원인은 빈곤문제와 인종문제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잇는 미국은 지난 한 세기 이래로 지금이 빈부 격차가 가장 심하다고 합니다. 트럼프 권력의 가장 독소정인 요소는 백인우월주의입니다. 대도시 슬럼가의 범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지요. 사회가 대단히 불안해졌습니다. 뉴욕일보의 보도와 같이 지난 26일 LA타임즈는 LA 주민 60%가 향후 5년 내에 ‘4*29’ 와 유사한 인종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공격적인 차별이 점점 더 횡횅해지고 있습니다. 뉴욕, LA, 시카고 등지의 흑인들과 남미계 극빈층들의 일상이 점점 더 비참해지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폭동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Q: 우리 한인들이 또 다시 폭동의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 한인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 나가야 할까요?

A: 우선은 리더십이 이 문제에 진지해야 합니다. 한인사회가 대외적으로 잘 조직된 것으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만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만이라도 타인종 사회와 교류를 폭을 넓혀야 합니다. 우선은 아시안계들과, 그리고 흑인사회와 관계를 잘 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한인사회는 우리끼리만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 흑인사회의 어려움에 동참해야 하고 공권력에 권익이 침해 당하는 케이스에 함께 싸워줘야 합니다. 트럼프 권력의 인종주의에 항의하는 집회에 한인들이 없습니다. 이러면 안되지요. 많은 한인들이 참가할 수는 없지만 한인사회 지도자님들은 참여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끼리만 이 문제입니다.

우선, 소수인종의 입장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지역사회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하구요. 인종편견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4*29 폭동’에서 교훈을 찾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35만 이상의 한인사회에서 ‘4*29폭동’ 25주년 행사가 아무 것도 없음이 실로 한심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3.1절이다, 6.25다, 광복절이다, 대통령 초청 동포간담회 등등의 행사에는 서로 앞장서겠다고 하는 회장님들이 어떻게 이 ‘4*29 폭동’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무지하고 무관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정치참여입니다. 결국엔 우리의 집단적인 정치력만큼 보호받습니다.

  • 오랜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 칼럼은 2017년 4월 29일  뉴욕일보 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한인이민사 최대 비극 ‘LA 4 * 29 흑인 폭동’ 25주년 특별대담 ‘그날’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력신장으로 제2 피해 싹 잘라야 올해 4월 29일은 미주한인 이민사에 최대의 비극인 ‘4*29 LA 흑인 폭동’ 25주년 이다. 4*29 LA 폭동은 1992년 4월 29일 교통 단속에 걸린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은 집단 구타한 백인 경관 4명에게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분노한 흑은들이 LA 도심으로 일제히 쏟아져 나와 폭력과 약탈, 방화를 일삼은 사건이다. 흑인들의 분노는 한인에게로 집중적으로 […]

Categories: 칼럼/오피니언

오늘은 4.29 LA 폭동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 기억 저 편으로 멀어진 지나 가버린 한편의 역사다. 그러나 미주 한인 이민사에서 이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992년 4월 29일 이전의 역사는 미국에 와서 열심히 일해서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한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였다면 1992년 4월 29일 이후의 역사는 미국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당당히 미국의 구성원으로서 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로 바뀌었다.

1992년 4월 29일, 그날, 이민 와서 피땀 흘려 이룩한 희망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사라졌다. 수개월 전 백인 경찰들이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고속도로에서 폭행하고 백인 배심원들이 무죄선고를 내리자 성난 흑인들이 거리로 뛰어 나왔다. 여기에 수년 전 한인 가게에서 흑인 소녀가 물건 값을 내지 않고 폭행하자 주인이 총을 쏘아 숨지게 한 후 정당방위로 풀려났고, 주류 언론들은 흑인들 시위와 풀려난 한인 여성을 번갈아 뉴스를 내보내면서 흑백 갈등, 경찰의 과잉 공권력의 문제를 한인과 흑인간의 인종갈등으로 내몰았다.

급기야 시위대는 한인 가게들을 습격했고 주위에 보고 있던 라티노들이 함께 물건을 훔치고 불 지르면서 폭동은 걷잡을 수 없게 확산 되었다. 당국은 백인들 밀집지역인 비브리 힐스에만 주 방위군을 배치하고 한인 타운은 잿더미로 변하던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의 한인들은 하루아침에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랬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위기의 상황이 발생하니 하루아침에 투명인간의 집단이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한인사회 곳곳에서는 한인들의 목소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미국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5년이 되었다. 과연 우리는 그때의 뼈저린 자각을 통해서 미국사회에 당당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또다시 우리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또다시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그때와 같지 않을 수 있는 우리 스스로를 준비하고 있을까? 미국의 주류사회의 유권자 등록율이 80%가 넘는데 한인 커뮤니티의 유권자 등록율도 80%가 될까? 커뮤니티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고 얼마나 많은 한인들이 참여를 하고 또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고 있을까?

1992년 4월 29일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 사건이 한인 커뮤니티로 불똥이 튈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위기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재빨리 파악하고 대응할 그 어떤 리더십이 있었던가? 즉각적으로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정치적인 행정적인 핫라인이 있었던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인사회를 위해서 크고 작던 성과를 내면서 동포들과 울고 웃고 하면서 수십년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왜냐면 모든 것은 사람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유대인 커뮤니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결과만 보고 부러워하고 칭찬을 한다. 유대인들은 자기 커뮤니티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최고의 대우를 해 준다 그렇기에 유능한 일꾼들이 몰려든다. 그러니 미국내 3%의 유대인이 연방의회에만 11% 진출 해 있다.

우린 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사회의 제도와 흐름을 이해하고 커뮤니티의 정서와 고민을 제대로 알고 꾸준히 한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인재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커뮤니티는 그들을 얼마나 아끼고 키우고 있을까? 새로운 역사는 인재의 지원 육성에서 출발한다. 커뮤니티 전체를 위해서 수십년 한길에서 일을 하여 성과를 내는 단체나 인재들을 커뮤니티가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그들이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면 바로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4.29 25주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음 세대에게 어떤 커뮤니티를 물려줄지 생각해보자.

이 칼럼은 2017년 4월 29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오늘은 4.29 LA 폭동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 기억 저 편으로 멀어진 지나 가버린 한편의 역사다. 그러나 미주 한인 이민사에서 이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992년 4월 29일 이전의 역사는 미국에 와서 열심히 일해서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한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였다면 1992년 4월 29일 이후의 역사는 미국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당당히 미국의 구성원으로서 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로 바뀌었다. 1992년 4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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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큰 장사꾼의 덕목은 신용과 신의이다. 바로 상도를 이야기 할 때 기본이 신용과 신의라는 것이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고객들과 거래처들과 신용과 신의를 우선으로 했던 유명한 사업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반면에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여 수십년을 거래해오던 거래처를 바꾸거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고객관리를 하다가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미국은 지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의 맏형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전쟁을 하다간 인류가 멸망하겠다는 우려로 1945년 10월 24일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United Nation(국제연합)을 출범시키는데 맏형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UN의 설립 목적은 국제법, 국제적 안보 공조, 경제 개발 협력 증진, 인권 개선으로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전쟁을 막고 대화 교섭을 찾자는 것이 국제 연맹의 역할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액수의 유엔 분담금을 냈다. 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에게 미국 수출의 문을 열어주어 미국에 물건을 팔게 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전세계의 인재들이 미국에 공부할 수 있게 유학의 문을 활짝 열었고 또 인재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미국이 요즘 많이 달라졌다. 세계의 맏형 노릇을 벗어 던지고 미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으로 급선회 하였다. 새로운 대통령은 모든 것을 미국우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세계의 맏형으로 나선 이후 그 어떤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발언과 정책을 트럼프 대통령이 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미국이 어려워졌다. 이게 다 미국이 무역에서 손해 보는 무역을 했고, 수많은 서류미비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았고, 외국 출신의 전문직들을 너무 많이 고용했기 때문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가다. 이렇게 국가 총생산량이 제일 높음에도 살기가 힘들다는 것은 그 많은 부가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지적이 있다. 그러니 지금 내부적으로 부의 분배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이가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국무장관과 경선했던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이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가장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수출해서 재미 본 나라들에게 경고를 해도 감히 대드는 나라가 없다. 문제는 계속 동맹국들과 무역에서 산술적인 이해타산만 한다면 어느 한순간 동맹국들은 모두 사라질 수 있다. 또한 해외전문직 취업비자를 규제한다면 세계의 인재들은 더 이상 미국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세계를 선도하던 미국이 대국답지 않게 체력단련을 하지 않고 동맹국들과 산술적인 계산만 하고 새로운 인재들의 유입을 차단한다면 미국은 머지않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유권자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무엇이 눈에 보이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본질이 무엇이고, 누가? 무엇이? 왜? 본질을 왜곡 시켜서 보이게 하고 있는지를 알고 투표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2017년 4월 23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큰 장사꾼의 덕목은 신용과 신의이다. 바로 상도를 이야기 할 때 기본이 신용과 신의라는 것이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고객들과 거래처들과 신용과 신의를 우선으로 했던 유명한 사업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반면에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여 수십년을 거래해오던 거래처를 바꾸거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고객관리를 하다가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미국은 지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의 맏형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전쟁을 하다간 인류가 멸망하겠다는 우려로 1945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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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난 이후, 유대인의 대량학살에 관한 사실들이 속속 알려지면서 미국내 유대인들은 깊은 자책감에 빠지게 된다. 만약 자신들이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의 정치권과 행정부의 정책에 결집된 유대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였더라면 미국의 2차대전 개입을 좀더 앞당길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의 대량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책임감이 미국 내 유대인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였다.

이러한 유대계 커뮤니티의 자기반성은 2차 대전 이후 막 세워진 신생국 이스라엘이 주변의 아랍국가 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돕도록, 미국이 친이스라엘적 정책을 수립하도록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그리하여 1953년 I.L. “Si” Kenen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인 학자, 변호사, 활동가, 사업가들이 워싱턴에 모여 American Zionist Committee for Public Affairs를 결성하였다. 사무실은 워싱턴과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는 뉴욕과 LA 등에 만들고 몇몇 사업가들의 기부로 기금을 충당하고 변호사나 정당의 활동가들이 주요 실무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유대교에 기반 한 이스라엘 민족주의 냄새를 풍기는 이름부터 워싱턴 정가에서는 반발을 불러왔다. 정통 유대교 중심의 유대인 로비단체의 결성 소식을 전해들은 미 정부는 우려를 표시하기 시작한다. 특히 국무부에서는 사람을 보내 중동에 아랍계 여러 국가가 있는데, 중동의 한 작은 국가인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로비단체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아랍계를 자극하게 될 것이고, 미국의 중동정책이 아랍권에 불리하게 보이게 되고 이것은 유대인 단체의 로비 때문이라는 모함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

미 정부 관리들을 또한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해 애이팩 핵심 참여자들에게 이러한 단체의 결성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에서 반 유대 정서의 실제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들로서는 미국이 알아서 잘 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돕지 않으면 아무도 돕지 않는다는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한 그들은 이름을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로 바꾸고 보다 대중적으로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에이팩은 워싱턴에서 최초로 친이스라엘 로비활동을 표방하면서 미국시민 로비의 문을 열었다.

1992년 4월 29일 미주 한인들은 미국 흑백갈등의 한가운데서 새우등이 터지는 참담함을 경험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했는데 폭동의 한 가운데서 모든 것을 잃었다. 미국에서 참여하지 않는 소수계의 비애를 보았다.

그 후 한인 커뮤니티는 참여운동을 시작하였고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2014년부터는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인들이 워싱턴에 모여서 결집된 목소리를 내기 위한 미주한인 워싱턴 풀뿌리 컨퍼런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 인원은 2배씩 늘었다.

에이팩이 철저히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을 했다면 한인들의 활동은 주로 미국에서의 권익을 위한 운동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국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전운에 휩싸였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으로 역내 긴장이 높아지고 더 이상 이것을 좌시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미국과 북한의 70년 동안 싸인 감정이 폭발 직전에 다 달았다. 거기에 한국은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세력들이 대권을 잡기 위해서 이전투구 하는 대통령 선거 국면이다.

전세계가 우리의 모국이 처한 전운을 실시간으로 우려하고 뉴스를 쏟아내고 있는데 우린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저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우린 풍전등화에 놓인 우리의 모국의 현실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지구상 가장 막강한 화력이 짧고 좁은 지역에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재래식 전쟁만으로도 엄청난 인명 살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핵전쟁으로 이어진다면 한반도의 우리민족은 멸망할 수 밖에 없다. 이에 시민참여센터는 긴급히 연방의원들에게 평화적인 방법을 내놓고 한반도 문제에 접근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우리가 유대인으로부터 배운다면, 홀로코스트 반성 이전에 행동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2017년 4월 15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이후, 유대인의 대량학살에 관한 사실들이 속속 알려지면서 미국내 유대인들은 깊은 자책감에 빠지게 된다. 만약 자신들이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의 정치권과 행정부의 정책에 결집된 유대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였더라면 미국의 2차대전 개입을 좀더 앞당길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의 대량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책임감이 미국 내 유대인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였다. 이러한 유대계 커뮤니티의 자기반성은 2차 대전 이후 막 세워진 신생국 이스라엘이 주변의 아랍국가 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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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다. 인류가 사회적 존재로서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집단생활의 작동방식이 필요했다. 바로 집단생활을 작동시키는 방식을 우리는 정치라고 규정한다. 그후 집단의 단위에 따라서 촌락, 부족사회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들을 장악한 특정한 인물이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 왕국의 최고 목표는 왕을 지키는 것이었다. 백성과 모든 제도는 모두 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정치를 왕정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 정치제도는 민주주의였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주인이었고 이들에겐 투표권이 있었다. 물론 노예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직접 정치에 참여를 하였다.

모든 제도가 왕을 위한 왕국과 달리 아테네는 투표권을 가진 자신들을 위한 제도와 정치를 하였다. 이것을 민주주의 정치라고 한다. 왕정에서는 왕에 충성하는 것이 곧 국민의 의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의 정치는 항상 심판 받는다.

지금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로 운영되는 미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미국사회는 다른 나라와 달리 다인종, 다민족 연합국가다. 미국의 연방의회는 다수 인종인 백인들이 절대 다수이지만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들도 진출해 있다, 또 백인들을 나누면 유럽의 어느 나라 출신이었는지, 또 유대인인지로 나뉘고 히스패닉도 중남미 어느 나라 출신인지 나뉜다. 그리고 아시안도 마찬가지다.

지금 연방의회의 아시안 정치인들은 일본, 중국, 인도, 태국, 베트남 출신들이다. 지금 연방의회에 한국계 출신은 없다. 미국의 정치는 시민이 투표로 선출하여 정치를 위임한 선출직들이 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이 침해당한다고 생각이 되면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기도 한다.

다민족 다인종 연합국가인 미국에서 정치는 치열하다. 겉으로 보기엔 다 미국인이다 그러나 각 민족, 인종 커뮤니티 또는 특정 이익집단 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치열한 정치활동을 한다. 자신들의 유권자가 많으면 표로, 표가 없으면 정치 후원금이나 로비로, 또는 시민참여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남보다 먼저 정책을 만들고 자기집단을 위한 코커서를 만들고 법을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자신들의 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치는 가까이 하고싶지 않다. 그런 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어 하는 집단들도 있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집단들의 후세들은 한 세대가 지나면 미국 내에서 3등 시민으로 전락하고 결국은 천덕꾸러기가 된다. 그들의 부모세대들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바빴다. 그러니 너희들이 잘 해야 한다는 변명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후손들은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없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가난이 대물림이 되듯이 이들의 정치력도 대물림이 된다. 정치는 여러 집단속에서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지만 결국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지키고 확장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정치력을 신장하기 위해서는 자기 집단이 전체를 위해서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자료로 만들어서 정치권에 잘 설명하는 것을 부지런히 하여야 한다. 론 김 의원이 한인 커뮤니티의 주력업종인 네일과 세탁업을 지원하기 위한 주정부 기금 300만달러를 하원에서 만들었는데 사실상 힘들게 되었다. 상원에서는 론 김과 같이 이 예산을 대변해줄 그런 정치인이 없었다. 그래서 론 김 의원이 지역구에 내려오지도 못하고 뛰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네일과 세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이 업종에 종사하는 인구 및 뉴욕 주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를 잘 준비하고 또 현실적인 어려움을 주 정부가 지원해달라는 설득 논리를 잘 준비하고 끊임 없이 상원의원들을 찾아가고, 협회회원들이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은 다 인종과 수많은 이익 집단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혈투를 벌이는 사회다. 그래서 한번 밀리면 그 다음은 더 밀릴 곳이 없는 낭떠러지가 될 수 있다. 이민자로서 소수계로서 우리는 긴장의 끊을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 칼럼은 2017년 4월 08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인간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다. 인류가 사회적 존재로서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집단생활의 작동방식이 필요했다. 바로 집단생활을 작동시키는 방식을 우리는 정치라고 규정한다. 그후 집단의 단위에 따라서 촌락, 부족사회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들을 장악한 특정한 인물이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 왕국의 최고 목표는 왕을 지키는 것이었다. 백성과 모든 제도는 모두 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정치를 왕정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 정치제도는 민주주의였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주인이었고 이들에겐 투표권이 있었다. 물론 노예들에게는 투표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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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는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전쟁을 대신 치러주는 민간 용병회사다. 다시 말해서 정부가 군을 민영화 한 셈이다. 1997년 경찰과 군의 위탁 훈련소로 출발했다. 그 후에 지원자를 모집해서 전쟁터의 군수품 보급과 요인의 경호 및 정찰 그리고 전투 지원으로까지 그 영역을 넓힌 민간 전쟁대행회사가 되었다. 지원자는 3개월의 기본훈련과 전문교육을 받으면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전쟁터로 나간다. 임금은 일반 군인들 거의 3배에 가깝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모요크의 서울 여의도면적 10배가 넘는 넓이의 숲과 들판이 있다. 자동차로 돌아보는 데만 1시간이 훨씬 넘겨 걸린다. 훈련시 안전 때문에 거대한 규모의 훈련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드문드문 인가를 지나 들판 한가운데로 한참동안 달려야 입구가 나타난다. ‘비밀인가자 외 출입금지’란 경고판이 붙어 있는 입구엔 허리에 권총을 찬 검은 복장 요원들이 출입구를 지키고 있다. 민간 회사란 분위기가 아니고 군사시설 그 자체다. 내부엔 무기창고. 병원. 강의장. 기숙사를 갖추고 있다. 비행장도 있고 탱크와 부서진 자동차도 눈에 뜨인다. 해상훈련을 위한 커다란 호수도 있다. 공수훈련을 위한 헬기와 항공기, 그리고 지하철 훈련장도 있다.

군대는 젊은 사람이 가지만 블랙워터엔 나이가 많아도 입대가능하다. 머리를 기를 수도 있는 등, 군보다는 훨씬 자유롭다. 때문에 사회에서 자기 생활을 하면서 돈이 필요한 사람도 온다. 사실, 혜택은 군이 더 많다. 군에 입대하면 건강보험, 집 문제가 해결되고 보너스도 준다. 문제가 생기면 법적 보호도 받지만 블랙워터엔 그런 혜택이 없다. 그래서 대개가 한탕주의들이 많다. “돈”만이 동기이기 때문에 격한 사람이 많다. 대개가 전쟁경험이 있는 퇴역군인들이다. 특수부대출신들 중에 극한 모험을 즐기고 그것을 인생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여기는 그야말로 무모한 용감쟁이들이다. 미군을 대신해서 더러운 전쟁을 치르는 용병들의 집합이다. 사형수들을 게릴라로 만든 영화 ‘실미도’를 연상케 하는 용병회사 “블랙워터”다.

블랙워터는 미 해군 특전단(네이비실) 장교 출신의 ‘에릭 프린스’가 창업했다. CIA 와 프로젝트별로 컨츄랙(사업계약)을 했다. 건 당 수억 달러씩을 받았다. 무모하고 과도한 임무(전쟁)수행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자 오바마정부는 없던 일로 정리를 시도했다. ‘에릭 프린스’는 대리전쟁을 피하고 주로 경호업무, 경찰훈련, 특수부대 훈련을 맡았다. 이라크 전쟁에서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이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 ‘에릭 프린스’가 청문회장에 불려가기도 했다. 해군 특수부대 전역 후, 1997년 블랙워터를 설립해서 매각 때까지 ‘에릭 프린스’는 모두 25억 달러를 벌었다. 그야말로 성공한 기업인이다. 블랙워터를 설립한지 4년 만인 2001년에 발생한 9.11 사태는 블랙워터의 매출신장에 일등 공신역할을 했다. 높은 악명에 비해서 돈벌이의 액수가 줄어들자 ‘에릭 프린스’는 수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하고 “프런티어 서비시스 구룹 (FSG)”이란 경호.보안 회사를 설립했다. 총탄이 빗발치는 아프리카 험지에 진출한 중국 업체의 직원구출과 호송, 관련 자재와 장비를 수송하는 일, 그리고 부상당한 중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구호 사업이다. 현재 ‘에릭 프린스’의 새로운 사업의 가장 큰 후원자는 중국 최대국영업체 시틱구룹(CITIC)이다. 중국 시틱구룹의 대아프리카 직접투자 규모는 2015년 한해만 250억 달러였다. 대부분이 원유. 광물 등 자원을 개발해서 중국으로 가져가는 일이다.

전쟁주식회사를 운영하는 악명 높은 ‘에릭 프린스’가 트럼프 선거에 끼여든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의 돈벌이는 미국의 안보정책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선거위기에서 구출한 인종주의자 “ 스티브 배넌 ”과 절친인 ‘에릭 프린스’는 트럼프 캠프에 공개적으로 선거자금 25만 달러를 냈다. 트럼프 당선 후 그는 맨하탄 트럼프 타워에 설치된 인수위원회에서 아예 살다시피 했다. 트럼프는 교육단체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프린스의 친 누나인 ‘벳시 디보스’를 교육장관에 임명했다. 프린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린스는 트럼프 취임 9일전인 1월1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과 비밀리에 만났다. 그가 누구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아랍 에미리트연합의 빈 자예드 왕자의 소개로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에서 만났다. 아랍에미리트 신문은 에릭 프린스가 자신을 트럼프의 비공식 사절 이라고 소개하면서 푸틴의 측근과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첩보영화를 방불케하는 트럼프와 푸틴의 커넥션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 칼럼은 2017년 4월 7일 뉴욕일보에 또한 게재되었습니다.

블랙워터는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전쟁을 대신 치러주는 민간 용병회사다. 다시 말해서 정부가 군을 민영화 한 셈이다. 1997년 경찰과 군의 위탁 훈련소로 출발했다. 그 후에 지원자를 모집해서 전쟁터의 군수품 보급과 요인의 경호 및 정찰 그리고 전투 지원으로까지 그 영역을 넓힌 민간 전쟁대행회사가 되었다. 지원자는 3개월의 기본훈련과 전문교육을 받으면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전쟁터로 나간다. 임금은 일반 군인들 거의 3배에 가깝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모요크의 서울 여의도면적 10배가 넘는 넓이의 숲과 들판이 있다. 자동차로 돌아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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