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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없으면 당한다”…4?29폭동 교훈 잊어서는 안돼 – 송 의용

by kace

  • Posted on April 29, 2010

  • 뉴스

4월29일은 ‘4?29 LA 폭동’ 18주년 이다. 많은 한인들이 4?29를 잊고 있다. 뉴욕?뉴저지는 당시의 현장이 아니라서 그럴지 모르지만 현장이자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LA에서 조차 역사보존 장소도 없고 그날을 상기하자는 행사도 거의 없다. 피해자돕기성금으로 마련한 4?29센터조차 유명무실하다. 행사는 그만두고라도 그 교훈을 살려나가자는 역사성도 잊혀져만 가고 있어 참 안타깝다. 한인들은 4?29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날의 의의와 가르침을 살려나가 두 번 다시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강한 한인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4?29 어처구니 없는 엉뚱한 피해


미국에서는 흔히 6?25를 “잊혀진 전쟁”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에겐 결코 망각속의 역사가 아니다. 현재진행형의 실제이다. 지금 막 눈앞에서 일어난 천안함 침몰이 아니더라도, 아직까지 1,000만명의 이산가족이 그 아픔의 한복판에 있는 “현실” 그 자체이다.
4?29도 그렇다. 재미동포들에겐 4?29는 “제2의 6?25”이다. 생명을 잃은 한인은 물론 2,200개의 한인업소가 불타거나 약탈을 당했으며, 3억9,900만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그 4?29의 한인 피해는 참으로 엉뚱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흑인들의 시위는 애초 한인-한인사회를 겨냥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4?29의 뇌관은 백인위주사회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였다. LA경찰이 흑인 택시운전사 로드니 킹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바비하게 폭행했고 그 장면이 TV에 방영되자 흑인들의 분노가 커졌다. 폭행경찰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흑인들은 그들의 처벌을 원했으나 모두 무죄판결을 받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첫 집단행위는 자연히 흑인 거주지인 다운타운에서 불붙었다. 사우스센트럴 거리에서 몇몇 흑인이 지나가는 백인 운전자를 차에서 끌어 내리고 폭행 하면서 시작됐다.


불행히도 한인상가는 그 사우스센트럴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그 위치성 때문에 한인사회는  폭동의 중심에 휘말리게 된다. 폭동이 일어나자 미국의 언론은 재빨리 그것을 흑인과 한인들의 갈등 탓으로 몰고 갔다. 미 언론은 한인상인들을 흑인을 얕잡아 보는 수전노라고 규정, 흑인지역에서 돈만 벌어들이고 좋은 지역에 거주 하며 값비싼 차를 타고 다닌다고 떠들어 댔다. 이 보도는 100%거짓말은 아니었다. 한인들에겐 이런 면이 없지 않았다. 흑인들은 이 교묘한 언론의 작전에 휘말렸다.


한편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레이거노믹스’라 하여 감세, 사회보장제도와 푸드스팸프 축소 등 부자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 때라 흑인들의 궁핍은 날로 더해갔다. 일부 흑인들은 이 궁핍이 TV가 떠들어대는 대로 한인들이 자기들 지역에서 돈을 벌어 다른 지역으로 빼돌린 탓이라고 오해했다.


거기다 미국언론들은 한인가게 주인이 자기 가게에서 오랜지를 훔친 15세 흑인 소녀 라탸사 할린스를 시비 끝에 총 쏘아 숨지게 한 소위 ‘두순자씨 사건’을 집중적으로 방영해댔다. 1년 전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언론도 경찰도, 우리편은 없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미국 언론의 장난이었다. 그러나 이 교묘하고 입체적인 플레이는 100%의 효과를 나타냈다. 흑인 시위의 목표는 바뀌었다. 바로 이웃에 있는 한인상가로 분노를 집결, 무자비하게 방화와 약탈을 자행했고 자위에 나선 한인 젊은이들과 총격전까지 벌였다. 한인상가는 초토화 됐고 한인들의 이민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한인사회는 이 엉뚱한 분노를 제어할 길이 없었다. 힘이 없으니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당시 아무도 한인사회를 도와주지 않았다. 더욱이 이 폭동을 제압해야 할 1차적 책임이 있는 LA경찰은 한인상가에 출동하지 않았다. 추후 파견된 주방위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름난 백인 부자동네인 베벌리힐스 주변에 방어진을 치고 그곳의 안전에만 신경을 썼다. 성난 폭풍의 한 가운데서 진압하면 경찰의 피해도 커질 것이기 때문에 흑인들이 에너지를 한인상가에서 다 써서 스스로 소진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더 억울한 일은 당시 LAPD 국장 데럴 게이츠라는 사람. 폭동진압의 책임이 있는 그는 당시 경찰본부인 ‘파커센터’에 있질 않았다.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LAPD를 위한 기금모금 파티를 주관하고 있었다. 전체 상황을 종합하여 보면 한인상가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은 이같은 상황에서 한인사회를 위해 나설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인정치인도, 한인들을 위해 나서줄 미국정치인도 없었다. 사후에도 한인피해에 대한 보상을 주장할 사람도 없었다. 한인들은 2중3중으로 철저히 당했다.


★유권자센터 통해 힘을 기르자


한인사회는 4?29의 교훈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미 언론에서 떠들어댄 지역주민들과의 불화는 사실상 하나의 원인(遠因)임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다행히 요즘은 흑인들의 거주지가 당시처럼 집단화 되지 않고 흩어져 불만의 힘이 집결되기 어렵고, 한인상가도 당시처럼 몰려 있지 않은데다 흑인지역의 소상인 역시 인도계, 파키스탄계 등 다른 소수민족들이 진출해 한인들이 집중적으로 배척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 거의 없어졌다. 미국의 대표적 흑인지역인 할렘의 경우도 지금은 백인, 히스패닉계, 신규 이민자들이 많이 진출하여 흑인지구라기 보다 다인종지구화 됐고, 90년대 초반 55곳이던 125가 한인업소도 현재는 10여개가 있을 뿐이다. 거기다 대부분의 한인들도 이제는 지역주민들과 잘 지내고 있으므로 제2의 4?29 가능성은 예전보다 완화 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지역주민과의 융화는 1등 시민의 기본이므로 우리는 이를 더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에서는 힘 없는 소수민족은 당할 수밖에 없다. 4?29 당시 한인사회에 힘이 있고 우리를 도와주는 미국정치인이 있었다면 경찰이나 주방위군은 방위선을 한인상가에 쳤을 것이다.
우리는 이 아픔을 되풀이해서도, 잊어서도 안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다시 그 굴욕을 당한다고 했다. 한인사회는 힘을 길러야 살 수 있다. 한인정치인도 만들고 우리의 힘이 되어줄 미국정치인도 만들어야 한다. 경제적 힘도 더 키워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고맙게도 우리 뉴욕?뉴저지 한인사회에는 그 힘의 배양을 자임하는 단체가 몇몇 있다. 한인유권자센터가 그 중의 하나이다. 그 유권자센터가 창립 14주년을 맞아 4월30일 활동기금 모금만찬을 갖는다. 나를 대신하여 강한 한인사회 만들기에 진력하는 유권자센터를 위해 박수로, 또 성금으로 열심히 성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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