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원 아태환경 소위원회 위원장 도날드 만즐로 의원- 김동석
by kace
Posted on February 16, 2011
1월11일, 올 겨울 들어서 미 동부지역에 두 번째의 폭설이다. 저녁6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밤10시가 지나면서 자동차의 문을 덮기 시작했다. 연방하원의 신임 아태소위원장을 12일 만나기로 했고 전날까지 시간을 주기로 했었기 때문에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뉴욕서 워싱턴은 5시간 운전 거리이고 오전의 약속이라면 전날 떠나야 할 텐데 밤10시가 넘어가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아마도 뉴욕의 폭설을 알고 약속을 연기하려나 보다 했다. 웬걸 11시가 가까이 오자 이메일이 들어왔다. ‘ 도널드 만즐로 ( Donald Manzullo )위원장은 유권자센타(KAVC)와 12일 오전9시에 만난다.’란 이메일이다.
너무나 많은 량의 눈이라서 집에서 나갈 수가 없을 정도, 그 밤중에 더구나 자동차로 5시간 이상의 운전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선, 차고에서 큰 길까지 자동차를 꺼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모터가 달린 눈 치우는 기계를 이 한밤중에 사용하다가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뛰쳐나올 일이다. 그런데, 외교위원회의 아태소위원장이 누군가? 지난 만 6년 동안,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아태 환경 소위원장이 얼마나 아쉽고 중요한 자리란 것을, 그리고 현직 의원과의 면담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반복해서 경험한 필자로서는 도저히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일주일전에 의회 개원식에서 그는 우리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와 절친한 친구인 인디애나의 ‘댄 벌튼’ 의원께 그리고 신임 외교위원장인 ‘일리에나 로스-넷트넨’의원께 소개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해서 만든 면담이었다. 밤12시부터 거의 3시간 이상 눈을 치워서 자동차를 꺼냈다. 마침 맨해튼에서 워싱턴까지 새벽4시에 떠나는 기차가 있었다. 정확하게 오전8시30분에 워싱턴 유니언스테이션( Union Station)에 도착했다. 시간에 맞추어서 위원장실에 도착했다.
만즐로 의원과의 시작은 악연이었다. 만즐로의원은 “반중국친일본무한국”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그는 1993년, 하원에 입성해서 만20년 동안 일리노이계 공화당지도부에 충실했다. 그가 초년생이었을 때에 공화당 리더(Party Leader : 원내대표)는 그 유명한 ‘밥 미첼(Robert Michael)’이었다. 일리노이출신인 ‘밥 미첼’은 1955년에 의회에 들어와서 40여년이상 미국 중부 지역내 보수계를 이끌어 온 거물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임 8년 동안 하원의장을 지내다가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Nancy Pelosi)에게 의장직을 물려준 ‘데니스 해스터트(Dennis Hastert)’ 의장도 일리노이의 ‘밥 미첼’에게로부터 정치수업을 받았다. 중부지역의 공화당계보가 “ 밥 미첼 데니스 해스터트, 도널드 만즐로 ”로 이어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보수정치계의 거물인 밥 미첼이 정치권을 은퇴하고(1995년) 워싱턴에 로비회사를 설립했는데 바로 그것이 [호건&핫슨]이다.
로비회사 ‘호건&핫슨’의 고객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일리노이의 공화당 정치권이 친 일본 성향을 갖게 되었다. 2006년도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상임위에서 만장일치 통과가 되었음에도 전체회의엔 근처도 못 갔던 이유가 바로 그 당시 하원의장이 친 일본계의 ‘데니스 해스터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인맥과 연유는 만즐로 의원에게도 다르지 않다. 이것을 경험한 미주교포들이 2007년 마이크 혼다 의원을 내세워서 다시 결의안을 상정시켰다.
일본(로비)계 휘하에 있을법한 의원들을 특별히 미디어를 통해서 공략을 하는 전략을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2007년초반) 만즐로 의원에게 막히게 되었다. 더구나 만즐로 의원은 아태소위원회 공화당 간사(ranking mem)였기 때문에 우리에겐 정말로 큰 골칫거리였었다. 그는 결의안의 내용에는 공감을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내세우면서 동의해 주질 않았었다. 자기의 정치스승인 밥 미첼과 데니스 해스터트의 입장과 상황을 그가 외면할 도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 공개 찬. 반 투표에서는 41명중에 2명이 반대를 하는데 만즐로 의원은 현명하게도 찬성을 해 주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만즐로측과 한인 풀뿌리측과는 충돌과 충돌의 반복이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의 시민 풀뿌리 로비는 세련되지 못했었다. 설득하고 설득해야 함에도 정당성과 명분만을 내세우며 미디어를 통해서 공격만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만즐로 의원이 외교위내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이 되었다.
만즐로 의원이 친일본이란 입장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정치대부들의 위와 같은 입장의 영향도 있지만 한국이나 한인들로부터의 접촉이 아예 전무했던 것이 더 큰 이유이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의 마지막 표결과정에서 만즐로 의원이 결국엔 반대하지 않은 것을 보고서 필자는 정말로 크게 후회를 했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상정, 통과시키는 괴정에서 필자는 만즐로 위원장의 성품과 인간애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더구나 그분의 신앙과 정치철학이 특별함에도 그것에 대한 기대를 조금도 하지 않았던 후회의 고통이 정말로 컸었다.
지난 1월12일 ‘도널드 만즐로’위원장은 뉴욕의 폭설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약속을 지키기엔 너무나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분은 애리조나 총격사건의 여파로 많이 우울해 보였다. 그러나 뉴욕으로부터 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우리를 극진하게 환대해 주었다. “ 당신들에게 정말로 내가 필요한 존재인가 보다!”라고 하면서 한 시간 면담이 거의 3시간이 되었고 ‘아태소위원회’의 외교전문위원도 불러 주었으며 자신의 사무실에 인턴으로 일하는 한국계 여학생도 불러서 우리와 만나게 해 주었다.
따듯한 커피도 대접 받았고 그의 보좌관으로부터 점심대접도 받았다. 2007년도의 ‘일본군위안부결의안’관련해서는 조금도 언급이 없었지만 필자는 그분의 인격과 성품에 감동을 받을수록 정말로 많이 괴로웠다. 중국문제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과 협력해서 북한 문제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 분명했으며 중국은 미국의 정부와 시민이 안심할 정도로 시스템을 바꿔 나가야 할 것이며 인권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강경한 대북한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문제로 인하여 더 이상 끌려 다녀서는 안 될 것이라 했다. 개성, 금강산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필자는 한국계 미국시민들의 안전과 가족의 문제가 결부된 북한문제에 한인들의 의견이 정책에 꼭 반영되어야 할 것을 조심스럽게 요청했다. 우리는 ‘도널드 만즐로’위원장에게 2월이나 3월중에 뉴욕한인사회를 방문해 줄 것과 아울러 한국방문을 강력하게 권했다. 우리는 위원장께 한국의 시골 풍경이 그려진 판화 한 점을 위원장취임 축하선물로 선물로 전달했다.
신임 ‘도널드 만즐로(Donald Manzullo)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은 일리노이 제 16지역구에서 1992년에 연방하원에 선출 되어 올해로 20년의 10선의원이다. 공화당내에서도 보수정치를 대표한다. 열렬한 자유무역옹호자. 소규모자영업자(Small Business)를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만즐로 의원은 금융위원회에 소속되어 소장영업자들의 일에 골몰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의 공화당 다수당일 때에 소규모 자영업위원장(Small Business Committee)을 지냈다.
그는 자신의 의정활동 대부분을 소규모 자영업을 보호하고 확대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지역구는 미국 내 가장 대표적인 철강 산업지대이다. 그래서 그는 중국과의 철강무역의 관세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만즐로 의원이 외교위원회에 들어온 이유는 순전히 대중국과의 철강무역의 관세문제(불균형)를 바로 잡기 위해서다. 그래서 외교위에서도 늘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에 소속되어 왔다.
만즐로 의원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신의 입법 활동 성과물은 걸프전 참전 군인들의 전쟁 후유증을 돕는 법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것이다. 1998년 아동학대 방지. 예방을 위한 가정보호(Family-Planning Clinics) 프로그램을 위한 연방정부의 기금을 만들기도 했다. 민주당 독주에 가장 강력하게 대항하는 행동주의자이기도 하지만 소신정치의 모범을 보이기도 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 3개의 자동차회사에 정부 금융지원(The Bailout Of The Big Three Auto makers))법안에 찬성한 32명의 공화당의원중의 한명이기도 했다.
112회기 연방의회는 여소야대의 형국에서 선거를 중심으로 운영이 될 것 같다. 신임 외교위원장은 각 소위원회 별로 뚜렷한 입장을 만들 것을 요청했다. 여. 야 합의가 없는 대외정책은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내기도 했다. 그 어느 때에 비해서 한반도문제에 ‘아시아태평양 환경소위원장’의 영향력이 크게 미칠 것 같다. 한국은 우선, ‘도널드 만즐로’ 신임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을 잘 이해하는 일이 기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