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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국대선] 역사의 현장 “선거판에서…” – 김동석

by kace

  • Posted on October 27, 2008

  • 뉴스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이슈에 밝아야 하고 정확하게 전망하려면 후보캠프의 전략가를 알아야 한다. 2000년엔 ‘앨 고어’만을 주시하다가 부시 진영의 ‘칼 로브’의 존재를 몰랐었고 2004년엔 ‘칼 로브’의 뒤만을 쫓다가 당시 유권자들에게 ‘국가안보’에 관련한 이슈가 얼마나 민감하게 작동되고 있었는지 놓치고 말았었다. 대통령후보들을 직접 경험해 보려는 의욕만을 갖고서는 안방에서 미디어로 접하는 것 이상으로 가능한 일이 없었다. 2004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질문과 문의가 있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가능한 피해다닐 정도였다. 명색이 ‘유권자센타’임에도 공중파 미디어 이상의 특별한 내용을 내 놓을 수가 없었다.  한인커뮤니티내의 요구도 있었지만 더 큰 성화는 한국내의 미디어와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미국내 한국인중에 누구 한사람이라도 이 복잡한 미국의 권력창출 과정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알아야 한다고 자존심을 건드리며 압력을 가해왔다. 미국 대통령선거전에 관해서는 납세자이며 유권자의 입장에서 각 당내의 예비경선 과정부터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2008년을 겨냥해서는 중간선거전인 2006년부터 준비를 했다. 현직에 도전하는 당의 입장에서 봐야 집권당을 훤하게 볼 수 있고 당내에선 2등의 눈으로 봐야 1등의 전략까지 힘 안들이고 관찰할 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민주당내의 2등 주자인 바락 오바마에 주목했다. 필자의 오바마와 인연은 2004년 보스톤 전당대회장에서 그가 연설준비를 하고 있을때, 당시 그는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에 도전한 무명의 인사였고, 그래서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때, 그때 만났었다. 우연히 같은 룸에서 행사를 기다리다가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2년후인 2006년 10월에 중간선거 지원유세차 뉴저지 호보콘을 찾았을때 그를 찾아가 다시 만났다.  순전히 2008년 대통령선거전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선거관련해서 지독한 관심을 갖고 있는 유권자센타내 자원봉사자 한명과 동행했는데 그는 그날 오바마를 직접 만나고서 아예 그의 캠프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가 지금 오바마 캠프의 핵심으로 일하고 있는 Ryan Kim(한국명은 김대용)이다.

  대통령선거전, 일주일 남겨둔 막판이다. 과연 미국의 역사에 최초의 여성부통령을 먼저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흑인대통령을 먼저 쓸 것인가? 에 전 세계인의 시선이 쏠려있다. 2006년 각 후보들이 선거캠프를 꾸리면서 솔솔 흘러나온 소문은 ‘바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이 대통령에 출마를 하는데 그것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짜여진 각본이라고 알려졌다. 필자도 그렇게 이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흑인이 선출직에 출마해서 지역의 주지사나 연방의원에 당선되는 것만으로도 아직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미국시민임이 자랑스러웠고 희망과 가능성을 언급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대통령직 출마는 그래서 필자에게도 ‘힐러리 대통령 만들기 전략’이란 것이 설득력이 있었고 이해가 더 빨랐다. 1월3일 아이오와 커커스의 현장에서 오바마의 캠페인(선거운동)을 직접 접해보기 전까지는 흑인대통령 아직은 아니란 단정을 했었다. 경선의 현장에서 비로소 오바마의 바람을 알아차렸다. 오바마의 바람은 선거운동(캠페인)이 아니고 사회운동(무브먼트)이었다. 돈이 안 드는 캠페인을 목격하고서 비로소 오바마의 힘을 실감했다. ‘변화(Change) 와 희망(Vision)’이란 두 단어만 갖고서 무지무지한 힘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오바마의 능력이 반이고 시민의 요구가 반이었다. 그 반반이 맞아 떨어지게 한 그것이 오바마의 전략이다. 그 태풍의 위력은 끊임없이 온라인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선거기금의 액수가 설명하고 있었다. 정치무관심층이 움직였고 정치혐오층이 관심을 나타냈다. 공화.민주 양당의 중간지대에서 선거때마다 날아다니는 무당적자들이 열광을 했다. 당내의 돈과 조직을 장악해서 이미 민주당의 대통령후보가 된 것으로 여겼던 힐러리 클린턴측이 소스라치게 놀랐고 당황했다. 그런데 이미 때는 늦었다. ‘흑인이 아직은 아니다…’란 그런말이 99% 통용되고 있음에도  오바마의 바람은 그야말로 쓰나미가 되어서 미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백인들만이 활용하는 미디어도, 백인에게만 작동하는 자본도, 백인들끼리만 주고받는 고급 정보도 이 오바마 쓰나미 앞에서는 무력했다. 오바마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전략가들도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민주당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화당의 정책을 생산하는 보수주의 브레인들이 설명하고 나섰다. 오바마 후보의 전진은 막을 수 없는 역사의 흐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즈의 데이빗 부룩도, 워싱턴 포스트의 찰스 쿠루해머도 “ 공화당의 존 맥케인은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 고 간접적으로 오바마를 인정하고 나왔다. 심지어는 시카고트리뷴이 뉴욕타임즈보다 앞서서 오바마를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공화당내 가장 신망이 높은 지도자인 콜린 파월이 오히려 역효과가 아닐까 망설이다 참지 못하고 공개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했고, 한반도관련 가장 정통한 전문가인 공화당원 도널드 그레그 대사가 , 공화당원으로 연방하원에서 오랫동안 아태소위원장을 지낸 ‘짐 리치’가, 공화당 상원의원중에서 소신정치인으로 소문이 난 네브라스카주의 ‘척 헤이글’ 이 오바마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오바마의 전략가인 데이빗 엑셀로드씨는 필자를 만난자리에서 ‘ 오바마는 선거전에서 정치인으로가 아니고 당신 같은 커뮤니티 활동가의 입장을 갖고있다 ’라고 설명했다. 맞는 이야기였다.

  “노예제 폐지”에 집중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한 링컨은 당시에 아무도 그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지 않았지만 그는 결국에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역사적 소신과 사명이 용기를 만들었고 그러한 지도력이 세상을 변화 시킨 것이다. 260 년 전의 독립전쟁이, 그리고 150년 전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이 전혀 당시엔 가능하게 보이지가 않았었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이번 대선전을 가르켜 미국역사상 3번째의 대변혁을 예고하는  선거전쟁이라 말하고 있다. ‘변화와 희망’ 이 압축된 전 세계인의 시선이 쏠려있는 이번 대통령선거전에 참여하는 일은 정말로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의 한표 한표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는 날카로운 펜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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