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과 카스피해 연안의 전쟁. – 김동석
by kace
Posted on August 8, 2008
13세기의 세계적인 탐험가 마르코 폴로의 중동지역 여행기에 “쉽게 불붙고 낙타의 옴을 깨끗하게 치료하는데 매우 유용한 까만 액체가 흘러나오는 지역…”이라고 카스피해 연안을 소개했다. 그 지역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원유를 설명한 것이다. 이슬람교가 태동하기 이전 이란과 인도에서 성행한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배하는 종교였다. 조로아스터교가 불을 숭배하게 된 것은 카스피해 연안의 원유에 불이 붙어서 타오르는 “영원한 불기둥”을 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노벨가의 두 형제 ‘로베르트’와 ‘루트비하’가 유전개발 기술과 원유의 수송방법을 혁명적으로 개선해서 노벨가와 파리의 로스차일드 가문에 떼돈을 벌게 해 준 곳이 바로 이 카스피해 연안이다. 노벨 형제들 중 셋째인 알프레드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후일 노벨상을 창시하고 그 기술을 미국의 듀퐁사와 네덜란드의 로열 더치 쉘사에게 제공해서 오늘날 세계 최고의 에너지회사가 되는데 초석을 깔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가 볼세비즘의 공산혁명으로 인하여 소비에트연방이 형성되어 카스피해는 소련과 이란, 두 나라만이 국경을 맞대고 있게 되었다. 카스피해 연안은 원유의 매장량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소련과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해서 원유 시추를 미루어 왔고 소련은 거대한 시베리아 유전에 대한 투자가 더 시급하여 그 지역 시장의 소비량 정도만을 생산하는 수준에서 원유를 시추해 왔다. 1991년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는 카스피해의 원유를 놓고서 5개의 독립국가가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했다. 러시아, 이란, 아제르바이젠, 그루지아, 투르크메니스탄 이다. 원유를 염두에 둔 경쟁의 시작은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불을 붙였다. 동시에 미국의 기업을 보호 한다는 명분으로 미군기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미군기지에 불편함과 불만을 갖기 시작한 러시아와 중국이 슬그머니 참견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확인된 세계 원유매장량의 6%가 카스피해 연안에 있으며 천연가스는 거의 40%가 바로 이 지역에 있다. 사실상 이 지역은 개발이 안 된 세계 최후 최대의 유전지대이다. 유럽과 동아시아 및 북미지역에 대한 석유공급을 둘러싸고 걸프지역과 경합을 벌리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이 1993년부터 순 원유 수입국이 되면서 카자흐스탄에서 신장지역을 거쳐 상하이로 연결되는 파인프라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상상조차 어려운 거대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원유와 가스는 노천 파이프 라인을 통해서 시장으로 수송되어야 하는데, 미국으로서는 이 지역에서 어떻게 계획해도 원유수송의 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될 수가 없는 것이다. 체첸반군, 아르메니아 영토회복주의자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아프카니스탄과 쿠르드족 게릴라들이 카스피해의 모든 알려진 경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하기 이전,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의 석유기업들은 이 카스피해 연안의 5개 나라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 파이프라인 사업을 성사시키고자 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고 카스피해 연안국에 대규모의 미군 기지를 건설하였다. 지금은 이들 미국의 석유메이저들 쉐브론텍사코, 유노칼, 아모코, 엑손모빌 등이 안전하게 자리를 틀고 있다.
현재 미국의 정부와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송유관 프로젝트는 총 연장 1,091 마일에 달하는 바쿠-제이한 파이프 라인 프로젝트이다. 카스피해 중심부인 아제르바이젠의 바쿠를 출발로 북서쪽의 아르메니안, 그리고 그루지아를 거쳐서 흑해의 바투미항에 닿는 경로이다. 카스피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루트에 러시아와 이란에 닿지 않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최적의 송유관이 되는 것이다. 2002년 9월 미국의 스펜서 에이브러햄 에너지 장관은 아제르바이젠과 그루지아를 방문하여 송유관 건설 기공식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그루지아 정부는 미국의 송유관을 위해서 가장 경관이 수려하고 그루지아의 주요 수출품중의 하나인 광천수의 수원지까지 미국에 제공했다. 이 프로젝트를 보호하기 위해서 2002년 미국은150명의 특수 부대와 10대의 전투용 헬리콥터를 그루지아 공화국에 파견했다. 러시아의 간섭을 피하려는 세력을 부풀려서 그루지아의 공화국에 친미권력을 확보한 것이다. 뉴욕의 콜롬비아와 워싱턴의 조지타운에서 미국정부의 장학생으로 공부한 샤카슈벨리가 그루지아의 대통령이다.
샤카슈벨리 그루르지아 대통령은 그루지아 공화국의 통합을 위해서 자국 내 러시아 세력을 압박했다. 그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러시아가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워서 그루지아를 공격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동시에 전쟁이 터졌다. 미국이 바싹 긴장했다. 순식간에 미국과 러시아의 전선이 형성되었다. 미국으로의 원유수송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그루지아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은 미국에게 대단히 민감한 일이다. 더구나 고유가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신경이 곤두섰다. 권력교체기에 미국의 힘이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깊고 깊게 이해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