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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국대선] 복음주의 표밭에 고심하는 “바락 오마바” – 김동석

by kace

Admin   2008-07-03 16:19:11, Hit : 17, Vote : 7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정치.사회 운동 세력이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남북전쟁 이후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기독교 세력은 사회.정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기독교세력은 화폐개혁, 기업부정에 대한 규제, 국민제안, 국민투표..등 직접민주주의의 채택 등과 같은 운동을 추진해서 시회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미국서의 기독교세력은 미국 정치와 문화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2차대전  급격한 사회변화가 일어나면서 기독교는 주요문화 세력이란 성격을 잃었다. 급속한 도시화, 과학과 기술의 확산, 비개신교 이민자사회내의 높은 출산율 등으로 인해 한때 기독교에 유리했던 조건들이 근거를 점점 잃기 시작했다. 북부의 대도시 지역에서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과학적 지식을 종교적 권위의 상위에 위치시키고 쾌락과 물질적 가치를 부추기는 추세가 늘어남에 따라 기독교 보수세력의 중심은 이때부터 농촌이 많은 남부로 옮겨졌다.

옛 기독교 보수 세력은 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화당이 급진적인 ‘국가재건’, 즉 북부가 주도하는 남부의 재편에 나서자 위기감을 느낀 남부의 기독교도들은 민주당과 결합하는 쪽을 택했다. 특히, 1930년대 민주당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가 남부지역 내 기독교 보수 세력 이었다. 이러한 남부 기독교 보수세력과 민주당의 연계는 1960년대 까지 이어졌다. 기독교 보수 세력의 첫 변화는 1960년대의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났다. 민주당이 카돌릭 교도인 존 케네디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자 기독교 보수 세력이 갖고 있던 카돌릭에 대한 해묵은 반감이 되살아나 남부의 대부분 기독교도들이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들 기독교 세력은 1964년엔 공화당 상원의원인 베리 골드워터를 지지했고, 1968년엔 독자후보로 나온 남부출신인 조지 윌리스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러나 1976년 남침례교의 주일학교 교사출신으로 대통령 후보에 나선 ‘지미 카터’는 기독교 보수주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진보적인 정책을 옹호했다. 남부 기독교도들이 나서서 카터를 대통령으로 당선 시키면서 남부 기독교세력이 조직화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정치세력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교파가 남부 최대의 복음주의(Evangelicalism)교단이다.

복음주의자(Evangelical)들의 기반은 교회에 있지 않다. 이들은 교회와 사회의 틈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낸 폭넓고 분산된 조직들을 활용한다. ‘교회를 넘어서’라는 뜻을 지닌 준교회(Parachurch)는 음악.서적 출판업자, 라디오.텔레비젼 방송국, 영화 스튜디오, 학습센타, 연구소, 초.중등,대학인 교육기관, 등에까지 확장되어 있다. 각종 사회조직으로는 Promise Keeper(약속을 지키는 사람), CCC(Campus Crusade for Christ), YMCA, ICF, 등이다. 이들 조직원들의 특징은 종교적 신념의 기동성을 갖춘 활동가들이란 점이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두드러진 방송을 통한 복음 전도는 복음주의를 미국인의 일상으로 정착시키게 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이 한편으로 교회확장으로 이어졌다. 대기업형태의 매머드급 교회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중간규모의 지방 교회들도 교육,보육,상담, 등의 서비스를 통해 교회가 신앙생활의 장소에서 사회 서비스 센타로 변모함에 따라 일정하게 정부의 규제대상이 되게 되었다. 따라서 복음주의 교단 내의 교역자들이 정치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지난해 사망한 ‘제리 폴웰'(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목사와 친분이 가장 두터운 복음주의목사) 목사는 텔레비전 전도사로 시청자들에게 직접 호소해서 기독교 우파 정치조직인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를 창립했다. CBN(기독교방송 네트워크)회장인 그 유명한 팻 로버트슨 목사는 복음주의 최대 정치조직인 기독교연맹(Christian Coalition)을 창설해서 자신이 스스로 1988년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하기도 했다. 남부 복음주의자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아이오와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아버지 부시 후보를 제치고 ‘밥 돌’후보에 이어 2등을 하기도 했다. 복음주의자들은 투표율이 대단히 높은 데다 표 쏠림 까지 심해서 어떤 인구집단보다 큰 영향력을 갖는다. 1980년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2000년, 2004년도 부시 대통령에게 몰표를 쏟아 줌으로써 지난 8년간은 기독교 공화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다. 지난 8년 동안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들라면 복음주의 거두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그의 아들 후랭크 그레이엄 목사라고 한다.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가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1일 오바마 후보는 오하이오 자네스빌의 커뮤니티 기독교 교육센타를 방문해서 자신은 “부시 대통령이 추진한 기독교 사회봉사기관에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더욱더 확대하여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바마 후보는 스스로 직접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찾아가서 자신의 기독교 신앙이 복음주의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대선전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남부 복음주의자들을 어떻게 공략할지 오바마측에선 가장 큰 캠페인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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