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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국대선]마틴 루터 킹 목사와 바락 오바마 후보 – 김동석

by kace

Admin   2008-04-07 12:00:27, Hit : 121, Vote : 51

  비폭력을 주장하고 백인의 양심에 호소하며 흑인 민권운동을 이끌어 왔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평등과 자유’가 지구촌 인류공동의 숙제임을 갈수록 절감하게 되었다. 인종차별의 철폐가 법적으로 보장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 문제는 빈곤과 결합되어 있으며 빈곤의 해결은 교육이 관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백인과의 완전한 평등권은 역사인식의 공유 없이는 가능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킹 목사는 백인 정치지도자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의와 평등’이란 꿈의 실현은 백인들과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할 때 실현되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서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자각했고 그래서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발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4년 킹 목사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전 세계인의 양심이 되었다. 그는 자유를 위한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동시에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제3세계 민권 .민중 운동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킹목사의 주장과 요구를 어느 수준에서 수용했던 백인권력의 중심은 더 이상 묵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킹 목사는 베트남전 반대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그리고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렸다.

  주유소와 상점을 털며 교도소를 수차례 드나들던 좀도둑 제임스 얼 레이는 미주리주 교도소를 탈옥해서 멤피스로 잠입했다. 흑인 청소부 노동자의 파업을 지원하러 테네시주 멤피스시에 와 있던 킹 목사가 아침시간 일행이 묵고 있는 한 모텔의 발코니에 나왔다가 좀도둑 탈옥수 레이에게 저격을 당했다. 역사의 거목이 쓰러졌다. 1968년 4월4일 킹목사 나이 39살이었다. 분리주의를 외쳤던 과격운동가 말콤 엑스가 맨하탄 할렘에서 암살당한지 꼭 3년후였다. 놀랍게도 범인은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다. 목격자가 없었는지 어떠한 비호세력이 있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범인 레이는 캐나다에서 만든 위조여권을 갖고서 유럽을 유유히 배회하다가 런던의 히스로 공항에서 두 달 만에 잡혔다. 멤피스 연방법원에서 재판이 열렸다. 범행을 자백하고 99년형을 받았다. 범행자백 3일 만에 ‘ 강요에 의한 자백이었고 모든 것은 음모라고 번복했지만 그 이상 암살사건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없다. 레이는 70세가 되던 1998년 복역중에 간경화로 사망했다. 탈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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