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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조망]일본의 로비 힘 잃었다 – 김동석

by kace

Admin   2007-08-08 16:10:35, Hit : 300, Vote : 91

일본은 미국을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그로 인한 댓가로 가공할만한 위력의 원자폭탄 희생을 치렀다. 핵폭탄으로 국가가 피폐해진 일본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열렬한 평화주의 국가가 되었다. 일본의 헌법을 다시 쓴 연합국 점령군은 명시적인 평화주의 조항인 헌법 제9조를 삽입했는데 ‘일본은 국제관계에서 무력사용을 영원히 포기한다’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서 일본인들의 반전감정이 사라진 뒤에도 일본국민들은 일본의 무력은 자위대 수준에서만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일본은 모든 국恝〕恪嗤?경제발전에 집중해서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국제사회에 경제강국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23일자 뉴욕타임즈 전면엔 일장기가 선명하게 박혀있는 일본산 최첨단 전투기인 F-2의 위용이 실려 있다. 과거사(전쟁)의 명백한 정리 없이 군사대국화를 꾀하는 일본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단 반전을 외치는 평화운동가들만이 아니고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염려이다. 따라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은 이러한 측면에서 진정으로 일본을 위하는 결의안이다.

한국전쟁이 종료되고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이념적 양극체제가 되고 말았다. 미.소가 대치하고 있는 동북아지역의 한반도가 전쟁발발의 긴장이 가장 고조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소련에 대항해서 미국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무력이 해제된 일본의 공산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한반도의 후방기지로서 일본의 무력기지화가 오히려 미국의 과제가 되고 말았다. 1952년 다시 독립국가로 지위를 회복한 일본은 핵무기 사용을 영원히 포기했고 공식적으로 미국이 일본내에 핵무기를 비축하는 것도 금지했다.

따라서 전후 초기에 펜타곤의 전략가들은 일본정부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는 일본내 미군기지를 찾았는데 바로 그곳이 ‘오끼나와’이다. 1945년 격렬한 전투와 가미가제 자살 현장이기도 했던 오끼나와를 미군이 실질적으로 병합하게 되었다. 그후 1972년까지 오끼나와는 펜타곤이 직접 다스리는 식민지로 유지되었다.

미국에 대한 오늘날의 ‘푸에르토리코’ 신세와 똑같았다. 130만명의 오끼나와인들은 나라도 없고 일본국민도 미국국민도 아닌 채 미국 육군중장의 통치를 받고 살아야만 했다. 미군정에 저항하는 오끼나와인들은 공산주의자동조자로 선고를 받았고 그들중 수백명은 볼리비아로 추방되어 아마존 강 상류의 밀림에 버려진 채 인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 통과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워싱턴 최고의 정치거물 ‘이노우에’ 상원의원이 상원에 의견서를 냈다. 그는 국익을 위해서 미일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의안이 통과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으며 전후 볼리비아로 쫓겨간 오끼나와인들에게 미국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예로 들었다.

‘일본군강제위안부’도 볼리비아로 쫓겨 간 ‘오끼나와인’도 인권이 유린된 전쟁의 피해자들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자세는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연방 정치인들이 ‘인권에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라고 하면서 결의안에 동조하고 결의안을 옹호하고 있다. 45년 의정생활의 ‘이노우에’의 주장은 궤변이 아니면 그가 하와이를 지역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경을 지역구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 6월26일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에서 39대 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하원 전체회의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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