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엔 분명히 “봄”을 확신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4월엔 “희망”까지가 아니더라도 어떤 “기대감”도 없는 듯하다. 그리고 벌써 4월이 거의 다 갔다. 역설적으로 어떤 큰 사고나 사건, 탈 없이 지나가는 4월을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유독 4월에 참혹한 일들이 많이 터졌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은 미국계 영국시인인 Thomas Sterns Eliot가 그의 “황무지(The Waste Land)”란 시에서 언급한 말인데 이것이 마치 한국인들을 예견한 말 같이 우리에게 4월은 그야말로 잔인했다. 최근의 일로만, 2011년 천안함 사건이 4월에, 그리고 2년전 세월호 사건도 4월이었다. 그런데 미주한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미주한인들에게 4월은 잔인하다 못해 참혹하다. 우리에게 뼈저린 교훈을 남긴 LA폭동이 1992년 4월29일에 터졌다. 버지나아공대 조승희의 총격사건도 2007년 4월이었다. 이만하면 올해 4월이 이정도로 지나가는 것에 오히려 감사할 일일지 모른다.

1992년 4월29일에 발생한 LA폭동이 올해로 꼭 24년째다. 사반세기가 지났다. LA폭동은 LA의 한인사회가 아주 폭삭, 쫄딱 망한 사건이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납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선량한 시민임에도 정부로부터 인명·재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사건이다. 법치국가에서 법의 보호도 받지 못했고 사후 폭동의 피해에 대해서 어떤 보상이나 배상도 받지 못했다. 한인사회(선량한 시민)를 무법으로 공격한 범법자들을 징벌하지도 못했고 시민의 입장에서 정부나 경찰에게 책임도 묻지를 못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고 치욕적이고 창피한 사건이 아닐수 없다. 1992년 LA에서 발생한 폭동이 바로 이렇게 설명된다.

LA폭동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불황에서 오는 대도시 슬럼가 극빈층의 사회폭동이다. 한인들에게 불만을 품은 흑인과 남미계들의 공격이 아니다. ‘한흑갈등’이란 용어가 나왔는데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백인주류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쏟아낸 용어다. 폭동의 본질은 빈곤의 문제이고 그 책임은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져야 할 일이었다.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문제에 불만을 품은 남미계와 흑인들이 ‘로드니 킹’의 재판에 그 불만을 폭발 시켜서 폭도가 되어 거리로 몰려 나왔다. 책임을 져야 할 주류 백인들이 백인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뒤에 숨었다. 폭도들은 힘이 센 백인들에겐 감히 어떻게 못하고 그 화풀이를 한인들에게 해 댔다. 주류사회의 언론들은 한인과 흑인간의 갈등으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흑간 관계를 이간 시켰고 피해자인 한인들이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책임을 져야 할 백인 주류층의 대단히도 절묘한 미디어 플레이가 성공했다. 그 결과로 LA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흑인들은 한인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인종적으로 혐오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흑인과 한인들간의 관계의 불씨로 남아있는 위험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20일,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 단지를 순찰하던 새내기 경찰이 쏜 총에 무고한 시민이 맞아 숨졌다. 숨진 시민은 20대 후반의 흑인 남성으로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 최근 미 전역에서 심각하게 인종문제로 번지는 경찰의 과잉 진압과 폭력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가해자인 백인 경찰에게 석연찮은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같은 소수계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금방 떠오른다. <사실, 필자는 오랫동안 뉴욕경찰의 과잉진압과 폭력에 앞장서서 항의해 왔었다> 여기까지면, 최근 관례로 볼 때에 누구든지 흑인 남성을 총으로 쏴서 숨지게 한 새내기 경찰에게 무죄가 선고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이 부르클린 사건의 전개는 달랐다. 새내기 경찰에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 경찰의 이름은 ‘피터 량’으로 중국계 미국인이다. < ‘피터 량’사건이 일어난 지 몇일 후에 세인투 루이스에서는 흑인 청년을 총으로 쏴서 숨지게 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은 기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피터 량’이 15년 형을 선고받자 중국계가 들고 일어났다. 백인경찰은 늘 무죄고 아시안 경찰에겐 유죄로 결정하는가? 라는 인종차별 이슈로 목소리를 힘껏 냈다. <사실, 필자는 총을 쏜 경찰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가장 씩씩하게 항의를 해 왔다>

지난 4월19일, 전경배 한인판사가 ‘피터 량’사건의 선고공판을 맡았다. 전경배 판사의 판결이 어떨지 전국적으로 비상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전경배 판사는 선고공판에서 피터 량 경관에게 적용된 과실 치사혐의를 ‘부주의에 의한 살인’으로 조정하고 보호관찰 5년과 8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아니다 다를까 흑인사회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흑인커뮤니티는 “정의가 사라졌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데일리뉴스등 일부 매체도 전판사의 판결이 잘못 됐다고 지적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데일리 뉴스는 같은 아시안끼리 짜고 친다고 지적하면서 인종에 의해서 정의가 왜곡됐다고 신문의 사설로까지 냈다. 인종갈등으로 비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욕의 한인사회는 어떤가..? 4·29폭동 24주년에 어느 단체장 한사람 그 사건을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 오만가지 일로 한인사회를 대표하겠다고 싸움에 가까운 경쟁을 하면서 “4·29폭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지도자가 없다. 아, 지금 리더쉽이 관건이다. 공부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든가, 지도자가 공부를 하든가 둘 중에 하나여야 할 텐데 말이다.

[ 4.29폭동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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