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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김’의 선거는 동포사회 전체가 나설 일이다. – 김동석

  2001년 9월11일, 필자의 관심은 온통 뉴욕시 20지역구 시의원 예비선거에 쏠려 있었다. 일찌감치 뉴욕시의원직에 목표를 정하고 아시안계를 중심으로 지지기반을 만들어 온 중국계의 ‘존 루’의 예비선거일이다. ‘존 루’는 1990년대 초반부터 뉴욕시 아시안커뮤니티의 권익활동에 가장 활발하게 앞장서 온 활동가였다.

그는 수년동안 아시안 2세들을 조직해서 아시안계의 밀집지역인 제 20지역구의 예비선거를 준비해 왔다.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뉴욕시의원의 연임제한이 법으로 규정이 되었다. 지역 토박이들이 터주대감으로 평생을 독차지해 왔던 시의원직을 내 놔야만 했다.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같은 아시안계로 예비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한인 테렌스박의 집요한  추적을 그야말로 성실한 발로뛰기 식의 선거운동으로 표밭을 다졌다.

9월11일 아침 8시경에 필자는 존 루의 캠프에서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후배( 이 후배는 당시 뉴스쿨에서 정치학박사학위 중이었고 현재는 한국에서 미국정치 전문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와 통화를 했다. 존 루가 “ 승리를 자신하지만…, 여하튼 다음을 위해서 다시 뛰어야 한다 ” 를 강조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승리를 가슴 설레이게 기대를 하면서 투표소로 가는 도중에 그만 그 참혹한 9.11테러가 터진 것이다.  미국 전역이 비상상황이 되어 버렸고 역시 뉴욕시 선거도 중단 되었다. 9.11테러로 연기된 투표일까지 약 한달 동안을 ‘존 루’는 선거운동의 미진했던 부분을 보충하라는 기회로 삼았다. 결국에 그는 예비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본 선거를 통해서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계 뉴욕시의원이 되었다.

시의원에 당선이 되고서 그는 ‘ 한인경쟁자가 있었지만, 한인들의 덕분에 시 의원이 되었다고 ’ 하면서 자신은 정치인으로 앞으로 한인들과 늘 함께 하겠다고 그야말로 프로다운 발언을 반복했었다. 9.11테러 의 영향으로부터 뉴욕시 아시안계를 보호하는 임무에 충실한 ‘존 루’는 만8년 동안  미국의 주류정치권내에 “ 아시안이 정치를 해도 잘 한다 ”란 평가를 받았고 그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의 감사원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뉴욕시 감사원장 민주당 후보가 되었다.  ‘존 루’의 측근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 그의 연속된 승리와 성공은 그가 언제 어디서고 절대로 방심하지 않는 냉정함 ”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8년 동안 뉴욕일원 한인사회가 ‘존 루’ 의원과 맺어 온 관계를 생각하면 뉴욕시 시의원 이란 것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한인동포사회가 19지역의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된 ‘케빈 김’을 주목해서 거의 흥분에 가깝게 환호하는 것이 절대로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일각에선 한인시의원을 전제로 앞으로 한인사회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를 섣불리 예견하기도 한다. 뉴욕시에서 민주당후보가 되면 거의 자동으로 본 선거에 이긴다 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만8년전에 ‘존 루’는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는 연임시의원이고 그러한 철저함 덕분으로 지금은 감사원장 후보가 되었다. 우리가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민주당의 절대 다수 백인들의 표심이 당의 후보라고 해서 아시안 후보에게 무조건 투표한다고 검증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케빈 김’의 선거가 20일 남겨두고 있다. ‘뉴욕시의원’이란 지위와 직책의 중요함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케빈 김의 선거는 한인동포사회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의 지역구가 한인동포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고 동시에 한인 이민역사가 시작된 지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그의 정치적 지지기반의 기본이 바로 한인동포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케빈 김’이란 후보는 한인커뮤니티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한인1.5세의 리더(지도자)이며 동포사회가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인물(수재)이라는 것이다.

케빈 김이 정치지도자로 잘 커나가서 성공해야 하는(동포사회가 잘 키워서 성공시켜야 하는) 또 다른 분명한 이유는 그의 성공이 ‘한인커뮤니티’라는 공동체의 성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인으로 기필코 성공해서 좋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의 뒤에는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무수한 한인 2세들이 있다.  그는 공부를 잘한 소위 아이비리그 출신이지만 부모가 속해있는 한인커뮤니티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연방정치인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지독하게 한인(부모 커뮤니티)의 이슈에 집중 했다.

스탠포드, 콜롬비아를 졸업해서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 공부를 했다. 그가 스스로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기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 했는가?에 대해서는 지금 그가 유창하게 구사하는 우리말 실력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백인사회에서 경쟁하고 출세하려면 한인사회를 피해야 하고 발음의 액센트를 없애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식교육관을 갖는 한인부모들에게 ‘케빈 김’은 올바른 교육방향을 제시해 주는 가장 좋은 귀감이 된다.

그도 감수성이 예민한 20대에 부모를 떠나서 학업에 전념했지만 한국인 특유의 정서와 관습, 그리고 예절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한인 프로페셔널로 사회활동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약자인 소수계에게 관대했고 지배층(기득권)의 강자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갖는 것을 습관화 했다.  그의 정치적 대부격인 롱아일랜드, 베이사이드의 연방하원인 게리 애커맨은 자신의 고정 지지기반에서 내 세운 시의원 후보를 지지해야만 함에도 오히려 ‘케빈 김’을 지지 선언했다. 자신의 보좌관으로 일하는 ‘케빈 김’의 정치적인 자질과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뉴욕의 한인동포사회는 오는 11월3일 기필코 ‘케빈 김’을 시의원에 당선시켜야 한다. 이민역사 100년을 자랑하는 한인동포사회의 공동의 과제이다.  공동으로 성취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번 ‘케빈 김’의 선거는 한인이기 때문에 한인을 당선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절대로 아니다. 뉴욕도시권 한인동포사회가 스스로의 힘으로 한인 정치인을 배출 해야만 하는 일은 시대적인 과제인 동시에 (이민)역사적인 요청이다. 35만 이상의 한인동포사회(공동체)가 이것을 반드시 해 내야만 하는 이유는 ‘케빈 김’이란 후보가 한인을 대표하고 대변할 인물로 최적이면서 동시에 주류 정치권의 여타의 후보에 비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번 ‘케빈 김’의 선거는 동포사회 전체가 집중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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