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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국대선] 대선전의 “변화” 는 빈말이 아니다. – 김동석

   2003년, 새해에 들어서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결정했다. 대량살상무기의 은닉처인 이라크를 무장해제 시켜야 국제사회가 테러로부터 안전을 꾀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서서히 유포시켜 왔지만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데엔 실패했다. 파월 국무장관은 마지막 사력을 다해서 유엔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파월 장관에게 유엔의 동의가 없는 전쟁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파월장관은 명분 없는 전쟁의 무모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가장 반대해 나선 나라는 유럽의 프랑스다. 프랑스 외무장관인 ‘도미니크 빌팽’은 뉴욕의 유엔본부로 날아와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맞섰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빌팽의 연설에 유엔회원국들이 박수를 보내자 존 네그로폰테 미국 유엔대사가 회의장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모습이 TV를 통하여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미국 안에서 반 프랑스 여론이 조성되었다. 워싱턴 DC의 의회내 구내식당에서 파는 감자튀김의 이름이 ‘프렌치(프랑스)프라이’에서 ‘프리덤프라이’로 바뀐 것이 바로 이때이기도 하다. 파월장관의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군인출신인 파월 장관은 전쟁을 정치처럼 여기는 정치인들 틈바구니에서 ‘승리를 위한 신중론’을 혼자서 고집하며 거의 왕따의 수준에서 시달리고 있었다. 마침내 미국은 유엔의 동의 없이 전쟁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백악관의 국가안보 상황실에선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럼스팰드 국방장관, 그리고 풀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개전 일에 대한 논의로 머리를 맞대었다. 논의의 가장 중심역할을 해야 할 파월 국무부장관의 모습은 없었다.    

  2003년 3월20일 오전 11시 30분, 수도 바그다드를 정밀 폭격하는 하는 것으로 이라크침공을 개시했다. 전쟁은 국제적인 지지를 받지도 못했고 전후 통치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라크를 침공하고 점령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난관에 부닥쳤다. 외교. 군사. 정치적 난관이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미국을 반대하는 움직임을 주도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미국은 부랴부랴 국제적인 지지가 있음을 과시해야했다. 세계 각국에 온갖 압력을 가했다. 미국은 아프리카 중소국가를 중심으로 46개국의 지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46개 명단의 다수를 차지한 것은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작은 나라들이다. 전례 없는 외교적 실패였다.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 방법에 별 비중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이라크 침공직전  럼스팰드 국방장관은 영국이 멈칫거리자 “ 영국이 곤란하면 미국 혼자서 공격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럼스팰드 국방장관을 위시한 네오콘 전략가들은 이라크 점령이 예상보다 쉽게 성공하자 파월 국무장관을 비롯한 온건파의 말을 듣고 이라크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간 것이 잘못이라고 목소리 높여서 성토하며 국무부의 전면적인 개편을 주장하기도 했다. 바그다드에서 후세인의 거대한 동상이 쓰러진 4월 하순, 럼스팰드 국방장관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주최한 이라크 점령 축하 파티에는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더글러스 파이 국방차관,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 영국대사 등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신중론을 주장하면서 침공에 소극적이었던 파월 국무장관은 초대받지도 못했다. 국무부 쪽은 “ 그런 파티가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라고 했다. 5월1일 부시 대통령은 미국 군함위에서 행한 승리연설에서 “병사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바그다드를 점령했다. 미국 육군의 기술과 힘을 세계에 보여줬다”라고 표현했다.  

  ‘전쟁승리’의 분위기를 만들고 그런 여세를 몰아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4년 선거에서 부자 대통령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 후 승리를 선언한 전쟁은 끝이 나질 않았다. 계속해서  미군의 피해는 늘어만 갔고 전쟁비용은 눈 덩이처럼 불어났다. 전비를 충당하느라 국가 재정은 고갈 되었다. 국제사회에서의 도덕적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미 국민은 2006년 중간 선거를 통해서 잘못된 전쟁, 실패한 정부로 판결을 했다. 전쟁을 주장했던 강경파 네오콘들이 슬금슬금 어느새 워싱턴에서 사라졌다. 부시정부의 전쟁에 동조했던 공화당내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서 부시와의 거리두기에 여념이 없다.

  공화당내 가장 신망이 높은 지도자인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상대당 후보인 ‘바락 오바마’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그의 성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치철새 운운하지만 그는 맥케인이 주장한 그야말로 국가우선주의(Country First)에 입각해서 그렇게 판단을 했다고 했다. 힘의 오만과 횡포는 끝내 망하고 만다는 사실이 국가차원에서도 이렇게 빨리 입증이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채 5년이 안 되었는데도 말이다.  2008년 대선을 통해서 엄청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외교정책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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