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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속의 한인들의 희망 – 김동석

뉴저지 주에서 오바마 3인방을 들면 뉴왁 시장인 코리 부커, 에디슨 시장인 ‘준 최’, 그리고 제9지역구(버겐 카운티 한인밀집지역) 연방하원인 ‘스티브 로스맨’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안방인 이곳에서 일찌감치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공통점 이외에도 이들 3인의 공통점은 커뮤니티 아이디어 활동가 출신의 선출직 정치인이다, 그리고 개혁과 희망의 정치성적표가 바락 오바마를 꼭 닮았다. 개혁, 교체 그리고 희망의 씨를 뿌리고 있는 ‘비주류 개척자가’ 이들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이들 3인은 워싱턴 중앙정치 무대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감히 반기를 들 수 있었다. 물론 이들에겐 앞을 정확하게 내다 볼 수 있는 정치 감각이 있다 그래서 정치 분석가들은 “그들의 과감한 모험심”으로 이 3인을 한 울타리로 묶고 있다.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터진 ‘짐 맥그리비’의 동성연애 스캔들은 뉴저지 주 시민들에겐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가 큰 정치인으로서 정도의 길을 걸어 온 자력갱생의 정치 스타의 상징이었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는  정직과 신뢰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 해 온 뉴저지 민주당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관한 시민들의 거부감에 앞서서 공인으로서의 그의 사생활이 거의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정직성’의 문제가 생기면 순식간에 정치적 생명이 끝나게 되는 것이 미국정치계의 전통으로 되어 있다. 잔여 임기가 1년 이내면 부지사가(뉴저지에선 주 상원의장) 주지사직을 대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해 11월 선거를 치러서 새 주지사를 선출한다. 주지사직을 놓쳐서는 안 될 민주당에서는 그러한 스캔들임에도 불구하고 맥그리비의 사임을 잔여임기 1년 이내로 하기 위해서 스캔들 주지사를 갖고서 고통의 기간을 3개월 이상 끌어야 했다.

2005년을 리차드 코디 상원의장의 대행으로 1년을 넘기고 부자정치인의대명사인 골드만 삭스 CEO출신 ‘존 코자인’이 주지사에 당선 되었다. 사실은 뉴저지 민주당의 맹주는 2000년 대선 주자로 돌풍을 일으켰던 ‘빌 브래들리’였다. 연방 상원의원 출신인 브래들리는 중앙 정치무대에서 모든 사회. 정치적인 약자들의 방패막이처럼 역할을 해 왔었다. 주지사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준비된 것이 ‘돈“밖에 없었던 ’존 코자인‘의 목표는 그래서 우선브래들리였다. 그래서 코자인에게 브래들리의 은혜는 하늘같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당시 브래들리를 찾아간 코자인은 브래들리의 정치적 판단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어리지만 아주 똑똑한 아시아 계 인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현재 에디슨시의’준 최‘시장이다.  

‘바락 오바마’란 인물이 2004년 보스톤의 민주당전당대회에서 순식간에, 요행으로 정치 스타가 된 것이 절대 아니다. 길지는 않지만 일리노이에서의 그의 정치역정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과정이다. 시카고 슬럼가에서 흑인 극빈층들의 일상을 눈물로 지켜보면서 그는 빈민가의  청소년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슬럼가의 빈곤을 직접 체험하면서 미국의 뒷골목 민중들의 고통과 애환을 공감하기도 했다. 월 스트릿의 고액 년 봉자들, 할리우드 스타들, 그리고 최고위 정치인들, 이들의 화려한 모습과 그 뒷골목의 인간 이하의 지독한 빈곤을 동시에 경험한 오바마 부부의 소신과 철학이 무엇인가를 짐작해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정치적인 계산 없이 토해내는 오바마 부부의 소신 발언이 미국의 리더쉽을 공격하기도 하고 미국을 가장 부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최고의 학벌로 상류층 생활이 보장되었지만 그는 커뮤니티의 활동가로서 정치생활을 시작했고, 지역의 선출직에서, 연방 상원의원이 되면서 그는 더욱 강도 높게 워싱턴 인사이더(로비스트와 그와 결합된 부패정치인들)들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변화이고 희망이 된 것이다.

코리 부커는 하버드 법대라는 최고의 학벌로 고액 연봉의 변호사직업을 갖추었지만, 흑인 빈민가의 극빈층들의 비참한 일상을 보면서 동부지역 최대의 흑인빈민들이 밀집된 뉴왁시로 들어갔다. 오히려 부패한 흑인 정치인들이 문제가 된 것을 목격하고 시장이 될 것을 결심했다. 부패를 고발하고 개혁을 입에 오르니 토박이들의 저항이 엄청나게 거셌다. 그래서 그는 뉴왁시 다운타운에서 거리의 부랑 청소년들과 함께 노숙을 하면서 청소년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거의 조폭의 두목이라 오해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흑인청소년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시의원을 지냈고, 2006년에 드디어 시장 직을 거머쥐었다. 지금 그는 개혁의 전도사로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오바마와 닮은꼴이다.  

9지역구 연방하원인 로스맨은 재력가다. 베겐 카운티의 사립대학인 ‘패얼리 딘킨슨’대학 소유주 집안이다. 돈에 집착하지 않으니 소신정치인이 되었다. 당론에 반하는 일에도 서슴없이 나선다. 그래서 그는 카운티 선출직 판사에서 단숨에 연방하원에 당선이 되었다. 실력과 소신은 곧 개혁과 변화로 이어진다. 오바마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고 당의 후보로 확정 될 때 까지 거의 1년 동안동부지역 유일한 공개 당연직 대의원을 유지했다.  

최준희 에디슨시장은 MIT, 콜롬비아 출신의 수재이다. 세탁소를 경영하는 부모 밑에서 이민 1세들의 생업을 직접 체험하면서 에디슨에서 컸다. 그는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 설계를 해야만 했다. 한인2세에게 정치인으로의 진출을 안내할 아무런 것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는 한인사회에서 입만 열면 2세 정치인 ‘롤 모델’을 언급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스스로 개척하고 있는 셈이다. 우주공학을 전공했지만 선출직 정치인에 대한 그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뉴욕 주 민주당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 실력자(쿠오모계)들과의 교분이 끈끈한 한인 ‘그레이스 유’씨와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에 밝은 현대그룹 사장 출신의 김영덕 박사를 만나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아시안 전문인들을 조직했다. KALCA의 시작이었다. 최초의 아시안 시의원으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존 루’ 뉴욕시의원도 같은 멤버였다. 2000년 대선후보로 돌풍을 일으켰던 ‘뉴저지 출신의 ’빌브레들리‘ 캠프에 합류했다. 그 나이의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바로 이 판단이 그의 정치인으로의 향배를 결정하게 되었다. 단지 자원봉사자였던 최준희가 브래들리의 눈에 들게 된 것은 그의 열정(헌신)과 노력, 그리고 타고난 정치 감각 덕분이었다. 2004년 전당대회장에서 필자가 브래들리로부터 직접 들은 최준희에 대한 평가는 정직과 노력 이었다 그리고는 “ 그는 내 아들과도 같다 ”수준의 신뢰였다.

에디슨시장의 후보였을 때 브래들리가 직접 지원유세를 한 것을 미루어 그에 대한 브래들리의 신뢰를 짐작할 수 있다.2005년 시장선거에 열중할 때 브래들리는 오바마를 동행해서 에디슨 시로 최준희의 선거지원 유세를 했다. 오바마가 최준희를 옆에 세워서 “우리들을 보면 미국의 희망이 보인다.” 라고 열변을 토했고 관중들이 열광을 했던 그 장면이 필자의 눈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바마의 대선캠프에 브래들리의 참모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최준희 시장과 오바마와의 관계가 밀착되었다.                  

2009년, 에디슨 시 시장 재선 도전을 선언한 최준희씨는 정치격변기 미국에서 한인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던지고 있다. 그가 한인이기 때문이 아니고 그의 지난 2년 반 동안의 시장 성적표가 객관적으로 A를 받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세금을 축내는 공직자들을 과감하게 정리해서 능력 있는 대중정치인으로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그가 목숨을 걸고 개혁을 완성한 에디슨 시 경찰조직 개혁에 대해선 정치권에 이미 전설로 알려지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8월25일 민주당 전당대회의 주 스피커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그를 가리켜 지금 우리가  “제2의 오바마‘라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이 절대 아니다.   절반은 본인의 능력이고 절반은 커뮤니티가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인이다. 뉴욕시의 “존 루” 시의원을 키워낸 중국계 커뮤니티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급하다.

뉴저지에선 중국계도, 인도계도. 최준희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한인이다. 지금부터“최준희”가 명실상부한 미국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한인커뮤니티가 얼마나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하는 가에 달린 일이다. 최준희를 앞장세우려는 한인사회 움직임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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