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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폭동 19주년에…

by kace

  • Posted on May 6, 2011

  •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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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폭동 19주년에… 


  1992년 4월29일, LA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백인경찰의 횡포에 뭇매를 맞은 흑인들이 한인 타운에서 난동을 부렸다. 한인상점이 즐비한 시내가 혼란에 빠지자 더 신이 나서 날뛴 사람들은 남미계들이었다. 흑인과 남미계 부랑아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한인상점을 약탈하고 방화했다. 상점을 지키려고 안달을 하는 한인들이 집단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떼도둑들이 난동을 부리며 약탈하는 광경을 그냥 길거리에 주저앉아서 울부짖으며 바라다 봐야 만 했다. 불타는 한인 타운이 공중파에 실려서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필자는 개나리와 목련이 화사하게 만발한 화창한 봄날에 불타는 한인 타운을 뉴욕서 TV로 지켜봤다. 미국서 한국인이 어떤 처지이고 코리언 어메리칸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진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LA폭동은 필자를 정신적으로 철들게 하였다. 당시 필자는 평등한 사회를 전제하지 않는 ‘자유와 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표류에 가까운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다.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미국중심의 단극체제로 진입하기 시작한 바로 그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서 필자는 폭동을 목도했다. 이제 막 첫돌이 지난 갓난아기 아들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너무나 허약한 그래서 아슬아슬하기 까지 한 위태로운 한인커뮤니티의 현실을 냉혹하게 깨달았다.


   폭동의 피해자가 된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고립’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뉴욕과 LA의 한인 타운은 미국의 도시가 아니고 ‘대한민국 뉴욕시’, ‘대한민국 LA시’다. 미국의 실정법 하에 있으면서 한인끼린 한국 법을 기준으로 한다. 세금은 미국에 내면서 민원을 한국공관으로 가져간다. 폭동의 피해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미국정부에 묻고 요구해야 함에도 당시 한인들은 한국정부에, 한국정치인들에게 이것을 요청했다. 다인종 사회에서의 고립은 그야말로 ‘왕따’의 처지다.


소수계끼리의 연대와 협력 없이는 반복해서 폭동의 피해가 될 뿐이다. 자기네들 동네에서 돈을 벌어서 백인동네에 세금을 내면서 살아가는 한인들이 남미계나 흑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질지는 안 봐도 뻔하다.  생업의 현장이나 거주지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웃과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웃을 인정하고 이웃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폭동의 피해자가 된 것은 힘이 없는 이유다.


커뮤니티(집단)의 힘은 정치력이다. 특정 인종으로서의 힘은 정치참여(정치력)이다. 정치참여의 힘으로 정치인을 긴장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의 논리란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선단체의 손짓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와 닿질 않는다. 고립된 소수계의 처지를 탈피하기 위해선 주류사회로의 참여이다. 한. 두 명의 출세가 그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출세한 한인 2세가 한인커뮤니티와 관계하질 못하면 그것은 그가 한인이란 것에 주목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정부의 요직에 진출한 한인2세가 한인커뮤니티의 현실을 모르면 그가 아무리 힘 있는 공직에서 승승장구한다 해도 한인커뮤니티로는 그림의 떡만도 못하다.  4.29폭동이 발생했을 때, 그때도 한인 타운에 권리와 이익을 지킨다고 일하는 기관들이 있었고, 성공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더구나 주류사회에서 자랑스럽게 실력을 발휘하는 출세한 2세들도 없지 않았다. 연방정부 고위직의 한인2세를 우리는 스스로 입이 닳도록 자랑하고 칭찬했다. 폭동의 현장에서 부모커뮤니티의 억장이 무너지는 울부짖음을 출세한 2세들이 몰랐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 했는지, 거기서 잘 난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폭동의 참혹한 상황엔 그들의 작은 역할도 없었다.


  

  LA의 4.29폭동이 발생한지 만 19년이 흘렀다. 폭동이 나고서 정치력을 결집하고 신장시켜서 다시는 폭동의 피해자가 되지 말자고 ‘정치력신장 운동’이 동포사회에 일어났다. 폭동직후 4, 5년 동안은 이러한 운동이 힘이 있었다. 유권자운동, 투표참여운동에 관심이 많고 참여가 높았다. 심지어는 서로 잘하겠다고, 또는 제가 더 잘 한다고 쌈질까지 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나면서 동포사회에 소수이슈가 되더니 15년이 훨씬 지난 지금엔 거의 무관심이다. 그렇게 목숨 바쳐서 이 일을 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섰던, 그래서 동포들로부터 너무 열심히 한다고 걱정까지 끼쳤던 그때에 나섰던 사람들이 지금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미국서의 인종폭동은 거의 30년을 주기로 정기적으로 발생한다. 로스토우의 경제발전 사이클과 그 주기를 같이 한다. 지독한 불경기에 국가재정이 바닥나면 그 다음엔 여지없이 폭동이 난다. 대도시 슬럼가의 극빈층 소수계가 배고픔에 아우성을 치면서 길거리로 나오게 된다. 이들의 손에 가장 먼저 닿는 부분이 한인들의 영세자영업이다.

  지금 미국 정부는 역사적으로 최악의 재정적자에 직면했다. 경기불황의 늪에서 시민경제가 헤어날 조짐이 없다. 덩달아 민심도 뒤숭숭하다. 19년 전 LA폭동 당시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그런데 한인커뮤니티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한인커뮤니티를 보호할 정치적인 보호막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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