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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뵈너(John Boneher)’와 공화당의 감투싸움.

by kace

  • Posted on November 6, 2010

  •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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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서 선출직 정치인으로 꿈을 갖는다면 제일차 목표의 정상은 연방하원이다. 각 주별로 인구비례에 의해서 나누어지는 지역구(인구 75만)를 대표하는 지위이다. 짧은 임기 때문에 지역구민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재선의 부담 때문에 지역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원의 경력이 쌓이면 그 만큼 국민의 뜻을 반복해서 수행했다고 평가받게 된다. 그 다음 소속정당의 지도부로 진입하여 리더십을 발휘하여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이름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2년마다 의회가 새로 구성되면 각 당은 지도부 구성을 놓고서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다. 다수당은 하원의장(Speaker)을 그리고 각 당은 원내대표(Majority Leader), 원내총무(Whip), 수석부총무(Chief Deputy Whip), 당간부회의장(Caucus Chair), 선거대책위원장(Campaign Committee Chair)과 6명의 부총무(Deputy Whip)로 지도부를 구성한다.


하원의장은 주로 의원경력이 오래되고 원내총무 등 지도자 수업을 마친 의원 중에서 선출 된다.  일반적으로 하원의장은 은퇴하거나 소속 당이 소수당이 되지 않는 한 재선된다. 현재의 ‘낸시 펠로시’의장은 2006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어 최초의 여성하원 의장이 된 재임의장이다. ( 현재의 낸시 펠로시 의장은 13선에 무난히 당선 되었지만,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계은퇴설이 나오고 있다 )


  미국의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에 오를 ‘존 뵈너’ 공화당 원내대표는 정통 공화당의 보수노선을 고수하는 오하이오 남부지방 출신의 11선 의원이다. 가난한 가정의 12형제 중에 차남으로 태어나서 온갖 역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연방 의회 내 선출직 정치인 가운데에 그만큼 많은 직종의 직업을 두루 거친 사람은 없다. 소년시절부터 청소부, 신문배달, 술집종업원, 식당웨이터, 거리행상, 소규모의 자영업 등 자력갱생의 독학으로 오하이오의 카톨릭 재단의 제이비어(Xavier Univ)대학을 졸업했다.


34살 때인 1984년에 오하이오 주 하원에 진출했다. 주 의회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인으로 자질을 스스로 발견하고 연방급 의원직에 도전할 기회를 엿보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1990년 자기지역의 도널드 루켄즈(Donald Lukens) 연방하원 의원이 미성년자와의 섹스스캔들로 추락의 위기에 몰렸다. 기회를 엿보던 당의 거물들이 후보로 대거 몰렸다. 정치 초년생인 ‘존 뵈너’는 당의 거물들이 즐비한 후보반열에 과감하게 이름을 올렸다. 바닥으로 돌면서 지지 세력을 만들어 예상을 깨고 연방 하원직을 거머쥐었다.


정치권의 이변으로 전국적인 이야기 거리가 되기도 했다. 무계보 독자노선으로 당 중앙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소신발언을 했다. 그는 조지 부시의 텍사스 사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돌출행동의 상징인 ‘존 맥케인’의 이단아 그룹에도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교육.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의 눈에 뜨이는 의정활동의 성과는 ‘교육개혁안’에서 눈부시게 드러났다.  ‘조지 부시’ 의 교육개혁안을  세련되게 잘 다듬어서 초당적인 지지를 받아 입법화 시켰다.  “ No Child Left Behind Act ” 가 바로 ‘존 뵈너’의 작품이다.


2006년에 ‘존 뵈너’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텍사스 사단의 핵심인 ‘탐 딜레이’ 원내대표가 로비스캔들에 휘말려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K 스트릿(로비 스트릿)의 왕자로 군림하는 ‘잭 아브라모프’의 불법로비에 말렸던 것이다. 공화당 내부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존 뵈너’는 비주류가 당권을 접수할 기회를 정확하게 포착해서 대표자리의 경쟁에 뛰어 들었다. ‘존 뵈너’는 당시, 탐 딜레이의 2인자로 당권을 쥐고 있던  ‘로이 블런트(Roy Blunt)’ 와의 경쟁에서  2차 투표까지 가면서 신승을 했다.


< ‘로이 블런트’는 이번 선거전에서 미조리주의 상원에 당선 되었다 >. 하원에 진출한지 15년 만에 존 뵈너는 당의 정상에 올랐다. 2006년엔 ‘낸시 펠로시’의 기세에 눌려서, 2008년엔 오바마의 돌풍으로 ‘존 뵈너’는 세력의 절대열세를 외롭게 견뎌야 했다. 기진맥진한 가운데에서도 그는 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관해서만은 목소리를 높이면서 시민사회내 범 보수세력의 시선을 잡아 묶었다. 중산층의 흑인대통령에 대한 불안한 심리정서를 정치쟁점화 하는 데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공화당계열의 대중외곽인 자유노동연대(Freedom works)와 반오바마 개혁연대를 외치고 자발적으로 나타난 티파티(Tea Party)를 선거판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였고 그들은 당의 통제권 밖에서 당이 거대하게 승리하도록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존 뵈너’의 작품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존 뵈너’의 리더십을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의 집권 2년을 평가하는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상원에선 6석을 추가하여 46석으로 늘었고 하원에선 60석을 추가하여 총239석이 되었다. 1938년의 중간선거 이후 72년만의 거대한 승리로 다수당의 자리를 확보했다. 워싱턴 권력 서열3위인 하원의장을, 그리고 하원 전체 상임위원장직을 공화당이 독식하게 되었다.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하원장악이 확실해서 공화당의 내부에선 당직과 상임위원장직을 놓고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존 뵈너(John Boehner)’ 원내대표가 차기 하원의장에 확정 되면서 당내의 중진들 간 대표와의 거리 좁히기 경쟁이다. 동시에 자유노동연대, 티파티 같은 대중외곽단체들이 존 뵈너 대표를 향해서 당직의 지분을 요구하는 압력의 목소리가 치 솟고 있다. 의장이 지명한 사람을 새 회기의 시작 전에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당직에 인준하기 때문이다. 지명권한은 ‘존 뵈너’ 차기의장의 손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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