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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4일, 후러싱의 예비선거 –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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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11일, 아침8시가 넘고 있었다. 아침 새벽부터 필자는 ‘존 루’의 캠프에서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후배와 길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벌써 2시간째의 통화였다. 이 후배는 당시 맨하탄의 뉴 스쿨에서 정치학박사학위 중인 유학생이었다. 클린턴의 새로운 선거운동방식에 흥미를 갖게 되어 미국의 정치컨설팅에 푹 빠져 있었다. ( 이 후배는 현재 한국에서 미국정치 전문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 


투표결과에 대한 추측과 전망을 전화로 주고받다가 그만, 우리는 똑같이 비명을 지르고 전화를 끊고 말았다. 필자는 뉴저지 포트리의 콘도미니엄 꼭대기 층에서, 그리고 후배는 맨하탄의 빌리지 근처에서 동시에 ‘9.11 테러’를 목격했다. 월스트릿의 무역센타가 허물어지는 광경을 비명을 지르면서 목격했다. 그 시간부로 세상의 모든 일이  중지 되었다.  뉴욕의 예비선거 예외가 아니었다.   9.11 테러로 인해서 예비선거가 한 달 뒤로 연기되었다. 연기된 투표일까지 ‘존 루’는 선거운동의 미진했던 부분을 보충해서 예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본 선거를 통해서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계 뉴욕시의원이 되었다.  뉴욕 시 아시안 커뮤니티의 승리였다.        


  2001년 9월11일, 필자의 관심은 온통 뉴욕 시 20지역구 시의원 예비선거에 쏠려 있었다. 일찌감치 뉴욕시의원직에 목표를 정하고 아시안계를 중심으로 지지기반을 만들어 온 중국계의 ‘존 루’의 예비선거일이다. ‘존 루’는 1990년대 초반부터 뉴욕 시 아시안 커뮤니티의 권익활동에 가장 활발하게 앞장서 온 활동가였다.  그는 수년 동안 아시안 2세들을 조직해서 아시안계의 밀집지역인 제 20지역구의 예비 선거를 준비해 왔다.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1990년대 들어서 뉴욕 시 의회는 소수계의 정치권진출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34개의 뉴욕시의원 지역구를 51개로 늘렸으며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위해서 뉴욕시의원의 연임제한을 법으로 규정했다. 지역 토박이들이 터줏대감으로 평생을 독차지해 왔던 시의원직을 내 놔야만 했다.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같은 아시안계로 예비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한인 ‘테렌스 박’씨의 집요한  추적이 그의 가장 힘겨운 상대였을 정도로 드디어 후러싱은 아시안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2001년 뉴욕 시 예비선거에서의 ‘존 루’의 성공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일찌감치 퀸즈 민주당의 후러싱 조직에서 수년간 발품을 팔았다. 자신의 역할과 능력에 관계없이 각종 아시안 차별케이스에 빠지지 않고 끼어들었으며 뉴욕경찰을 비롯한 각종 공권력이 아시안계를 차별하는 케이스에 용감한 싸움닭 역할을 했다. ( 필자는 ‘존 루’를 1997년 한인유학생 조형철씨 폭행사건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정치인이 되려고 노력한 방식은 정치권의 거물이나 유력인사와의 안면을 갖고서 활동한 것이 아니고 아시안 커뮤니티의 활동가로서 이름을 알리면서 정치권으로 진입했다. 아시안계와 민주당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니고 민주당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스스로 만들어 내면서 입지를 만들어 냈다. 그는 주변에서 알아주고 추대해 줘서 선출직에 도전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정치인’에 인생의 목표를 설정했다. 정치인으로의 성공과 개인의 성공을 (비교)계산하지 않았으며 한번 도전해 보는 정도로 커뮤니티를 시험해 보지 않았다. 그는 실패를 거듭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깊이 있게 이해했다. 그렇게 20년 이상을 초지일관했기 때문에 그는 지금 전국적인 (정치)슈퍼스타가 되었다.


  9월14일은 뉴욕의 예비선거일이다. (후러싱에서) 한인후보끼리 경쟁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당의 실력자가 필요로 해서, 그래서 실력자의 동의를 믿고 후보가 되었다면 그것은 위험한 시도다. 오랫동안 발품 없이 거기서(민주당) 인정받을 길은 없다. 당의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정도로는 당선이 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정치인)과 한인커뮤니티간의 접촉점의 역할이 거기가 아니다. 선출직에 목표를 두었다 하더라도 우선은 당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인사회에 지지를 요청하려면 우선 당에서 인정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동안 후러싱의 한인후보는 동포사회에서 지지기반이 있으면 당의 인정이 없었고 당에서 인정을 받으면 동포사회에선 경쟁력이 떨어졌다. 당의 기반 없이 한인사회의 지지를 받는 일은 “ 밖에선 매일 줘 터지면서 집안에선 큰소리야” 란 못난 칠드기 아니겠는가?  이번 지역위원장에 출마한 후보는 그것이 빨리 될 일이 아니더라도 당에서 힘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의지를 동포사회에 분명하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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