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겨울 우리의 모국인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벌였다. 아울러 박대통령과 같은 당인 한나라당도 자당의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반발로 분열이 발생했고, 국회는 탄핵안을 통과 시켰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전원합의에 의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탄핵 파면되어 구속이 되었다. 참으로 혼란스런 모국의 상황에 미주동포들도 뒤숭숭했고 헌재 심사 중에 한쪽은 촛불을 들고 탄핵 파면 구속을 외쳤고 한쪽은 태극기를 들고 파면 무효를 외쳤다.

정부는 바로 권한 대행 체제로 들어갔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이루어지는 동안 한국군과 미군의 군사 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이 되었고 북한은 연이어 성명을 내고 여러 종류의 미사일을 쏘았다. 최고통수권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빠졌고 해외에서 모국을 바라보는 우리는 참으로 크나큰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반도의 전쟁은 지난 70년동안 피땀으로 이룩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사망자가 생기고 구석기로 돌아갈 가공할 전쟁이 될 수밖에 없기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해외동포로서 우리는 모국이 거의 멸망에 달할 정도로 무너졌을 때 조국이라는 비빌 언덕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군 전사자와 그 피해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의 천덕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중동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미국 내 수많은 중동 출신 이민자들의 처지를 볼 때, 미국에 대한 우리의 애국심이 아무리 높다 해도, 한반도가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된다면 미주동포들은 지금의 분쟁국인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의 이민자들과 별반 다름없는 대우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위험했던 한반도에서 전쟁의 참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대통령 선거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이 되었다. 그리고 촛불과 태극기로 분열되어 대립했던 정치상황은 빠른 속도로 안정이 되었고 새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초청에 의해서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동포들 중에는 새로운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도 있고 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운명은 결국 한국에 있는 동포들이 결정을 한다. 미주동포는 그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미주동포의 역할은 모국과 미국이 좋던 싫든 더욱 좋은 관계가 되도록 해야만 한국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국민이 선택한 대표와 협력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야 그 어떤 상황에도 미주동포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미국 사회에서도 그 대표성을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미주 동포는 미국에서 스스로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해서 인정을 받고 그 힘으로 모국과 미국의 관계를 더욱 좋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과 모국 양쪽에서 우리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주동포(Korean American)의 정체성이고 길이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2017년 7월 1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겨울 우리의 모국인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벌였다. 아울러 박대통령과 같은 당인 한나라당도 자당의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반발로 분열이 발생했고, 국회는 탄핵안을 통과 시켰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전원합의에 의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탄핵 파면되어 구속이 되었다. 참으로 혼란스런 모국의 상황에 미주동포들도 뒤숭숭했고 헌재 심사 중에 한쪽은 촛불을 들고 탄핵 파면 구속을 외쳤고 한쪽은 태극기를 들고 파면 무효를 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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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7일 뉴욕 뉴저지에서 시작해서 6월16일 휴스턴 대회를 끝으로 미주 한인 워싱턴 풀뿌리 컨퍼런스로 모든 준비가 모아지고 있다. 7월24일부터 25일까지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주 한인 워싱턴 풀뿌리 컨퍼런스(KAGC.US)에 벌써 13명 이상의 연방의원들이 참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2016년 컨퍼런스에는 고등학생 100여명 그리고 200여명의 대학생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약 600여명의 한인들이 모였다. 전국의 미주 한인들이 모이는 가장 큰 행사이다. 특히 지역에서의 정치력 신장으로 워싱턴에서 한인들의 영향력을 만들자(Local Action National Impact)는 구호와 실천의 과제를 가지고 모이는 유일한 행사이다.

이것을 준비하는 시민참여센터는 올해도 여러 주를 다녔다. 시카고, 시애틀, 오렌지카운티, LA, 달라스, 버지니아, 휴스턴을 다녔다. 또한 뉴욕에서 동부지역 대학생 지도자 컨퍼런스, 시애틀에서 서부지역 대학생 지도자 컨퍼런스도 치렀다. 정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6월 말이 되었다. 물론 더 많은 지역의 요청이 있었지만 더 이상의 여력이 없었다.
지역에서는 특히 한국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참가를 했고, 각 지역의 한인 지도자들이 대부분 참가를 하였다. 모두다 각 지역에서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청소년들에 대한 정체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3년동안 각 지역을 다니면서 느끼고 필요한 내용을 파악하고 몇 가지를 항상 요청했다. 첫째 각 지역마다 정치력 신장을 위한 책임지는 기관을 세워야 한다. 유권자 등록, 선거참여 캠페인을 책임지고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것만 하는 전문기관을 범 동포적으로 지원 육성해야 한다. 미국에서 주류는, 미국이라는 역사의 강에 아주 큰 유람선을 타고 있다.

거기에는 안전하게 배를 운행하는 선장, 조타수, 기관사들이 있어서 어떤 악천후에도 끄떡하지 않고 항해한다. 그러나 한인 커뮤니티는 아직도 뗏목을 타고 있다. 그러니 누구 하나 사다리를 놓고 높이 올라가서 앞에 암초가 있는지 폭포가 있는지를 보고 폭풍우가 올 것 같으니 뭍으로 피하도록 알리는 커뮤니티의 파수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인들은 뗏목 밑에 있는 물고기 잡는데 여념이 없고 그런 파수꾼에 대한 생각도 별로 없다. 그러다 암초에 부딪힌 경험을 우린 가지고 있다. 1992년 4.29 LA 폭동에서 우린 처절하게 경험을 했는데 아직도 우린 한치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전략적인 집단을 지원 육성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정치력 신장을 위한 풀타임 직원을 세워야 한다. 어떤 조직이던지 한사람이라도 꾸준히 십년 이상 일을 하면서 전문가로 성장을 해야 정치력 신장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지역에서 정치력 신장운동은 한 명의 직원이 만들어질 때 시작하는 것이다. 유대인 커뮤니티를 배워야 한다고 모두다 이야기 하는데, 유대인들은 자기 커뮤니티 발전을 위한 전략적인 인재들을 존경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그러니 똑똑한 인재들이 자기 커뮤니티를 위해서 더 열심히 일을 한다.

셋째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인턴 십을 개발하여 자기 커뮤니티의 현안들을 고민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부모세대의 현실을 이해하고 커뮤니티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해야 자신을 코리언 아메리칸으로 정의한다.
넷째 미주 한인들은 모국과 미국이 사이가 좋든 나쁘던 항상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모국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인정받는다.

스스로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미주동포는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각 지역에서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정치력 신장을 하고 또 그 힘을 가지고 워싱턴에 모여서 한인들의 결집된 영향력을 만들고 새로운 세대들에겐 자부심을 심어주고 모국과 미국과의 관계발전을 위한 노력도 하자는 것이 워싱턴 풀뿌리 컨퍼런스다. 지역에서 위의 노력을 하고 7월에 워싱턴에서 만나자. 이것이 주요 요청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칼럼은 2017년 6월 24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2월17일 뉴욕 뉴저지에서 시작해서 6월16일 휴스턴 대회를 끝으로 미주 한인 워싱턴 풀뿌리 컨퍼런스로 모든 준비가 모아지고 있다. 7월24일부터 25일까지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주 한인 워싱턴 풀뿌리 컨퍼런스(KAGC.US)에 벌써 13명 이상의 연방의원들이 참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2016년 컨퍼런스에는 고등학생 100여명 그리고 200여명의 대학생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약 600여명의 한인들이 모였다. 전국의 미주 한인들이 모이는 가장 큰 행사이다. 특히 지역에서의 정치력 신장으로 워싱턴에서 한인들의 영향력을 만들자(Local Action National Impact)는 구호와 실천의 과제를 가지고 모이는 유일한 […]

Categories: 칼럼/오피니언

지금 세계엔 기존 정치에 대한 파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뽑는 기준에는 당연히 정치적인 경험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가장 화려한 정치 이력을 가진 후보들을 버리고 전혀 정치경력이 없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연방의원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오랜 경력을 가진 의원들이 새파란 정치 무경험자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런 현상은 대서양을 넘어서 프랑스에서도 나타났다. 에마니엘 마크롱, 30초반에 경제산업 디지털부 장관을 역임하고 39세에 당을 창당하고 하원 정치인 하나 없는 원외 정당인 집권 연합당으로 출마를 해서 대통령이 되었고 한달 후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어 다수당이 되었다. 프랑스인들도 놀랐지만 전세계가 경악을 하고 있다.

노련한 정치인들이 거의 전멸을 했고 정치 초년생 대통령과 의원들이 앞으로 프랑스를 이끌어 가게 되었다. 사실상 프랑스의 운명이 초보 운전수들에 맡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남미는 브라질, 베네수엘라 그리고 파라과이에서 무정부 상태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 원인은 경제적 불만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경제적인 불평등, 일자리문제, 저임금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런 문제는 1900년 초에도 있었다.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폐단에 저항하던 시대에 맑스와 레닌이 출현하여 공산주의 혁명으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무산자계급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건설 하자는 혁명의 대 열병이 일어났다. 물론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민주적 제도를 만들기 위한 민주주의 혁명도 있었다. 제국주의 폭압의 식민지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났고 서구 제국주의 나라들은 식민지의 저항을 누르고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식민지쟁탈전을 벌이는 세계 제 2차 대전이 벌어졌다.

그때와 지금 모두 불만의 기본 내용은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이다. 1900년 혁명의 시절에는 제도의 문제도 심각했기에 체제를 갈아엎고 새로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선거로 대중들의 정치표출을 할 수 있는 방식이 있기에 체제전복을 통한 혁명적인 방식이 아닌 선거를 통한 정치인들의 물갈이를 가히 혁명적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물갈이를 통해서 경제여건이 더 나아져야 하는데 세상은 어떻게 어디로 갈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21세기 우리는 분명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한 물질문명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부는 점점 한쪽으로 쏠리고 일자리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그로 인해서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이 점차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생활물가는 올라가고 실질 임금은 상대적으로 계속 하락을 하고 있다. 동시에 구매력이 떨어진 탓에 소규모 자영업 매출이 줄어들고 매가 스토아로 소비자들마저 빼앗기고 이윤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지속은 결국 더 큰 불만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고 바로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 우리는 초보 정치인 트럼프 대통령이 좌충우돌 운전하는 미국에 살고 있다. 한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야기가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공화당 주도 상하원에서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이로 인한 정치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도 불안한데 정치마저 불안해지면 다민족 연합국가의 민주 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 소수계에게는 불안한 시절이다. 이 시기 커뮤니티가 단결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역량강화에 힘써야 한다.

한치 앞을 내다보고 커뮤니티의 발전 전략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기관들을 확보 강화 시켜야 할 것이다. 전략적인 리더십이 없어서 위기의 시기 속절없이 당했던 4.29폭동의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 등록과 투표에 더욱더 많이 참가해야 한다. 기성 정치에 대한파괴의 시대엔 혼란이 야기 될 수 있다. 언제나 혼란의 불똥은 소수계에 튀었다.

이 칼럼은 2017년 6월 17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지금 세계엔 기존 정치에 대한 파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뽑는 기준에는 당연히 정치적인 경험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가장 화려한 정치 이력을 가진 후보들을 버리고 전혀 정치경력이 없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연방의원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오랜 경력을 가진 의원들이 새파란 정치 무경험자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런 현상은 대서양을 넘어서 프랑스에서도 나타났다. 에마니엘 마크롱, 30초반에 경제산업 디지털부 장관을 역임하고 39세에 당을 창당하고 […]

Categories: 칼럼/오피니언

현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은 단연코 미국이다. 그런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이다. 빈부차가 극대화 되고, 인종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종교와 소수계들 보호했던 정책과 약자를 위한 정책이 사라지고 있다. 이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은 식민지로부터 시작했다. 초기에 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미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래서 말도 틀리고 종교도 틀리고 문화도 틀렸다. 그러다가 영국계 식민지가 영국의 과도한 수탈에 대항하면서 독립 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프랑스와 스페인, 네덜란드와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프랑스령 식민지를 나폴레옹에게서 매입하고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식민지는 이전에 영국의 영향력 아래로 강제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독립과 함께 자연스럽게 미국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초기 영국의 식민지들은 기존의 유럽 종교에 반대하고 영국의 왕권에 반대하는 것이 주요 고민이었지만 이후 여러 민족들을 하나의 나라로 묶는 것이 주요 고민이 되었다. 또 서로 다른 종교, 언어, 풍습과 제도를 인정하다 보니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합의에 의한 결정을 위해서 공화제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후 미국 연방은 급속이 발전을 했고 남부의 노예제에 근거한 경제력과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북부가 충돌하면서 흑인 노예해방이 이루어졌고 백인 남성들만 가지고 있던 투표권을 흑인 남성에게도 주게 되었다. 이후 여성들의 줄기찬 노력에 의해서 1920년 8월 26일 여성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러나1862년 9월 22일, 앤티덤 전투 며칠 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으로 흑인들은 수정헌법을 통해 자유인의 신분을 획득하고 흑인 남성 참정권을 획득했지만 1877년 남부에 주둔하고 있던 연방군이 철수 하면서부터 80년 동안 흑인들에 대한 탄압과 분리주의, 투표권 박탈이 이어졌다.

1955년부터 흑인들은 저항을 시작하여 마침내 린든 존슨 대통령에 의해서 1964년 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이 통과 되면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가가 되었다.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 By the People,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라는 민주주의 정신이 세워지고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거의 100년 만에 미국에 제도적 민주주의가 구현이 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다양성에 대한 인정, 소수계 차별 반대, 인종 화합에 대한 법과 제도적인 선진국을 만들었다.

그런 미국이 지금 그런 자랑스런 전통을 부정하고 인종혐오 범죄가 급속히 늘어나고, 다양성을 부정하고, 의회를 통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대통령 권한에 의한 행정명령으로 유색인종과 이민자 사회 그리고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매일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합리주의와 공화주의에 바탕 한 대화와 타협의 의회주의가 실종이 되고 다수 당에 의한 힘에 의한 입법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우려가 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힘에 근거한 미국 우선주의 외교 통상 정책이 국내에서는 약자와 소수계들에 대해서 힘센 자와 다수계의 우선주의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정부의 기본은 다양성에 기반 한 기회균등과 소수계 배려 정책을 주요하게 펴나가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민주 시민으로서 가져야할 소양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뿌리는 시민들의 주인 의식과 주인권 행사와 참여에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시민들은 피곤하다.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 각 후보자들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선거로 뽑아 놓은 선출직들에 대한 감시도 하고 잘못하면 비판하고 주민 소환제로 끌어내리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학교에서는 유권자 등록과 투표참여에 대한 교육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선조들이 피로서 쟁취한 민주주의에 대한 정신과 전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후대들에게 민주주의는 그저 피곤하게 다가 올 뿐이다. 민주주의가 흔들리면 이민자로서 소수인 한인들의 처지도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니 소수라고 스스로의 존재를 포기하지 말고, 흔들리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한인들이 더욱더 참여하는 시민이 되도록 해보자. 유권자 등록, 투표참여 잊지말자.

이 칼럼은 2017년 6월 10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은 단연코 미국이다. 그런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이다. 빈부차가 극대화 되고, 인종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종교와 소수계들 보호했던 정책과 약자를 위한 정책이 사라지고 있다. 이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은 식민지로부터 시작했다. 초기에 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미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래서 말도 틀리고 종교도 틀리고 문화도 틀렸다. 그러다가 영국계 식민지가 영국의 과도한 수탈에 대항하면서 독립 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프랑스와 스페인, 네덜란드와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프랑스령 […]

Categories: 칼럼/오피니언

신호범( Paull Shin)은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이자 교수이다.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워싱턴 주 상원에 당선되었다. 한국전쟁 전 어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마저 잃고 고아가 되어서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를 하다가 한국에 선교 나온 레이 폴(Ray Paull)이라는 미국인 치과의사에게 19살에 입양되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 4개월만에 미국의 대입 검정고시인 GED를 통과한 그는 1962년 프로보에 위치한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를, 64년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공공국제학 석사를, 그리고 73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또 다른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워싱턴 주에서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던 중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한 미 대사로 추천을 받아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때 인터뷰를 하던 사람이 당신은 한국계인데 주한 미 대사가 되어서 한국과 미국이 이해관계로 서로 충돌을 하면 어느 편을 들것인지 물었다고 한다. 이에 신의원은 그럼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면 누구 편을 들것이요?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나에게 생명을 준 어머니 나라이고 미국은 날 입양해서 이렇게 키워준 아버지의 나라인데 부모가 싸우면 어느 한편을 들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 되던지 싸우지 않게 하고 좋은 사이가 되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난 한국과 미국이 사이가 좋던 싫던 더욱더 좋은 관계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필자도 어느 교회에 유권자 등록을 가서 이 분이 강연을 하는 것을 듣고 강연 이후 짧은 시간 대화를 하면서 오랜 기간 고민했던 미주 동포의 정체성 문제 중 아주 중요한 답을 얻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기관에서 인턴십을 하는 학생들에게 신호범 의원의 예를 들어서 Korean American 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주동포의 정치적인 힘을 만드는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가 중요하다. 그래야 미국에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고 그 힘으로 한국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세계의 맏형으로서 행동해왔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고 미국 우선주의 외교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벌써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유럽연합의 리더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과 기 싸움을 시작했다.

유럽연합은 더 이상 평화를 위해서 미국의 방위에 무임승차 하지 말고 정확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했다. 그리고 유럽연합도 미국에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고 그중 미국에 최고급차를 많이 팔고 있는 독일은 정말 나쁜 나라라고 했다.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은 이제 유럽이 미국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유럽은 유럽의 길을 가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한국을 정조준하고 있다. 유럽에 비해 미국 의존이 절대적인 한국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을’의 입장이다. 과연 트럼프의 공격에 한국이 어떻게 방어할지 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간 사이가 나빠지면 미국에 살고 있는 미주동포는 그야 말로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된다.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워싱턴 DC 에서 미주한인 풀뿌리 컨퍼런스를 한다. 미주동포의 결집을 위해서이다. 수많은 연방의원들을 방문 할 것이다. 그리고 행사에 연방의원들을 참석 시키고 한미간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의회에서 하라는 요청을 하고자 한다. 참가 문의는 718-961-4117, kagc.us 로 문의를 하면 된다.

이 칼럼은 2017년 6월 3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신호범( Paull Shin)은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이자 교수이다.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워싱턴 주 상원에 당선되었다. 한국전쟁 전 어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마저 잃고 고아가 되어서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를 하다가 한국에 선교 나온 레이 폴(Ray Paull)이라는 미국인 치과의사에게 19살에 입양되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 4개월만에 미국의 대입 검정고시인 GED를 통과한 그는 1962년 프로보에 위치한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를, 64년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공공국제학 석사를, 그리고 73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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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회계연도 예산안은 4조 1,000억 달러이다. 특히 이번 예산안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 스탬프 예산을 1,930억 달러 삭감했다. 그리고 대학생 학자금 지원예산을 1,430억 달러, 장애인 지원 예산 720억 달러를 삭감했다. 감세 정책으로 인해서 고액연봉을 받는 부자들에겐 엄청난 혜택을 주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세수 부족은 극빈층을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 예산을 확 줄여서 예산의 균형을 잡는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공화당 하원 의장 폴 라이언은 마침내 오바마의 비대한 예산안이 막을 내렸다고 했다.

미국인 5명중 1명은 메디케이드를 10명중 1명은 푸드스탬프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메디케이드와 푸드스탬프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극빈층은 절대다수 노인, 장애인, 결손 가정이다. 이들에게 이런 사회 안전망이 축소된다는 것은 생존에 직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사회안전망 예산을 삭감하고 민관 인프라투자 펀드에 2,000억 달러를 지출하고 국방비를 540억으로 늘리기로 했다고 한다.

2016년도 6월 미국의 진보적인 논객인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가 트루스디그(Truthdig)라는 매체에 기고 한 글에 의하면 미국의 25% 가구가 월수입의 70%를 집 렌트비 내는데 급급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하루아침에 홈 리스로 전락한다고 한다. 그러니 대도시 슬럼지역은 한 집에 몇 가구가 같이 사는 일들이 흔하고, 작은 집에 과밀 인구가 함께 거주 하다 보니 삶은 더욱 팍팍 해진다. 이런 25% 가구의 가장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수입이 끊어질 때 푸드스탬프나 메디케어는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사회안전망이 된다. 그런데 사회안전망마저 무너지고 있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27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2018회계연도 예산안은 4조 1,000억 달러이다. 특히 이번 예산안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 스탬프 예산을 1,930억 달러 삭감했다. 그리고 대학생 학자금 지원예산을 1,430억 달러, 장애인 지원 예산 720억 달러를 삭감했다. 감세 정책으로 인해서 고액연봉을 받는 부자들에겐 엄청난 혜택을 주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세수 부족은 극빈층을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 예산을 확 줄여서 예산의 균형을 잡는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공화당 하원 의장 폴 라이언은 마침내 오바마의 비대한 예산안이 막을 내렸다고 했다. 미국인 5명중 1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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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시작과 함께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왕성하게 행정명령을 내렸던 트럼프 대통령, 미국내 1,200만 서류미비자들과 멕시코 특히 중동 출신 이민자들에겐 공포였지만 반 이민행정명령안은 55%의 지지도를 나타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연이어 내놓은 대규모 감세정책은 주가를 최고치로 뛰게 했다. 그러나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고 트럼프 케어를 하겠다고 하자 갑자기 오바마 케어의 인기가 높아지고 트럼프의 인기는 35% 아래로 떨어졌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20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임기 시작과 함께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왕성하게 행정명령을 내렸던 트럼프 대통령, 미국내 1,200만 서류미비자들과 멕시코 특히 중동 출신 이민자들에겐 공포였지만 반 이민행정명령안은 55%의 지지도를 나타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연이어 내놓은 대규모 감세정책은 주가를 최고치로 뛰게 했다. 그러나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고 트럼프 케어를 하겠다고 하자 갑자기 오바마 케어의 인기가 높아지고 트럼프의 인기는 35% 아래로 떨어졌다. 또 시리아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시리아의 화학무시 사용에 대하여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고, 북한의 핵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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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만주지역에는 고구려와 발해 멸망 후 거란의 지배하에서 설움을 받던 여진족이 있었다. 혹자는 이들이 고구려의 려자와 진(발해)나라의 후손이라는 뜻으로 려진(女眞)이라고 불렸는데 이후 조선과 명국이 낮춰서 기록하면서 麗를 女자로 해서 기록했다고도 한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13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오늘날 만주지역에는 고구려와 발해 멸망 후 거란의 지배하에서 설움을 받던 여진족이 있었다. 혹자는 이들이 고구려의 려자와 진(발해)나라의 후손이라는 뜻으로 려진(女眞)이라고 불렸는데 이후 조선과 명국이 낮춰서 기록하면서 麗를 女자로 해서 기록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이들을 우린 그저 북방 오랑캐로 알고 있는데 요즘 학자들이 연구를 하다 보니 이들이 세운 금(金)나라를 김씨의 나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하여튼 금나라를 세운 아구다(아 )의 성은 완완( ) 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무덤에는 성을 金으로 표기했다. 금나라는 만주의 팔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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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핵심은 감세와 보호무역이다. 사실 감세 정책은 공화당의 당골 정책이다. 감세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대통령이 레이건과 아들 부시 대통령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소득세율은 91%에 서 70%로 낮춰졌으며, 법인세율도 52%에서 48%로 낮춰졌다. 이로 인해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고질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감세정책이 실시된 후 5년이 되는 1986년에 재정적자는 무려 2,21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 빚을 갚기 위해서 클린턴 민주당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결국 극빈자들에게 지원하던 혜택을 많이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 여파는 1992년 LA 폭동의 원인인 절대 빈곤과 공권력의 충돌로 나타났다.

또 한번의 감세정책은 클린턴 행정부가 빚을 다 갚고 흑자재정으로 만들고 실업률도 6.5%에서 3.9%로 떨어트린 이후 아들 부시 대통령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너무 비대한 정부운영을 했다고 하면서, 작은 정부를 주장 했고, 자본이득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20%에서 15%로 인하하고 배당금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35%에서 15%로 인하 하였다. 그리고 2007년 미국은 1930년 대 공황이후 가장 혹독한 금융대란을 맞이하였고 미국의 경제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감세정책의 결과는, 부자들은 더욱더 부자가 되게 하였고 중산층들은 급격하게 무너지고 극빈자들은 하루 1달러를 쓸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하여 사회안전방이라 할 수 있는 소셜 웰페어는 지속적으로 삭감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공공시설들의 낙후화를 가속하였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레이건 행정부는 소비에트연방과 무기경쟁을 위한 스타워즈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제정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군수산업에겐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부었다.

특히 작은 정부를 주장하였던 아들 부시 정부는 반테러 전쟁을 위하여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였고 곧 이어 이라크전쟁을 벌여서 마침내 미국 정부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정부재정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금융대란으로 이어졌고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오바마 정부는 양적완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부자들의 빨때 월스트리트에 돈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월가가 회복되자 월가의 부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은 돈을 갚기는커녕 엄청난 이윤이 발생하자 자기들 성과급으로 나누어 갖기에 바빴다. 그리고 미국의 부자들은 더욱더 부자가 되었고 이제 미국에 중산층은 희귀한 계층이 되고 있다.

2017년 지금 미국정부는 거의 20조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이걸 국민 1인당으로 나누면 5만8,000달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로 나간 미국의 기업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법인세를 15%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이정도 세율은 조세회피처 국가들과 동일한 것이다. 거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군을 만들기 위해서 국방비를 10% 증액하고 외교상 하던 대외 원조를 확 줄이고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Made in USA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싸게 들어오는 상품들에 고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우린 그동안 값싼 생필품들을 수입해서 사용했는데 이젠 거기에 대폭 인상된 관세까지 내야한다. 문제는 그동안 연방에서 재산세에 대한 세금 감면을 해주었는데 이것을 배제하였다. 그래서 이대로 간다면 집 가진 사람들이 사실상 대폭 인상된 재산세를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제 중산층들이 달랑 하나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재산세는 대폭 오를 전망이다. 재정적자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복지예산 자체가 대폭 삭감되고 국방비를 10% 증액하게 될 경우 지금의 노인층들은 극심한 빈곤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린 높은 관세가 부여된 수입 생필품을 사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기업들은 신이 났다.

매일 월가의 주식은 트럼프 대통령의 법인세와 부자 감세에 대한 기대감으로 어쩔 줄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자 이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2017년 5월 6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핵심은 감세와 보호무역이다. 사실 감세 정책은 공화당의 당골 정책이다. 감세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대통령이 레이건과 아들 부시 대통령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소득세율은 91%에 서 70%로 낮춰졌으며, 법인세율도 52%에서 48%로 낮춰졌다. 이로 인해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고질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감세정책이 실시된 후 5년이 되는 1986년에 재정적자는 무려 2,21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 빚을 갚기 위해서 클린턴 민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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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이민사 최대 비극 ‘LA 4 * 29 흑인 폭동’ 25주년 특별대담

그날잊어서는 안된다. 정치력신장으로 2 피해 잘라야

올해 4월 29일은 미주한인 이민사에 최대의 비극인 ‘4*29 LA 흑인 폭동’ 25주년 이다.

4*29 LA 폭동은 1992년 4월 29일 교통 단속에 걸린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은 집단 구타한 백인 경관 4명에게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분노한 흑은들이 LA 도심으로 일제히 쏟아져 나와 폭력과 약탈, 방화를 일삼은 사건이다. 흑인들의 분노는 한인에게로 집중적으로 분출돼 당시 LA 도심에 있던 한인 상정 2천 300여 곳이 약탈 또는 방화 피해를 봤다.

5월 3일 까지 이어진 폭동으로 사망자 53명, 부사아자 4천여명의 피해와 물적 피해 7~1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중 4억 달러가 한인들이 입은 피해였다.

우리 한인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4*29 LA 흑인 폭동’이 25년이 지나자 차츰 한인사회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안 될 일이다. 뉴욕일보는 ‘4*29 LA 흑인 폭동’ 25주년을 맞아 한인사회의 정치력신장과 민권 운동에 진력하고 있는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와 기획 대담을 갖고 그날의 의의와 가르침을 점검해 보았다.

Q: [송의용 기자 질문] 오늘이 4*29 LA 흑인 폭동이 일어난지 꼭 25년째 되는 날입니다. 시민참여센터는 이 ‘4*29’ 에 대한 자성에서 태동 햇습니다. 김동석 상임이사는 이 ‘4*29’ 폭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밝혀 오고 있는데…, ‘4*29’ 25년을 맞는 소회는 어떤가요?

A: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답변] 좀 답답합니다. 울화통이 터질 정도로 답답합니다. 100년을 훌쩍 넘은 미주한인 역사 속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이 1992년 LA 흑인폭동이고 이구동성으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라고 우리가 경쟁적으로 이야기하는 사건인데입니다.

그런데 오늘 25년째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그런 움직임이 동포사회에 전혀 없습니다. 도대체 한인사회에 누구 지도자가 없잖아요… 아주 갑갑합니다. 한인회를 비롯한 이런저런 단체의 회장님들이 많잖아요… 우리 한인들은 그들이 평소 회장대우를 하지 않는다고 불편해하고 불평한다는 그런 소리를 간간히 듣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누구 한사람 ‘4*29’ LA 폭동을 기억하자라는 발언이 없습니다. 깝깝한 일이지요.

“역사를 잊어 버리는 민족은 망한다!” 는 경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요, ‘4*29’ 폭동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35만 이상의 뉴욕지역 한인동포사회가 모두 이것을 까마득히 잊었잖아요. 저는 단도입적으로 뉴욕의 한인사회 소위 지도자님들께서 다들 어디에 계시는 지를 묻고 싶습니다. 물론 한인정치인들 마찬가지구요. 선거철이면 선거자금 모금을 위해서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목이 쉬라고 외치면서 돈을 좀 보태달라고 하는 한인정치인들도 다 어디에 계십니까?

‘4*29’ LA 폭동 25년째 어떤가요? 하고 물으시니 저의 가장 정직한 답변은 “깝깝합니다” 이것입니다.

Q: 우리 한인사회가 왜 이렇게 갑갑해 졌을까요? 타 소수민족 이민자들에 비해서 삶의 내영 (Life Style) 도 정리되어 보이고 경제생활도 처진 것도 아니고 더구나 교육수준도 높은 커뮤니티인데요… 왜? 벌써 ‘4*29’ 를 다 잊어 버려갈까요? 왜 주류사회내로 진출한 소위, 출세한 2세들은 거의 아무도 이 폭동의 교훈을 언급하지 않을까요?

A: 원인은 아주 명확합니다. 공동체 의식이 아주 부족한 거지요. 시민의식의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해가 낮습니다. 대개의 한인들이 자녀를 ‘전문가로 키워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토록 한다’란 것이 한인 기성세대들의 교육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우리 한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정확하게 이 수준으로만 키웠습니다. 한국계미국인님을 명확하게 인식케하는 정체성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주류사회 내 진출한 2세들이 ‘4*29’ LA 폭동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2세들이 우리 한인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서 태어난 지금 30대가 된 2세 중에 1992년 LA 폭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1세들이 스스로 2세에 대한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아무도, 어느 곳에서도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Q: 한인 2세들의 의식구조, 한인사회에 대한 인식과 1세들 (부모들) 의 책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지요.

A: LA 폭동 때 (1992년) 에 태어났으면 벌써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당시에 10살이면 지금 30대중반이구요 20대였으면 50에 접어듭니다. 한인사회의 중추가 35살 정도부터 50대까지 아닌가요? LA 폭동 등을 눈으로 직접 보고 겪은 세대가 지금 한인사회 중추입니다. 그런데 한인사회가 이렇게 조용한 것은 정말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밀레니엄이란 200년을 지나면서 정말로 한인 2세대들이 소위 주류사회의 영항력 있는 인물로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 많은 출세한 한인 2세들이 부모커뮤니티의 어려움에 진정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반 미국 시민사회가 개인주의를 걱정을 하는데요, 우리는 개인주의가 아니고 이기주의 입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첫 번째의 공동체인 한인사회에 대한 책임과 애정을 갖게 하지 못했으니 이기적이라 할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서 진정으로 안정되고 안전하게 삶의 영역을 확보하려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한인들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우리의 처지를 잘 알지 못하고 힘 있는 다수 상류층만을 바라다 본 것입니다. 같은 처지의 소수민족들, 유색인종들과 인사도 나누기 전에 상류층만 바라 보았지요. “백인을 닮기 원하네”로 아예 소문을 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자녀들을 교육시켰으니 그야말로 겉은 유색인종인데 속은 하얗게 되었지요. 출세한 2세들이 LA나 뉴욕의 한인사회를 꺼리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입니다. 우리 2세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이런 형편이니, ‘4*29’ 폭동에서 교훈을 찾자!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폭동에 관해서도 그렇지만…, ‘정체성’이 자녀교육의 출발이고 기본입니다.

Q: 뉴욕한인사회에 ‘4*29’ 25주년 관련한 행사가 전혀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4*29’ 는 뉴욕선 정말로 이미 잊혀진 사건입니다. 아무 곳에서도 25주년 관련 행가사 없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창피한 일이지요. 그런데요, LA에선 다양한 행사들이 있습니다. 폭동의 가해자였던 흑인커뮤니티, 라티노커뮤니티가 LA한인사회엔 늘 일상의 현실이고 삶의 현장입니다. 우리가 이 폭동에 관해서는 반드시 교훈을 찾아서 극복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뉴욕한인사회의 지도자님들이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래서 뉴욕한인사회의 지도자님들께 적지 않은 실망감과 불만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3*1절, 광복절, 6*25…등등의 사건 이상으로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건입니다. 특히 2세들에겐 그렇습니다.

Q: ‘4*29’를 얘기할 때 미국사회에서는 ‘한흑갈등’에서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확하지 못한 분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25주년이면 ‘4*29’ 폭동의 원인과 당시 그 배경에 대해서 이미 정확하게 규명이 되어 있어야 할 텐데요. 정확하고 만족스럽게 규명 되어 있습니까?

A: 아직 미흡합니다. ‘한흑갈등’이란 말을 우리가 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4*29’는 한흑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25일자 LA타임즈는 ‘4*29 폭동 25주년’ 이라고 특집기사를 냈습니다. LA타임즈는 가장 큰 피해자인 한인사회의 관정이나 주장은 완전히 배제한 채 흑인커뮤니티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보도 했습니다. 신문은 폭동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나타샤 할린스 (당시 15세 흑인소녀) 양에 대한 추모행사를 사진으로 소개하면서 나타샤 할린스가 한국출생 업소주인 (South Korean-born shopkeeper) 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사실을 부각시켰습니다. 폭동의 구체적인 원인은 로드니 킹 사건인데, 왜? ‘두순자 사건’을 기사로 냈는지, 이 기사를 읽어 보면요 ‘4*29’ 폭동의 원인을 한인사회가 제공한 것 같이 은연중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25년이 되었음에도 한인사회가 폭동의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노력이 덜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4*29’ 폭동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불황애서 오는 대도시 슬럼가 극빈층의 사회폭동입니다. 한인들에게 불만은 품은 흑인이나 남미계의 공격이 아닙니다. ‘한흑갈등’ 이란 말은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백인 주류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쏟하낸 용어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을 한인들 중에도 ‘한흑갈등’ 이란 용어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폭동의 본질은 빈곤의 문제이고, 그 책임은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인들이 져애 할 일입니다.

‘4*29’ 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문제에 불만을 품은 남미계와 흑인들이 ‘로드니 킹’의 재판 결과에 그 불만을 폭발 시겨서 폭도가 되어 거리로 몰려 나온 사건입니다. 책임을 져야 할 주류 백인들이 백인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등 뒤에 숨어버린 것입니다. 당시 주류 언론들은 한인과 흑인간의 갈등으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흑관계를 이간시키는 방향으로 연일 보도했습니다. 흑인이나 남미계들이 평소에 같은 소수인종의 편에 서는 것에 인색했던 한인커뮤니티를 예쁘게 보았을 리는 없었지요.

미국에서는 인종폭동이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주기는 경기변동의 사이클과 함께 합니다. 인종문제가 아니고 빈곤문제가 본질입니다. 그리고 한인사회가 폭도들의 표적이 되었던 이유는 한인사회의 정체성의 문제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집단적으로 소수계 연대에 분명한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폭동 당시나 지금이나 한인들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인종편견이 큰 문제입니다. 솔직히 한인들 가운데에 아직도 아주 쉽게 흑인을 “깜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한번씩 “누렁이”라고 불러 봅니다. 아주 질색이고 기분 나빠합니다.

Q: ‘4*29 LA 흑인폭동’은 미주한인 이민사 최대의 비극이지만, 한편 우리 한인들이 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를 가르쳐주는 가장 좋은 교과서요, 교훈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LA 폭동 이후에 한인사회가 좀 달라졌지 않습니까? 정치력신장, 민권운동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A: ‘4*29’ LA 폭동 직후 3,4년까지는 동호사회가 결집이 잘 되고 권익을 스스로 지키자는 정치력신장의 운동도 활발했습니다. 폭동을 뼈아프게 새기면서 저도 1993년부터 유권자센터 설립을 궁리했고 1996년에 플러싱에 ‘한인유권자센터’를 창립하여 지금의 시민참여센터로 22년째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치력신장의 측면에선 많이 달라졌지요. 뉴저지 한인밀집지역인 버겐카운티에서 1997년부터 유권자운동을 펼쳤는데, 그때부터 우리가 각 타운의 시의원 시장, 카운티의 프리홀더 카운티장…등의 역할과 기능, 선거에 대해 한인사회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란인들 중에 몇몇 사람들이 지역 정치인들과 교류하고 있었는데 한인사회에 유권자운동이 펼쳐지면서 이것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뉴욕, 뉴저지에서 한글로 투표할 수가 있습니다. 많이 달라진 셈입니다. 물론 다시는 폭동의 피해자가 되지 말자라는 차원에서의 정치력신장 운동이엇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만 충분하지 않지요.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2세들의 정체성 교육에 매진해야 하고 소수인종임에 각성해야 하고,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폭동을 잊지말자는 이런 노력을 함께 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1992년 폭동 이후에 한인사회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치력신장 입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뉴욕이나 LA똑같이 정치참여의 열기는 달라졌지요.

Q: ‘4*29 LA 폭동’ 25년이 지났는데요, 뉴욕일보는 4월27일자 신문 ‘4*29’ LA 폭동 25주년 기획 기사로 “LA 주민 60%가 25년전 폭동 또다시 일어날 수가 있다”는 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재발 가능성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A: 앞에서도 강조 햇지만 폭동의 원인은 빈곤문제와 인종문제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잇는 미국은 지난 한 세기 이래로 지금이 빈부 격차가 가장 심하다고 합니다. 트럼프 권력의 가장 독소정인 요소는 백인우월주의입니다. 대도시 슬럼가의 범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지요. 사회가 대단히 불안해졌습니다. 뉴욕일보의 보도와 같이 지난 26일 LA타임즈는 LA 주민 60%가 향후 5년 내에 ‘4*29’ 와 유사한 인종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공격적인 차별이 점점 더 횡횅해지고 있습니다. 뉴욕, LA, 시카고 등지의 흑인들과 남미계 극빈층들의 일상이 점점 더 비참해지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폭동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Q: 우리 한인들이 또 다시 폭동의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 한인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 나가야 할까요?

A: 우선은 리더십이 이 문제에 진지해야 합니다. 한인사회가 대외적으로 잘 조직된 것으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만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만이라도 타인종 사회와 교류를 폭을 넓혀야 합니다. 우선은 아시안계들과, 그리고 흑인사회와 관계를 잘 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한인사회는 우리끼리만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 흑인사회의 어려움에 동참해야 하고 공권력에 권익이 침해 당하는 케이스에 함께 싸워줘야 합니다. 트럼프 권력의 인종주의에 항의하는 집회에 한인들이 없습니다. 이러면 안되지요. 많은 한인들이 참가할 수는 없지만 한인사회 지도자님들은 참여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끼리만 이 문제입니다.

우선, 소수인종의 입장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지역사회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하구요. 인종편견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4*29 폭동’에서 교훈을 찾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35만 이상의 한인사회에서 ‘4*29폭동’ 25주년 행사가 아무 것도 없음이 실로 한심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3.1절이다, 6.25다, 광복절이다, 대통령 초청 동포간담회 등등의 행사에는 서로 앞장서겠다고 하는 회장님들이 어떻게 이 ‘4*29 폭동’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무지하고 무관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정치참여입니다. 결국엔 우리의 집단적인 정치력만큼 보호받습니다.

  • 오랜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 칼럼은 2017년 4월 29일  뉴욕일보 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한인이민사 최대 비극 ‘LA 4 * 29 흑인 폭동’ 25주년 특별대담 ‘그날’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력신장으로 제2 피해 싹 잘라야 올해 4월 29일은 미주한인 이민사에 최대의 비극인 ‘4*29 LA 흑인 폭동’ 25주년 이다. 4*29 LA 폭동은 1992년 4월 29일 교통 단속에 걸린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은 집단 구타한 백인 경관 4명에게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분노한 흑은들이 LA 도심으로 일제히 쏟아져 나와 폭력과 약탈, 방화를 일삼은 사건이다. 흑인들의 분노는 한인에게로 집중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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