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물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이들 만물들은 존재를 하고 있고 또 존재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일까?  필자는 모든 만물들의 존재는 앞선 만물들의 정체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존재도 가깝께는 부모 더 멀리는 선산 김가 가문 그리고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인류가 번식하고 씨족이 되고 민족으로 된 정체성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존재의 의미는 자신을 유지하고 자신이 남기고 싶은 것들, 즉 자신의 정체성을 후대들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라고 볼수 있다.

정체성은 자신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세계가 나를 규정하는 것 또한 일치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쉽게 말해 나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짐승 취급하게 될 경우 처음에는 격렬히 저항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포자기 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든지, 짐승같은 노예의 길을 받아들이든지 하게 되어 노예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우리는 모국을 떠나 이역만리 미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또한 미국 사회도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제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명칭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이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우리의 근거지를 만들어야 한다.  뭉쳐살면서 함께 정체성을 공유한 집단에게서 집단 근거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피를 나눈 가족도 흩어져 살게 되면 나중에 같이 살려고 해도 불편해서 살수가 없다.  역사속에서 보더라도 동아시아 북부에서 1천년이나 역사를 이루면서 대제국을 건설했던 거란(요나라)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의 고구려 정벌 선봉대 역할을 하고도 당에 팽을 당하고 다시 발해를 무너뜨리고 요나라를 세웠다가 여진족의 금나라에 멸망을 당했다. 그후 몽골에 충성을 하여 원제국 건설의 일등 공신이 되어 서방정벌 선봉대 역할을 했던 거란이 결국 자신의 근거지를 상실하고 바닷물에 녹아든 소금처럼 사라졌다.  한인 커뮤니티의 근거지는 어디가 될까? 지금 모여살고 있고 한인 커뮤니티의 리더쉽이 발휘될수 있는 그런 지역이 근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커뮤니티의 리더쉽을 만들어내고 그 리더쉽에 의해서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눈에 보이는 리더쉽을 형성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코리언 아메리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속의 한인들은 중국계처럼 집단적 거주지를 형성하지 못한다. 중국계는 한번 터를 잡으면 그곳을 차이나 타운으로 만드는데, 한인들은 유목민 기질이 있어서인지 계속해서 더 나은 지역으로 옮겨간다.

셋째,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써 함께 동고동락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유하는 정서와 문화를 축적해 나가서 하나의 집단으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 현재 재미 한인들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써의 문화적인 내용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통신의 발달로 한국의 문화를 한국과 똑같이 받아서 사용하고 있는 관계로 한국 지향적인 문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문화권에서 살아야 하기에 그야말로 2중 문화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도 살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도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들이 역사속에서 사라져간 거란과 같은 운명이기 보다는 자신의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사회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민족단위로 존재하면서 존경받는 그런 존재가 되도록 지금 부터 우리는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29 LA 폭동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는 하나의 분기점(Turning Point)가 되었다. 조용히 개별적으로 살것인가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것인가, LA 폭동 이후 한인들은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를 독려했고, 다름 세대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 노력을 하였다.

지금까지의 노력에 더하여 집단 거주지역과 리더쉽 그리고 집단의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더욱더 좋겠다.

 

 

세상만물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이들 만물들은 존재를 하고 있고 또 존재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일까?  필자는 모든 만물들의 존재는 앞선 만물들의 정체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존재도 가깝께는 부모 더 멀리는 선산 김가 가문 그리고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인류가 번식하고 씨족이 되고 민족으로 된 정체성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존재의 의미는 자신을 유지하고 자신이 남기고 싶은 것들, 즉 자신의 정체성을 후대들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라고 볼수 있다. 정체성은 자신이 스스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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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LA 폭동 21주년을 되짚어 본다. LA 폭동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미국으로 이민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한인 커뮤니티가 어떻게 미국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리고 뜻있는 사람들이 다시는 그러한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의 결과 미국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했던 한인들이 하나 둘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유권자 등록운동과 선거참여 운동이 일어났고 한인 정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1년이 된 지금 그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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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Think Tank)를 빼 놓고는 미국 정치를 옳게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문자 그대로 연구자 집단이다. 싱크탱크는 단순히 연구만 하지 않는다. 정부에 아이디어를 주고 정책집행에 비판을 가하기도 하면서 현실 정치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다. 싱크탱크와 이념이 맞는 정부가 들어서면 연구원들이 대거 정부에 들어가기도 한다. 정당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이념적으로 견제한다. 크고 작은 싱크탱크가 워싱턴에만도 300여 곳에 달한다. 미국의 총체적인 두뇌집단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들이 매일같이 쏟아내는 수백건의 보고서와 세미나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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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류미비 상태로 있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뒤에 가서 줄을 서라!” 얼핏 생각해보면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인 말인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은 8년 후 영주권을 주고, 다시 5년 후에 시민권을 취득하게 해주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최근 연방 상원 의원들은 10년 후에 영주권을 취득하고, 다시 3년 후에 시민권 취득하게 해주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모두 13년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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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개협협상에 나선 연반 상원의원들  사진:http://swampland.time.com/2013/01/29/will-immmigration-reform-work-this-time/] 최근 연방 상원에서 포괄적 이민 개혁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체적인 개혁안이 모양을 잡아가고 있다. 2013년 초 오바마 대통령이 연두 연설(State of Union)을 통해 이민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히고, 민주 공화 양당의 유력한 상원 의원들이 협상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신분 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기대감이었다. 미국 전체에 약 1천 1백만명의 서류미비자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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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종교전쟁은 이슬람에 대항한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이나 개신교와 맞선 구교의 30년 전쟁이 아니라 20세기에 발생한 이슬람교도와 힌두교 사이의 전쟁이었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그들 사이의 갈등은 비교적 잠잠했다. 그러나 이 두 종교는 식민 지배자들 보다도 서로 상대 종교를 더 두려워하면서 힌두교도는 마하트마 간디의 아래에서 , 이슬람교도는 무하마드 알리 진나의 지휘하에 각각 영국에 대항해 독립 투쟁을 전개했다. 해방의 시기가 임박하자 이슬람교도들은 식민지 인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과는 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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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모국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하여 지금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고 있다. 분단으로 인하여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한국은 단군이래 최고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대륙으로 가는 길이 막힌 관계로 일본과 같은 섬나라와 같은 상황이다. 분단된 한국은 점점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로 가고 있고 어쩌면 우리의 세계관도 점점 일본과 같은 섬나라 세계관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대륙의 기운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고, 드라마를 통해서 고구려의 대륙 역사와 기상을 보는 대리 만족만 하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분단되지 않은 한반도에 태어났더라면, 우리의 세계관 자체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 가는 배낭여행을 했을 것이다. 모든 상품을 기차를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유럽으로 팔러 갔을 것이다. 대륙은 더 이상 과거의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생활속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 값으로 몽골을 지나 중앙아시아까지 기차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륙과의 교류가 쉽고 많은 관계로 어쩌면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더많은 문화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굳이 우리가 조그마한 땅에 갇혀 살고 있는 작은 나라라는 생각 보다는 점점 국경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한류를 더욱 거세게 만들 수 있는 시장이 무한정으로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의 모국 한반도가 유례없는 위기의 가운데로 들어서 있다. 하루하루의 삶에 쫒겨 살고 있지만 전세계의 탑뉴스로 떠오른 오늘의 북한 핵 위기를 보면서 분단이라는 것이 그대로 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머리에 이고 있는 폭탄을 버리는 통일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는 긴장도 잊은채 살고 있는 것이다.

어둠이 짙어지면 새벽이 온다고 했다. 지금 우리 앞에 유례없는 긴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부디 통일의 새벽을 예고 하는 것이기를 기대해 보아야 하는가? 도대체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 것인가? 북한에 대한 60년의 제재와 봉쇄의 결과가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도대체 미국은 또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실체는 남과 북이지만 국제법상 전쟁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아직 없다. 뿐만아니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정책도 없다. 미국에 200만이나 되는 한인들이 살고 있는데, 미국은 오로지 북핵문제 이외에는 아무런 정책을 고민하고 있지 않고 있다.

중동의 아주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사실 미국의 중동 정책에서 별로 중요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석유가 많이 나는 다른 나라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살고 있는 600만 유대계가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너무나 중요한 미국의 전략국가가 되었고, 매년 수억 달러를 우리의 세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 수 많은 이산 가족 한국계 미국 시민들이 살고 있지만 미국의 국무부와 적십자사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미국에 살고 있는 200만 한인들이 관심이 없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는 미국의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움직일 때만 자신들도 관심을 갖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반도 위기는 분단된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 살고 있는 200만 한인들이 무관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인들이 관심을 갖고 나서면 한반도의 위기를 평화 정착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두고 온 모국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하여 지금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고 있다. 분단으로 인하여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한국은 단군이래 최고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대륙으로 가는 길이 막힌 관계로 일본과 같은 섬나라와 같은 상황이다. 분단된 한국은 점점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로 가고 있고 어쩌면 우리의 세계관도 점점 일본과 같은 섬나라 세계관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대륙의 기운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고, 드라마를 통해서 고구려의 대륙 역사와 기상을 보는 대리 만족만 하고 있다. 만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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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유례가 없는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불과 40년전 만 하더라도 동아시아(일본을 포함)가 전 세계 총생산에 기여하는 비율은 겨우 4% 정도에 불과했다. 이것은 북미 지역이 차지하던 약40%의 비율에 비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시점에서 볼 때, 두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25% 정도로 동등해졌다. 아시아의 성장속도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경제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산업화로 비상하는 단계에서 영국은 50년이 걸렸고 미국은 1인당 GNP를 배가하기까지 거의 50년이 걸린 데 비해, 중국과 한국은 불과 10년 만에 똑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 지역적으로 어떤 거대한 분열이 발생하지 않는 한 20년 내에 아시아는 전 세계 총 GNP에서 북미와 유렵 모두를 능가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어가는 것과 동시에 정치적 휴화산으로 남아 있다. 아시아가 경제발전의 측면에선 유럽을 능가하고 있지만 정치발전에는 커다란 결함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유럽에서처럼 민족적이거나 인종적, 혹은 영토적인 분쟁을 희석, 완화 시킬 수 있는 다변적인 협력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정월, 오바마 대통령은 국방전략 지침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미국 경제와 안보 이익은 서태평양에서부터 동아시아, 인도, 남아시아에 이르는 원호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세력균형을 재조정(rebalance)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을 치르면서 걸프만에 집중해 왔다. 미국 안보에 가장 민감했던 북한의 핵 문제도 중국에 맡겼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등을 치르며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미국과 가까운 일본은 장기적인 불황을 겪으며 경제력이 추락한데다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까지 당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급성장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그 동안 가벼이 여겨온 동북아시아에 집중하겠다며 재조정을 거론한 것이다. 미국의 항공모함 전력은 과거처럼 유지하지만 순양함과 구축함 등 여타의 군사 전력은 과거에 비해서 6:4의 비율로 동북아시아에 더 투입하겠다고 아주 노골적으로 밝혔다. 이 결정은 중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동북아시아는 그리 넓지 않은 서태평양이란 바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중국, 일본, 한국이 그 주변의 중심국가다. 오바마 대통령의 동북아시아의 재조정이란 선언에 자극을 받은 한국. 중국. 일본이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갈등과 충돌을 양산하고 있다. 대륙국가인 중국은 대양으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의 경제발전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공업품 생산과 무역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바다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해군사령관인 ‘류화칭’은 중국이 먼 바다로 나가야 한다고 선언한 “도련”선언이다. 일본에서 대만, 필리핀을 잇는 선까지 중국해군이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고 하고, 그 다음에 괌과 사이판으로 이어지는 바다의 질서가 중국책임이라고 하는 말이다. 일본은 한 수 더 떴다. 그들은 평화헌법에 따라 침략은 하지 못하고 방어만 할 수 있는데 방어를 위해서 공격을 하는 영역을 일본 영토 기점에서부터 1000해리까지 설정했다는 억지를 공표했다. 최근 요미우리 산케이에서 단골로 올리는 “1000해리 전수방위”전략이다. 올해에 들어서는 그 거리에 관계하지 않고 그냥 전수방위라고 공격적이다. 한국의 인근바다를 포함한 일본으로부터 동쪽은 그들의 영역이다. 일본 자위대에선 군사전략용어로 “동적 방위”라고 하면서 범위를 넓힌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이에 대응하는 한국의 구호는 “대양해군”이다. 이러한 세력판도를 넓혀 나가는 팽팽한 기 싸움에서 한국 해군은 이지스함을 건조하고 헬기가 탑재하는 대형 상륙함인 독도함을 건조했다. 그리고 기동함대를 창설하고 그 본부를 제주도에 설치하는 작업이 제주기지 건설이다.

중일 수교 40년 동안 조용하던 중국이 센가쿠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일본의 실효지배인 센카구를 분쟁지역으로 문제화 시켜서 센가쿠에 전선을 만들어 일본이나 미국함대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중국의 속셈을 모를 리 없는 일본과 미국은 절대로 센가쿠를 전선으로 삼지 않고 실효지배권만 강화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계기로 한국의 요청을 빌미 삼아 중국연해에 더 깊숙이 들어와서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강행했다. 모든 사건의 저변엔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봉쇄의 군사전략이 깔려있다. 중국의 대양진출을 위한 발버둥이 강해질수록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하나로 묶어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려는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해군은 미국을 제외하고 미국식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한 세계 유일한 나라다. 일본해군 그리고 한국해군을 하나로 묶으면 충분히 중국의 진출을 누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미국의 의도는 한국에 먹히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정보보호협정을 맺게 했지만 한국야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지난해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일본보다는 오히려 미국을 놀라게 했다. 미국의 대중국 군사전략에 큰 차질이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동북아 정세 변화에 넋을 놓고 있다가 식민지로 전락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역고 1조 달러를 돌파하고 300억 달러 이상의 국방비를 쓰는 강국 한국이다. 더구나 세계 최강의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한국계 미국시민이 200만이다.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다만, 미주한인들이 동북아시아의 동향과 전망에 깨어 있으면서 한미관계의 틀 거리를 튼튼히 부여잡아야 할 일이다. 전략적 지도력이 아쉬운 때다.

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유례가 없는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불과 40년전 만 하더라도 동아시아(일본을 포함)가 전 세계 총생산에 기여하는 비율은 겨우 4% 정도에 불과했다. 이것은 북미 지역이 차지하던 약40%의 비율에 비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시점에서 볼 때, 두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25% 정도로 동등해졌다. 아시아의 성장속도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경제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산업화로 비상하는 단계에서 영국은 50년이 걸렸고 미국은 1인당 GNP를 배가하기까지 거의 50년이 걸린 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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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통령선거당시 조셉 리버맨(왼쪽)과 엘 고어 (오른쪽)

2000년 미 대선전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앨 고어’는 자신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커네티컷 출신의 유태계 상원의원인 ‘죠셉 리버맨’을 지명했다. 이에 대한 한국이나 한인사회의 언론에서는 연일 유태계들의 정치적인 파워를 언급했다. 정작 워싱턴의 평가는 “그가 유태계임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고 하는데도 한국의 언론은 달랐다. 미 전체 인구의 3%(당시)도 안 되는 쥬이시 어메리칸들이 드디어 부통령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유태계들의 힘을 얻은 ‘앨 고어’의 대통령 당선은 시간문제라고 까지 하면서 유태계의 파워에 연일 경탄을 금치 못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만일에 프로리다 법정에서의 대선결과 판정이 고어의 승리로 났다면 미국내 유태계에 대한 한국 언론의 평가는 사실로 규정되고 한인들은 그렇게 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앨 고어’후보가 죠셉 리버맨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자 전국의 유태계 지도자들이 워싱턴과 커네티컷에 모였다. 벌써 유태계 부통령이면 다수인종으로부터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유태인정치인 보다는 유태계 전체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확고한 공동체적 입장이다. 당시 고어가 리버맨을 선택한 것은 클린턴 성스캔들 당시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의회단상에서 공개적으로 클린턴을 비난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고어의 클린턴과의 차별화전략에 적합했고 부통령 후보군 중 가장 보수적인 리버맨을 선택함으로써 공화당의 중도적인 표를 공략하려는 선택으로 밝혀졌다. 유태계들의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론와이든 현 오레곤주 상원의원

유태인들의 집단적인 전략의 핵심은 선거참여다. 투표율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인을 지원하는 일에 더 집중한다. 그들은 우선, 친유태계(이스라엘)의 현역의원을 지원한다. 여기엔 공화,민주의 당파적인 구분이 없다. 심지어는 유태계출신이 후보로 나왔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유태계커뮤니티의 이익을 전제로 지원기준을 삼는다. 필자가 에이팩(유태계공공정책위원회) 사무총장과의 인터뷰에서 “ 신뢰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당신이 만약에 우리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다음 선거에서 우리형제나 부모가 당신 지역구에서 출마한다 해도 당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약속. 실천 합니다 ”라고 밝혔다., 이들은 친이스라엘 정치인이 유태계의 도전을 받아 고전할 경우 유태계의 덕망 있는 인물을 후원회장으로 내세워 유태계에서 선거자금을 모으는데 앞장서게끔 한다. 때로는 유태계후보를 주저앉히기도 한다. 1986년 유태계의 ‘론 와이든’ 하원의원이 공화당의 ‘밥 팩우드’상원의원에게 도전장을 냈다. 유태계들은 “론 와이든‘의원을 설득해서 주저 앉혔다. 팩우드 의원은 어려울 때에 이스라엘의 친구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매년 열리는 AIPAC의 컨퍼런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을하고 있다. AIPAC이 얼마나 미국에 영향력이 큰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한인동포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인하여 한인밀집지역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크게 성장했다. 뉴욕의 후러싱과 뉴저지의 버겐카운티에선 한인유권자가 잘 결집되었고 투표율도 높다. 한인사회에 대한 선출직 정치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뉴저지에선 민주, 공화 양당이 한인사회의 표심을 사려고 경쟁이다. (태평양전쟁당시)일본군의 강제 종군위안부에 관련한 문제가 한인들의 주된 관심사인줄 알고 지역정치인들 사이에 아시아관련 역사공부의 열풍이 불었다. 경쟁적으로 일본을 성토하기도 한다. 2010년 시민참여센타가 뉴저지 펠팍에 일본군강제종군위안부기림비를 세웠다. 당시 관심을 촉구하느라 하소연에 가깝게 참여를 요청해도 그 반응이 (심지어는 한인정치인도)냉랭했었다. 한인커뮤니티의 가장 민감한 뉴스거리가 되자 지역의 정치인들이 서로 앞 다투어서 여기를 찾아온다. 지난해 선거 때엔 펠팍의 기림비가 그들의 선거용품이 될 정도였다. 펠팍이 민주당지역이라 위안부이슈나 기림비가 민주당의 전유물이 되었다. 공화당계 한인들이 기림비를 건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인권의 문제가 당파적인 도구로 전락될 위기였다. 2007년 연방결의안을 위기로 몰아갈 위험천만의 일이었다. 다행히 동포사회가 범동포적으로 나서서 카운티에 초당적인 차원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기림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한인사회가 한인정치인들보다 수준이 높음을 입증한 일이다. 기림비가 당파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라는 강력한 멧세지가 아닐 수 없다. 정치력이 성장한 한인사회의 성숙한 모습이다. 한인정치력이 한인정치인을 리드해 나가는 현상이 분명하다.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론 킴 의원

지난해에 뉴욕은 한인사회의 정치력신장에서 그야말로 큰 성취를 거두었다. 한인정치인과 한인정치력이란 부분에서 동시에 경쟁력을 확보한 “론 김”이 뉴욕 주하원에 진출했다. 그는 한인사회에서도 어필했고 민주당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었다. (그동안 그 지역에선 한인정치인으론 당에서 밀렸고 당내에서 경쟁력이 있으면 한인정치인으로 밀렸었다 ) 올해는 뉴저지선거다. 뉴저지 버겐카운티에서 한인정치인을 내려면 철저하게 ‘론 김“을 배워야 한다. 정치인에게 가장 민감하게 작동하는 것은 표심이다. 한인들의 표심은 한인커뮤니티의 이익이지 한인정치인이 아니다. 뉴저지의 한인표는 소수지만 결집되었다. 그리고 한인후보라고 무조건 지지하기엔 한인사회가 크게 성숙했다. ”한인정치인이 없는 것만 못하다“라는 민심이 없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한인밀집지역의 정치적인 일차 목표는 한인정치인이 아니고 한인들을 위하는 정치인이다. 한인들의 수준이 유태계들의 방식에 충분히 닿아있다.

2000년 미 대선전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앨 고어’는 자신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커네티컷 출신의 유태계 상원의원인 ‘죠셉 리버맨’을 지명했다. 이에 대한 한국이나 한인사회의 언론에서는 연일 유태계들의 정치적인 파워를 언급했다. 정작 워싱턴의 평가는 “그가 유태계임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고 하는데도 한국의 언론은 달랐다. 미 전체 인구의 3%(당시)도 안 되는 쥬이시 어메리칸들이 드디어 부통령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유태계들의 힘을 얻은 ‘앨 고어’의 대통령 당선은 시간문제라고 까지 하면서 유태계의 파워에 [...]

19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

19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

북한의 김일성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제네바에서 북. 미 간 ‘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1994년의 일이다. 기본합의서에서 북한은 핵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2개의 경수로와 핵 발전 원자로 건설의 대가로 핵무기 개발계획을 폐기할 것을 약속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기 전까지 이 제네바의 기본합의서는 8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조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평화협상의 전도사인 ‘지미 카터’대통령이 김일성과 클린턴간의 다리(대회)를 놓았다. 미. 북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협상국면으로 전환시키고, 제네바 협상의 길을 열었다.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북의 강석주 대표와 미국의 로버트 칼루치 대표는 수년 동안 전 세계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으면서 동서 냉전의 마지막 매듭을 풀어내는 작업을 감당했다. 전쟁 없이 통일의 길을 염원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강석주와 칼루치의 노력은 미국과 북한간 또 다른 직접적인 접촉면을 만들어 냈다. 바로 페리보고서다. 매들라인 알브라이트 미국의 국무장관이 평양으로 날아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다. 곧 이어서 북한의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워싱턴에서 클린턴을 만났다.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었다. 동서 냉전의 방점을 찍는 세기의 지도자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클린턴의 생각이었다.

< 또 다른 핵 위기의 시작 >

2001 년 1월 출범한 조지 부시 행정부는 몇 달에 걸친 대북정책 종합검토를 끝내고 6월6일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북. 미 대화의 3가지 의제를 제안했다. 1. 제네바 핵 합의 이행 개선. 2. 북한 미사일 계획에 대한 검증 가능한 규제와 미사일 수출 금지. 3. 북한의 재래식 무기감축과 북한 군사력의 후방 배치가 그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핵사찰을 위한 현장검증을 하라는 것이고 북한을 직접 방문해서 미사일 배치상태를 검사 하겠다는 것이고 더구나 군사력의 후방배치는 북한의 대남군사력 균형이 무너지게 되는 조치이다. 부시 행정부의 요구는 한마디로 북한의 무장 해제인 반면에 북한을 위한 당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북한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북한은 미국에게 이미(2000년 10월 클린턴 행정부) 쌍방이 합의한 조-미 기본합의문과 조-미 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안을 의제로 삼자고 밝혔다. 오히려 북한은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 보상 문제를 대회의 우선 의제로 삼을 것을 역으로 제안했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언급하려면 주한미군 철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클린턴 때의 모든 것을 무효화 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한 상황은 1994년 지미 카터가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것을 무효화 시키는 것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29일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북한 등 7개 국가를 잠정적 선제 핵 공격 대상국으로 지목하는 핵 태세 보고서도 언론에 공개했다. 미. 북 사이가 급랭했다. 워싱턴의 강경파와 온건파는 사사건건 대립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게 더욱 단호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특사로 평양에 파견했다. 당시 제임스 켈리의 대 북한 일방적 제안에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정권 교체까지 고려하고 있음을 절반 정도 내 비쳤다. 북의 강경한 대응은 즉시로 나타났다. 이때부터 또 다시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고조 되었다. 미국은 대북한 중유공급을 중단 했다. 북한은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핵 시설 가동을 즉시 재개했다. 미국은 북한의 영변지역을 폭격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고 이에 대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 시설에 대한 봉인과 감시 카메라를 제거했다. 2003년 4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의 32년 역사에서 첫 번째로 탈퇴한 국가가 되었다.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발언을 사실상 북한에 대한 전쟁 선포로 생각한다는 연설을 했다. 미국과 북한 간 최고의 긴장관계가 조성되었다.

 

2003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직후 인수위 사무실에서 제임스 켈리 차관보를 면담하고 있다.

2003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직후 인수위 사무실에서 제임스 켈리 차관보를 면담하고 있다.

< 전쟁방지, 평화의 길을 위한 노력 >
2003년 1월 부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차관보를 면담한 노무현 당선자는 한국의 북 핵 관련 3원칙을 밝혔다. 1. 북한의 핵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며 2. 북한의 핵을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3.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해 3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북한의 핵 위기는 덩달아서 더욱 고조되었다. 더구나 이라크 침공 직전인 그 해 2월말엔 미국 내 강경파들이 북한 핵 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을 검토하고 있다는 미국의 언론 보도가 잇달았다. 그러한 와중에서 워싱턴의 대표적인 온건파인 ‘리처드 아미티지’국무부 부장관이 전쟁을 막기 위한 미. 북 간 직접 대화를 언급했다가 부시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으며, 미국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노무현 정부의 한 장관을 만나서 영변 핵 시설 폭격을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워싱턴의 강경파들은 북한을 정리해야 한다고 연일 합창을 하는 수준이었다. 펜타곤은 한-미 동맹관계를 재조정한다고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에서 주한 미군의 한강이남 이전 문제를 언급했다. 결정적인 일은 워싱턴 강경파의 거두인 도널드 럼스팰드 국방장관은 “ 한국인이 원치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라는 발언까지 했으며 그는 이라크와 북한에 대해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문제될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북한 공격 초읽기 돌입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이 바싹 긴장했다. 후진타오의 특명을 받은 중국외상이 미국의 제임스 켈리와 북한의 리근 대표를 베이징으로 초청했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일본이 적극적으로 끼어들면서 상황은 더 악화 되었다.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우선 공조해야 한다는 일본의 주장은 북한을 더욱 강경하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 북한과 미국 간의 팽팽한 긴장을 낮추려는 중국의 노력에 성과가 났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서 불안해 하는 것을 중국이 놓치지 않았다. 6자회담의 첫 번째 회동은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한 절차상의 양보가 위기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 이라 예상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계획을 중지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을 선제 공격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주는 것이었다.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해도 그러한 제안은 위험을 낮추는 일이며 절대 불리한 것이 아님을 이해 못할 미국이 아니었다. 특히 심각한 북한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협상 당사국들의 지원이 포함된다면 그 효과는 의외로 클 것이라 예상 되었다. 2003년 10월 아시아를 순방하는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이 그러한 제안을 했다. 대결에서 외교로 전환하는 부시대통령의 결정적인 역할이었다. 6자회담의 본격적인 시작이 되었다. 2004년 1월, 북한은 핵무기에 관한 미국의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북한의 핵 시설을 둘러보게 하였다. 이들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방세계의 언론을 통해서 대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강함을 전했다.

 

2003년 8월 첫 6자회담, 각국의 대표들

2003년 8월 첫 6자회담, 각국의 대표들

< 미. 북 관계의 전환 >
2006년 5월 부시행정부의 최고위급 관료가 한국전쟁 이후 체결된 정전협정을 대체할 공식적인 평화조약 협상을 포함하는 광범위하고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이 제안이 미. 북 관계의 발전에 상당한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 왜냐하면 북한은 오랫동안 그러한 조약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도 이제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팽팽한 행로가 계속된다면 그러한 권고를 준비하고 내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표시다. 물론 이러한 미국의 전술변화는 이란 때문이었다. 이란의 핵 클럽 가입을 강하게 반대해 왔던 미국은 북한이 이란의 역할 모델이 되는 분위기를 절대로 원치 않았고 이미 이란이 핵무기를 갖고자 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이란을 별개의 사안으로 만들어 내는 미국의 고도의 전략적 제안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과 태도의 변화가 북한을 성급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미국의 이란에 대한 관심을 북한으로 돌리도록 할 방안을 궁리했다. 동시에 북한은 실제로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을 시험할 의도도 있었다. 2006년 6월 북한은 장거리 마시일 발사 시험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시 최고조의 긴장이 조성되었다. 장거리 미사일은 미사일 그 자체도 큰 위협이지만 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경우를 상상해야 만 했다. 핵탄두가 창작된 미사일이 미국의 본토에 도달한다는 것을 상상하고 싶은 미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대에 올려놓고 엔진 시험을 했다. 미국의 언론은 북한은 이란과 알카에다를 위한 완전한 핵 시장을 제공할 가능성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워싱턴의 온건파들도 자극을 받았다. 클린턴 때 국방장관을 지냈고 미국의 대북정책의 나침반 역할을 한 ‘페리보고서의 주역인 ‘윌리엄 페리’는 워싱턴포스트 지의 기고를 통해서 “ 북한이 미국의 경고를 거부하면 발사대의 미사일을 날려 보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마치 부시 대통령의 선제공격 독트린을 부 추키는 것 같았다. 2006년 7월4일 북한은 대국간 미사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6발의 미사일을 발사 실험을 감행했다. 대포동 2호는 발사 후 약 1분 후에 폭발했고 별다른 피해 없이 동해에 떨어졌다. 북한의 무분별한 행동은 그들을 더욱 고립시킬 뿐이란 것은 자명했다.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들인 중국은 당황했다. 일본은 격분했으며 한국은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하여 그 우려를 더해 갔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의 교정된 대 북한 외교노선의 입장에 힘을 실은 반전이 있었다. 세계의 외교위원장이라 불리는 상원의 ‘리처드 루가’외교위원장이 절대로 선제의 방법을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외교로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척 헤이글 의원은 선제 대신 외교를 쓰라고 백악관과 국무부에 편지를 내기도 했다. 상원외교위원장인 루거와 전쟁에 참전했던 경력의 척 헤이글 의원의 권고는 대통령도 긴장을 시켰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북한은 내친김에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부시 행정부는 그래도 북한과 대결하는 것 보다는 외교로 풀어나가는 길을 택했다. 부시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사용되는 원자로의 냉각 탑을 파괴하는 조건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협상에 성공했다.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척 헤이글’ 상원의원은 부시의 대북정책 성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 추켜세우기도 했다. 오바마의 대 북한 모르쇠 외면정책(전문가들은 ‘전략적 인내’라고 한다)에 대항해서 북한은 오바마가 막 취임한 직후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또 한차례 핵실험을 감행했다. 2009년의 일이다.
김정일 체제 이후에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최우선 과제다.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전략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듯하다. 북한은 지난 1월23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서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반드시 핵실험을 이어서 감행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른다. 제발 북한의 핵실험 없이 진정이 완화되고 미. 북 관계에 대화의 통로가 넓어지길 바랄 뿐이다.

< 아시아 맹주자리. 분단이 문제: 긴장완화가 관건이다. >

미국의 대 북한 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는 근거는 외교론 자인 ‘리처드 루거’위원장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존 케리’가 국무장관이고 ‘척 헤이글’이 국방장관인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지금 우리 민족이 분단이 아니라면, 아니 분단이라 하더라도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면, 21세기의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서 그까짓 일본과 중국. 한판 충분히 해볼 만 하겠는데….200만 미주동포가 있으니 말이다.

제발 미. 북 관계는 물론이고 남과 북의 교류. 협력이 왕성하게 확대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제네바에서 북. 미 간 ‘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1994년의 일이다. 기본합의서에서 북한은 핵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2개의 경수로와 핵 발전 원자로 건설의 대가로 핵무기 개발계획을 폐기할 것을 약속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기 전까지 이 제네바의 기본합의서는 8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조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평화협상의 전도사인 ‘지미 카터’대통령이 김일성과 클린턴간의 다리(대회)를 놓았다. 미. 북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협상국면으로 전환시키고, 제네바 협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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