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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고 또 참여해야 한다

by kace

인간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다. 인류가 사회적 존재로서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집단생활의 작동방식이 필요했다. 바로 집단생활을 작동시키는 방식을 우리는 정치라고 규정한다. 그후 집단의 단위에 따라서 촌락, 부족사회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들을 장악한 특정한 인물이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 왕국의 최고 목표는 왕을 지키는 것이었다. 백성과 모든 제도는 모두 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정치를 왕정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 정치제도는 민주주의였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주인이었고 이들에겐 투표권이 있었다. 물론 노예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직접 정치에 참여를 하였다.

모든 제도가 왕을 위한 왕국과 달리 아테네는 투표권을 가진 자신들을 위한 제도와 정치를 하였다. 이것을 민주주의 정치라고 한다. 왕정에서는 왕에 충성하는 것이 곧 국민의 의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의 정치는 항상 심판 받는다.

지금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로 운영되는 미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미국사회는 다른 나라와 달리 다인종, 다민족 연합국가다. 미국의 연방의회는 다수 인종인 백인들이 절대 다수이지만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들도 진출해 있다, 또 백인들을 나누면 유럽의 어느 나라 출신이었는지, 또 유대인인지로 나뉘고 히스패닉도 중남미 어느 나라 출신인지 나뉜다. 그리고 아시안도 마찬가지다.

지금 연방의회의 아시안 정치인들은 일본, 중국, 인도, 태국, 베트남 출신들이다. 지금 연방의회에 한국계 출신은 없다. 미국의 정치는 시민이 투표로 선출하여 정치를 위임한 선출직들이 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이 침해당한다고 생각이 되면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기도 한다.

다민족 다인종 연합국가인 미국에서 정치는 치열하다. 겉으로 보기엔 다 미국인이다 그러나 각 민족, 인종 커뮤니티 또는 특정 이익집단 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치열한 정치활동을 한다. 자신들의 유권자가 많으면 표로, 표가 없으면 정치 후원금이나 로비로, 또는 시민참여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남보다 먼저 정책을 만들고 자기집단을 위한 코커서를 만들고 법을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자신들의 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치는 가까이 하고싶지 않다. 그런 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어 하는 집단들도 있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집단들의 후세들은 한 세대가 지나면 미국 내에서 3등 시민으로 전락하고 결국은 천덕꾸러기가 된다. 그들의 부모세대들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바빴다. 그러니 너희들이 잘 해야 한다는 변명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후손들은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없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가난이 대물림이 되듯이 이들의 정치력도 대물림이 된다. 정치는 여러 집단속에서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지만 결국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지키고 확장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정치력을 신장하기 위해서는 자기 집단이 전체를 위해서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자료로 만들어서 정치권에 잘 설명하는 것을 부지런히 하여야 한다. 론 김 의원이 한인 커뮤니티의 주력업종인 네일과 세탁업을 지원하기 위한 주정부 기금 300만달러를 하원에서 만들었는데 사실상 힘들게 되었다. 상원에서는 론 김과 같이 이 예산을 대변해줄 그런 정치인이 없었다. 그래서 론 김 의원이 지역구에 내려오지도 못하고 뛰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네일과 세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이 업종에 종사하는 인구 및 뉴욕 주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를 잘 준비하고 또 현실적인 어려움을 주 정부가 지원해달라는 설득 논리를 잘 준비하고 끊임 없이 상원의원들을 찾아가고, 협회회원들이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은 다 인종과 수많은 이익 집단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혈투를 벌이는 사회다. 그래서 한번 밀리면 그 다음은 더 밀릴 곳이 없는 낭떠러지가 될 수 있다. 이민자로서 소수계로서 우리는 긴장의 끊을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 칼럼은 2017년 4월 08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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