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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치 파괴의 시대

by kace

지금 세계엔 기존 정치에 대한 파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뽑는 기준에는 당연히 정치적인 경험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가장 화려한 정치 이력을 가진 후보들을 버리고 전혀 정치경력이 없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연방의원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오랜 경력을 가진 의원들이 새파란 정치 무경험자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런 현상은 대서양을 넘어서 프랑스에서도 나타났다. 에마니엘 마크롱, 30초반에 경제산업 디지털부 장관을 역임하고 39세에 당을 창당하고 하원 정치인 하나 없는 원외 정당인 집권 연합당으로 출마를 해서 대통령이 되었고 한달 후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어 다수당이 되었다. 프랑스인들도 놀랐지만 전세계가 경악을 하고 있다.

노련한 정치인들이 거의 전멸을 했고 정치 초년생 대통령과 의원들이 앞으로 프랑스를 이끌어 가게 되었다. 사실상 프랑스의 운명이 초보 운전수들에 맡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남미는 브라질, 베네수엘라 그리고 파라과이에서 무정부 상태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 원인은 경제적 불만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경제적인 불평등, 일자리문제, 저임금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런 문제는 1900년 초에도 있었다.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폐단에 저항하던 시대에 맑스와 레닌이 출현하여 공산주의 혁명으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무산자계급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건설 하자는 혁명의 대 열병이 일어났다. 물론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민주적 제도를 만들기 위한 민주주의 혁명도 있었다. 제국주의 폭압의 식민지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났고 서구 제국주의 나라들은 식민지의 저항을 누르고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식민지쟁탈전을 벌이는 세계 제 2차 대전이 벌어졌다.

그때와 지금 모두 불만의 기본 내용은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이다. 1900년 혁명의 시절에는 제도의 문제도 심각했기에 체제를 갈아엎고 새로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선거로 대중들의 정치표출을 할 수 있는 방식이 있기에 체제전복을 통한 혁명적인 방식이 아닌 선거를 통한 정치인들의 물갈이를 가히 혁명적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물갈이를 통해서 경제여건이 더 나아져야 하는데 세상은 어떻게 어디로 갈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21세기 우리는 분명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한 물질문명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부는 점점 한쪽으로 쏠리고 일자리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그로 인해서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이 점차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생활물가는 올라가고 실질 임금은 상대적으로 계속 하락을 하고 있다. 동시에 구매력이 떨어진 탓에 소규모 자영업 매출이 줄어들고 매가 스토아로 소비자들마저 빼앗기고 이윤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지속은 결국 더 큰 불만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고 바로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 우리는 초보 정치인 트럼프 대통령이 좌충우돌 운전하는 미국에 살고 있다. 한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야기가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공화당 주도 상하원에서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이로 인한 정치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도 불안한데 정치마저 불안해지면 다민족 연합국가의 민주 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 소수계에게는 불안한 시절이다. 이 시기 커뮤니티가 단결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역량강화에 힘써야 한다.

한치 앞을 내다보고 커뮤니티의 발전 전략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기관들을 확보 강화 시켜야 할 것이다. 전략적인 리더십이 없어서 위기의 시기 속절없이 당했던 4.29폭동의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 등록과 투표에 더욱더 많이 참가해야 한다. 기성 정치에 대한파괴의 시대엔 혼란이 야기 될 수 있다. 언제나 혼란의 불똥은 소수계에 튀었다.

이 칼럼은 2017년 6월 17일 뉴욕 한국일보에 또한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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