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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쿠바와 미국이…

by kace

1898년 아바나 항에 정박중이던 미국의 군함 메인호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전쟁이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이다.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스페인은 쿠바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관타나모에 해군기지를 설치한 것이 이때다. 미국은 만 3년 동안의 군정을 실시하고 민간에게 정권을 허용했다. 쿠바정부라 하지만 이미 모든 중추적 기능은 미국자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잠시 미국으로 와서 교육을 받고 돌아가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서 지배계층이 되었다. 제국의 힘을 빌려서 권력을 갖게 된 20세기의 신생독립국들(필리핀, 월남, 이란, 한국..등)이 다 그렇듯이 쿠바의 권력도 국민들로 부터는 외면당하고 오직 미국의 힘에 의존하게 되었다.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권력을 무너뜨렸다. 카스트로는 쿠바내 미국을 비롯한 외국자본을 몰수하고 미국과의 외교를 단절하는 조치를 취했다(1961년 1월). 한국전쟁을 깃점으로 공산권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미국에게 쿠바는 손톱의 가시였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끝에 미국은 ‘피그만 침공 작전’을 계획했다. 카스트로의 혁명을 피해서 미국으로 도망쳐 온 쿠바 망명자들을 모아서 군대를 조직하고 그들을 게릴라로 훈련시켜 카스트로를 공격한다는 “손 안대고 코풀기” 방식이다. 마이애미의 쿠바 망명인들 1천5백명을 모집했다. 비밀리에 진행한다고 했지만 같은 지역에서 1천5백명을 차출하는 일에 비밀이 가능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와 같은 잔머리 공격작전을 카스트로가 모를 리 없었다. 더구나 카스트로에겐 게릴라전법에 이골이 난 동생 ‘라울 카스트로(현 쿠바 국가평의회의장)가 있었고 그리고 오른팔 역할엔 가장 튼튼한 혁명동지 ’체 게바라‘가 그를 사수하고 있었다. 1961년 4월15일 미국은 쿠바의 피그만을 공격했다. 망명인부대의 뒤에 숨어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이 실수였다. 쿠바 망명세력의 도발로 꾸며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려던 케네디 대통령의 전략(당시 CIA국장이었던 앨런 덜레스 의 잔머리)이 세상 만천하에 드러났다. 피그만에 상륙한 1천5백명의 망명부대(2506여단)군인들은 충성스런 카스트로의 혁명군대에 의해서 박멸되었다. 118명이 죽고 1189명이 생포되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카스트로에게 5300만 달러를 갖다 바치고 1100명의 포로를 데려왔다. 카스트로는 미국의 피그만 침공 저지를 계기로 혁명정부의 기반을 공고히 다지게 되었다.

미국의 노골적인 협박에 겁을 먹은 신생 혁명국 쿠바가 소련에 기대를 하게 되는 일은 너무나 당연했다. 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함으로써 미국의 전면 침공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대립은 순식간에 핵전쟁의 위기로 치달았다. 핵전쟁의 공포가 지구촌을 휘감았다. 위기를 피하려는 미.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을 하고 쿠바로 향하던 소련의 핵미사일 함대가 돌아갔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의 대쿠바 정책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그 후 케네디 대통령은 중앙정보국(CIA)이 ‘피델 카스트로’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몽구스작전(Operation Mongoose)’을 승인해서 기회만 있으면 비밀리에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시도했으며 공개적으론 완전한 쿠바봉쇄정책을 수립해서 추진했다. 카스트로 혁명정부를 몰아내기 위한 망명한 쿠바인들의 대 의회 로비도 극성스럽게 추진되었다. 혁명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허술한 뗏목이나 작은 보트를 타고 미국을 향해 쿠바를 탈출한 망명숫자가 120만 명에 달한다. 주로 프로리다와 뉴욕에 정착했다. 상원외교위원장인 ’밥 메넨데스‘ 뉴저지 연방상원의원이 바로 1952년 카스트로 혁명정부를 피해서 탈출한 쿠바인 마리오 메넨데스의 아들이다. ’밥 메넨데스‘는 1953년 뉴저지주 유니온시티에서 태어났다. 2007년 연방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공화당의원들에게 잘 설명. 설득하는데에 역할을 했던 직전 연방하원 외교위원장 ’일리에나 로스넷트넨‘의원은 카스트로 정부를 피해서 보트를 타고 탈출한 망명이민자다. 프로리다의 연방상원의원이면서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마르코 루비오‘도 쿠바 망명이민자의 아들이다. 모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노력하는 쿠바인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울 정도다. 주류 언론들은 정치력이 막강한 이민자 구룹들로 가장 대표적인 이민자 구룹을 유태계로 지적하면서 반드시 그 수준으로 쿠바출신 망명이민자들을 언급하기도 한다.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오바마대통령은 2012년 재선에 성공한 직후 적대 국가들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자신의 국정 아젠다를 “크게 생각(Think Big)”하라고 참모(수전 라이스 보좌관)진에 지시했다. 이란, 쿠바, 북한이다. 지난해 6월 캐나다에서 첫 대면을 시작하고 9번째 비밀회동 끝에 국교정상화에 합의했다. 외교전문가 대신에 최측근 보좌관을 협상 대표로 보낸 오바마대통령의 진정성을 받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도 자기의 심복을 협상대표로 보냈다. 간첩 혐의로 미국에 투옥중인 3명의 쿠바인과 쿠바에 갇혀있는 1명의 미국 스파이를 맞교환하면서 하바나와 워싱턴에서 국교정상화에 합의했다고 동시에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추모식 때 카스트로 의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영어로 “ 오바마! 나 카스트로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전문가들은 경쟁적으로 이와 같은 결론을 예상했다. 오바마의 과감한 과거청산 의지가 또 하나의 역사를 기록했다. 시작은 쉽지 않고, 또한 당장에 잃는 것이 많다 할지라도 진실에 기초하려는 지도자의 용단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적으로 규정했던 이란과는 핵협상이 마지막 단계까지 왔고 쿠바와는 국교정상화를 선언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곳은 한반도다. 북한만 유일하게 방치되고 있다. 북한이 대화하고 협상할 상대로 오바마대통령 만큼 과거청산의 의지가 강한 평화주의자는 없다. 북한에 대해 어떠한 전향적 조치가 있을지, 미.북간에도 물밑에선 많이 오고갔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는 것이 필자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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