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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역사에서 배워야

by kace

2001년 9월11일, 미 본토를 공격당한(9.11테러) 미국은 테러를 지원하는 배후 세력으로 이라크를 지목했다. 알카에다의 은둔지인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 시킨 다음의 순서는 바로 이라크였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든 아니든,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가 있든 아니던 간에 관계없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부시 대통령의 제거대상이었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무장해제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분은 이라크가 보유한 대량살상무기. 핵무기 개발. 탄저균 살포 의 위험을 들었다. 더구나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후세인이 숨겨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분위기로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철전지 원수였다. < 후에 후세인이 미군들에게 발견되었을 당시 그의 목표는 오직 생존이었음이 확인되었다 > 사실, 사담 후세인은 부시대통령이 전쟁을 결심할 정도의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관련해서 필자의 이해로는 후세인이 동맹군 병사 단 한사람의 목숨과도 바꿀 값어치가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후세인은 전쟁을 통하지 않았어도 무너졌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

2003년 1월.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미국의 결정이 거의 임박했을 때였다. 후세인의 정보기관은 레바논 계 미국인 사업가인 이마드 하게(Imad Hage)씨를 미국에 파견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미국의 요구조건을 다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백악관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마드 하게가 미국으로 갖고 온 보따리엔 세 가지 내용이 들어있었다. 첫째, 이라크 내에 숨겨진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미국의 무기전문가 뿐만 아니라 2,000명의 FBI 요원들을 받아들이겠다. 둘째, 유엔의 감시 하에 선거를 치르겠다. 셋째, 1993년 국제무역센터를 공격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원을 미국에 넘기겠다. 그러나 이 제안이 백악관에 전달되었을 때엔 이미 부시 행정부의 전쟁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중동지역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었던 ‘폴 빌라’의 말에 따르면 정보는 이미 결정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용되었다라고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케네디 대통령은 전쟁위기를 넘긴 모범적인 예다. 케네디는 사실과 증거만을 갖고서 판단을 했다. 백악관 참모들, 군사지도자들로부터 쿠바에 있는 소련의 군사기지를 폭격하자는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 그는 진격 명령을 내리기를 거부했다. 미군의 정찰기가 격추된 후에 CIA국장인 ‘존 맥콘’과 부통령인 “린든 존슨”이 행동에 나설 것을 애원했으나 그는 여전히 소련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핵전쟁이며 그것은 미국과 인류를 파멸로 이끌 것이란 생각이었다. 케네디는 소련의 지도자를 지목했고 결국에 후르시쵸프와 협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케네디는 플로리다에서 14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미사일 기지로부터 수천 기의 핵미사일을 철수시킬 수 있었고 인류를 핵 위험으로부터 구출하게 되었다. 만약 미국이 폭격을 실시했다면 소련은 미사일을 발사했을 것이라는 증거가 고르바초프의 임기 중에 공개되었다. 전쟁을 막아낸 가장 모범적인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꼽히고 있다. 십자군의 지도자처럼 보여 졌던 ‘도널드 레이건’대통령도 전쟁을 막았다. 그도 대통령 초기엔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습관처럼 불렀다. 레이건은 영국의 대처 수상으로부터 고르바초프가 거래를 할 만한 인물이라고 소개를 받고 생각을 바꾸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군비철폐 조약에 최초로 서명했고 레이건은 그 후 다시는 소련을 악마라 부르지 않았다. 정상 간의 작은 신뢰가 결국엔 평화적인 방안을 창출케 했다.

이집트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휴전이 성사되었다. 본격적인 평화협상은 아니더라도 총성이 멈추었다는 것 자체가 미국에겐 숨 돌릴 여유라 할 수 있지만 더 큰 불이 활활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의 수니파 무장 세력의 이슬람국가(IS)의 반란이 그것이다. 전쟁 후에 이라크의 민주정부를 구성했다곤 했지만 종파적인 증오심은 더욱 불타올랐다. 전후 미국대사 ‘잘메이 칼릴자드(Zalmay Khalilzad)'가 시아파를 총리로 내세운 데서 더 큰 증오가 불 타 올랐다. 수니파는 시아파의 성지를 폭파했고 시아파는 수니파의 사원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지난 19일 수니파 이슬람국가(IS)는 미국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를 처형하는 동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미국의 역할은 어디에고 제한적이다. 미국이 해결 못하는 저들끼리의 종파전쟁이 그것이다. “만약 우리가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 죽고 죽이는 행위를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라는 중동지역의 미국대사들의 합창이다. 중동의 전쟁, 역사의 흐름 말고는 과연 해결책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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