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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all Overcome : 우리 승리 하리라 -김동석

by kace

2008년 1월26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날이다. 민주당에서 흑인을 대통령 후보로 내 세우는가 마는가를 결정지우는 아주 중요한 예비선거일이다. 미국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항구 “찰스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를 실어 온 배가 정착하던 소위 “노예항”이다. 선주는 배에서 내린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흑인노예들을 도시한복판의 장터에 말뚝에 매어 놓고 백인 농장주들과 노예가격을 흥정했다. 아직도 말뚝이 박혀있는 그 노예장터에 1월26일 새벽부터 사람(흑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바마캠프의 캠페인 담당자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흑인이 아닌 사람은 필자처럼 선거활동가들 뿐이고 모두가 흑인이었다. 겨울 새벽이니 아직 캄캄했다. 어디서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개신교 찬송가에 나오는 “우리 승리 하리라”란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다. 신나게 부르는 것이 아니고 꿈속에서 흥얼거리듯이 반복해서 부르는 제창이다. ( 필자도 잘 아는 노래여서 영문도 모르지만 따라 불렀다 )대통령후보인 오바마가 온 것이 아니고 그의 부인인 미셸이 노예를 묶어 놓고 흥정하던 연단에 올랐다. 소리 없이 꺼이꺼이 울먹이면서 그녀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운집한 2만여 명의 흑인들이 억지로 울움을 참으면서 부르는 노래 소리는 꼭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듣는 듯 했다. 모드가 울움 석인 소리로 “우리 승리 하리라”를 불렀다. 미셸 오바마는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왔어요 여러분 정말이에요 ..” 미셸의 연설은 그냥 칭얼거리며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필자도 흘러내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Fox뉴스 기자도 CNN카메라의 마이크를 잡고 있는 앵커도 맨 땅에 주저앉은 채 그냥 울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 We Shall Overcome : 우리 승리 하리라”다. 교회에서 흔히 불렀던 이 노래가 이렇게 감동적이고 은혜가 깊은 노래인줄 미처 몰랐었다.

1963년 8월28일 오전,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는 20만 명 이상의 군중이 모였다. 링컨의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이해서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다. 1,514대의 버스와 21편의 열차가 동원됐지만, 거의 대부분은 가난한 흑인들이 자신들의 대표와 함께 몇 일 몇 밤을 걸쳐서 고향으로부터 걸어서 행진을 해 왔다. 이른바 시민권리행진(Civil Right Rally)을 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킹 목사가 연단에 올라서 “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킹 목사는 스스로 감격에 겨워 소리가 점점 커졌다. ‘ 언젠가는 앨라배마에서 작은 흑인 소년 소녀가, 잓은 백인 소년 소녀와 형제자매가 되어 함께 손을 잡게 되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골짜기가 높아지고 모든 언덕과 산이 낮아지는 꿈이 있습니다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비뚤어진 곳은 곧바로 펴지는 꿈이 있습니다 신의 영광이 나타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이 그 영광을 함께 보는 꿈이 있습니다. “ …청중이 환성을 지르면서 그의 목소리의 리듬을 따라서 어깨와 몸을 움직였다. 킹 목사의 연설이 끝나자 행진에 참가한 가수들이 등장했다. 청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밥 딜런], [존 바에즈], [피터 폴 엔 메리],[해리 벨라폰테], [마할리아 잭슨]..등등 쟁쟁한 가수들이 그들이다. 밥 딜런과 피터 폴 엔 메리의 뒤를 이어서 ”존 바에즈“가 등장해서 노래를 불렀다. 20만 명의 군중이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찬송가 < We Shall Overcome : 우리 승리하리라 >다. 20만 명의 합창에 워싱턴이 들썩 거렸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의 주제가는 바로 이 ”우리 승리 하리라 “로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워싱턴 대행진 이후 이듬해 소위 ’자유의 여름‘으로 불리는 프리덤 라이드(Freedom Ride)운동의 노래도, 케네디를 이은 존슨대통령의 ’민권법‘서명에도 ”우리 승리하리라“가 반드시 따라 다녔다. 1965년도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렇게 목놓아 부르던 ” We Shall Overcome “은 실현되었다.

50년 전, 워싱턴 대행진의 주제가이자 피날레였던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 하리라”는 그 이후로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민권가요가 되었다. 문화 평론가들은 이 노래를 ” 미국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노래, 미국 전역을 청소하듯 휩쓸고 지나간 노래:라고 평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대학에 들어갔다. 당시 대학의 캠퍼스 저항가요로 “우리 승리하리라 !”가 유행했다. 가는 곳 마다 이 노래였다. 어릴 적 교회에서 복음성가로 배운 노래를 철이 들어서도 계속해서 의미 있게 부르면서 다니고 심지어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군중들 틈바구니에서도 불렀으니 하나님이 주신 노래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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