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other Attempt to Deny Japan’s History >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임에도 그들은 사죄하지 않았다. 사죄는커녕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피해자들의 외침(증언)에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일본군강제동원위안부’란 문제는 인권. 여성. 평화의 중첩된 이슈다. 전쟁(평화)중에 여성이기 때문에 더 참혹하게 인권이 유린 된 인간세상에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나섰다. 1999년에 캘리포니아 주의 의회에서 결의안을 제정했다. 그리고 워싱턴의 연방의회에서 10여 년 동안 추진을 했지만 전체회의의 문턱에서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연방의회는 달랐다. 일본의 막강한 저지 로비가 버티고 있었다. 

2006년엔 위안부결의안이 해당 상임위원회인 외교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지만 하원 전체회의 문턱에서 대기하다가 회기가 끝나는 바람에 폐기되고 말았다. 연방의회에서의 결의안 통과는 불가하다는 여론이 확산되었고 분위기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뉴욕의 시민참여센타(당시 한인유권자센타)가 바로 이때에 이것을 추진하기로 결심했다. 199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이 결의안을 통과시킨 ‘마이크 혼다’의원과 의기투합했다. 철저하게 풀뿌리(캠페인)방식으로 의원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피해자할머니들의 직접증언이다. 참혹한 피해사례를 언론을 통해서 생생하게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2007년 2월15일, 그 유명한 하원외교위원회에서의 청문회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 두 분의 (피해자)할머니를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백인(피해자)할머니 한분을 모셨다. 이 청문회가 연방의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고발이 시민사회를 움직였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갖고서 주류언론을 접촉했다. 주류사회의 신문이나 (TV)방송사에 일본기업이 아무리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도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막을 수 없었다.   2007년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연방의회에 상정시켰다.  2월1일, 의회 사무처로부터 결의안 번호 121번을 받았다. 그래서 보통 [하원결의안 121]이라한다. 미디어에 알리기 위해서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2월15일 청문회를 개최하고 난 직후부터 우리는 두 가지 일에 총력을 폈다. (전국적인)서명운동과 미디어 홍보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만행에 관한, 특히 ‘일본군강제동원위안부’관련한 역사적인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최대한 모아서 언론에 쏟아 부었다. 뉴욕타임즈, LA타임즈, 워싱턴포스트지 에는 직접 자료를 챙겨들고서 데스크를 찾아다녔다. 최대한 기사를 쓰기에 편리하게 자료를 모아서 정리했다.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에서의 청문회를 개최한 것이기 때문에 이슈는 널리 알려진 상태였으니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서 사실관계만 입증하면 기사로 나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3개 신문에 기사가 나가도록 하기위해서 거의 10여명이 달라붙었다. 신문사 데스크를 직접 찾아다닌 지, 한 달 만에 반응이 왔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3월6일자 뉴욕타임즈에 “No Comfort”란 제목으로 사설로 냈다. 이를 필두로 LA 타임즈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지에 사설로 이 이슈가 다루어졌다.  “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은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라고 세계 제3대 신문에서 연달아 사설로 취급을 하니까 작동이 빨랐다. 결의안 채택에 동의하는 의원이 불과 일주일 사이에 100여명으로 늘었다.

필자가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때가 바로 이때였다. 미디어의 위력을 특히, 권위 있는 신문의 사설이 갖는 힘이란 것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금을 통해서)유력한 신문에 유료광고를 내 봤지만 목표로 한 연방의원들은 고사하고 일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광고가 아닌 사실기사나, 특히 뉴욕타임즈의 사설이 갖는 위력(영향력)은 정말로 대단했다. 전 세계의 언론이 연달아서 뉴욕타임즈를 인용해서 기사로, 또한 사설로 이 문제를 다루었고, 이때부터 국제사회의 인권관련 최대이슈가 되었다.

지난 1월3일자 뉴욕타임즈는 “일본의 역사를 부정하는 또 다른 시도 : Another Attempt to Deny Japan’s History”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과거사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낸 내용이다.  뉴욕타임즈는 ‘ 아시아의 안정에 한일 관계만큼 중요한 건 없다’며 ‘ 아베 총리가 한국과 긴장을 야기하고 협력관계를 어렵게 만들 중대한 실수(Serious Mistake)로 임기를 시작하려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즈는 극우 국수주의자인 아베 총리가 한국과 다른 나라 여성을 ‘성 노예’로 강요한 것을 포함해 2차 세계대전 당시 행위를 사과한 1993년 고노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한 새로운 담화를 발표할 방침을 최근 밝혔다고 소개했다. 뉴욕타임즈는 ‘범죄(Crimes)를 부정하고 사과를 희석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잔혹한 일본의 전시 지배로 고통 받은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의 분노를 촉발할 것이며, 아베의 이러한 수치스러운 충동(Shameful Impulses)은 북한 핵문제 등 지역 이슈에서 중요한 한미일의 협력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7년 3월6일자 ” No Comfort “란 제목의 사설이후에 가장 준엄하고 심각하게 일본의 역사왜곡을 꾸짖은 사설이다.

동북아시아의 각 국가 간 역사 갈등과  영토분쟁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격화되는 양상이다.  2007년,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미연방의회에서 채택된 이후에 일본은 6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다. 전범권력인 자민당이 무너지고 민주당이 집권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부상한 중국과의 영토분쟁이 일본국민들의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자극시켰다. 과거사를 왜곡하고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자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퇴출당했던 극우의 ‘신조 아베’가 다시 총리가 되었다. 

미국의 등에 무임승차해서 세계적인 지도국가의 행세를 해 온 일본의 우파정치세력이 다시 미국과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2007년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이후의 만 5년을 신조 아베 총리는 ‘미국과의 잃어버린 5년’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총리직 복귀 첫 일성이 “잃어버린 5년을 되찾겠다!”였다.  그래서 지금 워싱턴엔 일본로비가 다시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일본커뮤니티를 돌면서 중국인, 한국(동포)인들을 예로 들면서 저들의 풀뿌리 운동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사이’를 비롯한 일본 미디어들이 시민참여센타의 대 의회 활동방식을 인터뷰해 가기도 했다. ‘독도를 다케시마로!’란 캠페인엔 미국 내 일본기업들이 더 난리다(한국기업들은 과연 미국에 있는지 없는지를 모를 정도다). 미국의 여론을 움직여서 미국의 입장을 그렇게 규정하려는 시도다.

이와 같은 일본의 어떠한 시도도 한일간의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한. 미. 일 3개국 간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면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가 깨지게 되고 그러면 미국이 굉장한 어려움이 처하게 된다. 뉴욕타임즈가 일본의 ‘신조 아베’ 총리의 역사관을 문제 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2007년,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뉴욕타임즈에서 주요 이슈로 다루도록 한 시민참여센타(당시 유권자센타)의 성과는 지금에 와서 더욱 빛나고 있다. ‘일본군강제동원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 간의 논쟁이슈가 아니고 역사의 진실 찾기, 그리고 인권문제로 집요하게 제기한 것이 주효했다. 2013년 1월3일자 뉴욕타임즈의 주장. 역시 활동가들의 올바른 전략과 헌신적인 발품에 의해서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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