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종교전쟁은 이슬람에 대항한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이나 개신교와 맞선 구교의 30년 전쟁이 아니라 20세기에 발생한 이슬람교도와 힌두교 사이의 전쟁이었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그들 사이의 갈등은 비교적 잠잠했다. 그러나 이 두 종교는 식민 지배자들 보다도 서로 상대 종교를 더 두려워하면서 힌두교도는 마하트마 간디의 아래에서 , 이슬람교도는 무하마드 알리 진나의 지휘하에 각각 영국에 대항해 독립 투쟁을 전개했다. 해방의 시기가 임박하자 이슬람교도들은 식민지 인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과는 따로 자주권을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1947년 영국으로부터 정권이 이양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두 개의 국가가 탄생했다. 영국이 철수한 직후부터 두 신생국은 서로 격렬한 적대관계가 되었다. 파키스탄에 살고 있던 힌두교도들이 공퐁 질려 인도로 도망했고 또 인도에 살고 있던 수백만 명의 이슬람교도들 또한 도피처를 찾아 파키스탄으로 갔다. 역사상 가장 큰 인구의 이동이었다. 이 두 종교는 사실상 어떤 면에서도 일치하는 점이 없고 설 이단시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상대방을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되는 존재로 생각한다. 이 적대적인 두 종교가 주권국가로 나타나게 됨으로써 갈등이 훨씬 심화되었다. 1962년 중국과 인도 사이에 국경분쟁으로 인한 전쟁이 발발하자 파키스탄은 신속하게 중국 쪽으로 기울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돈독해졌다. 이러한 와중에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소련이 인도와의 유대 강화를 위해서 접근했다. 한편 공산주의 확산을 두려워 한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원조를 대폭 확대했지만 사실상 두 나라는 공산주의에 대항한 것이 아니고 서로 상대와 맞서기 위한 군사력 강화에 열을 올렸다. 힌드교와 이슬람교간의 전투력 경쟁이다.

마하트마 간디와 무하마드 알리 진나

마하트마 간디와 무하마드 알리 진나

1974년 인도는 강력한 핵폭탄을 폭파함으로써 세계 핵클럽의 회원이 되었다. 간디 수상이 순수한 방어 목적과 평화적 목적으로 핵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키스탄이 인도의 핵 화약고에 대응한 긴급 계획에 착수했다. 이후 20여 년 동안 양국은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침략행위를 통해 자국의 군사력을 시험하면서 조용하게 핵개발 계획을 추진했다. 인도가 1998년 5월에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 파키스탄도 즉시 핵실험에 돌입했다. 국제사회는 50여 년 동안의 분쟁이 지극히 위험스런 수준으로 새롭게 발전하고 있음을 지켜봐야 했다. 중국은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지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민들은 제각각 이를 환영했다. 핵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도취감에 취한 양국가의 군중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그들 국가의 자존심을 회복해준 정부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미국의 울부라이트 국무장관은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미국이 양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려들자 미국이 핵무기 통제를 위해 위선을 저지르고 있다고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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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벌어진 핵 경쟁 게임은 인도 대륙을 잠재적인 핵전쟁의 위험에 놓이게 했다. 뿐만 아니라 핵을 보유한 국가들에 대한 정책에 중대한 반향을 불러왔다. 지구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었다. 2006년 뉴델리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인도으 핵에 대해서 인도가 단 한 번도 핵 확산을 시도한 적이 없으며 인도의 지속적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은 중국과의 균형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폈다. 2006년 11월 미국의 상원은 인도의 핵 계획에 대해 별다른 반대 없이 승인 했다. 파키스탄 역시 덩달아서 핵을 용인 받게 되었다. 세계의 핵 보유국이 5개국에서 7개국으로 늘어났다.

NPT(핵확산금지조약)는 1970년 3월에 발효한 것으로 핵무기 보유국의 수를 늘리지 않음으로써,핵전쟁의 위험성을 적게 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다. 핵 확산 금지 조약(NPT)에서 인정하는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화인민공화국 5개국이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은 1974년과 1998년 각각 핵실험까지 하였고 이스라엘은 비록 핵실험은 실시하지 않았으나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사실상 인식되고 있다. 2006년 4월 11일 이란이 자국을 핵 클럽 국가로 선언하였으며,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핵무기 실험에 성공했지만 핵보유 국가의 지위를 줄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 중심의 NPT에서는 이를 애써 무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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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한.미.일은 물론이고 중국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일 제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 같은 초강수는 장.단기 전략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핵무기 보유를 통해 한국에 비해 엄청난 비대칭 위협무기를 갖게 되는 한편 중장기적으론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미.북간 평화협정을 체결해 나아가려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북한을 2006년, 2009년, 그리고 이번의 3차 핵실험을 통해서 “사실상(de facto)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하게 될 것이란 예측을 인도나 파키스탄의 예를 들어서 조심스럽게 언급하기도 한다. 물론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는 북한의 핵 능력 여부와는 별개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척 헤이글 국방장관 지명자가 북한을 ‘ 실질적인 핵 파워’라고 지칭했다.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어쩌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명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든 안 받든 대미 협상력이 그만큼 강력해진다는 의미다. 북한은 핵무기를 내세워 미.북 직접 대화를 통해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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