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계에서 중국으로서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역사적인 분노가 있다. 중국 전 인민의 자존심인 국가 주석이 워싱턴에서 용납될 수 없는 푸대접을 받은 사건이다.  2006년 늦은 봄,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방문 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위한 미국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다.(중국에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은 등소평의 개혁.개방 노선을 1차 마무리하는 정치노선과도 맞물린 일 이었다)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부시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을 비롯해서…)없이는 베이징 올림픽 자체가 흔들릴 여지가 있기 때문에 후진타오 주석이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 직접 워싱턴으로 날아간 것이다. 당시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테러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은 중동의 이슬람국가들과 중국과의 관계에 늘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워싱턴에 도착한 후진타오 일행이 숙소로 지정해 준 ‘블레어 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블레어 하우스’로 몰려온 티벳계, 대만계의 항의 시위대를 미국 경찰이 저지하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과격시위대는 3박4일 동안 밤낮 없이 소란을 피워댔다. 후진타오 주석은 워싱턴체류 3일 동안 침대에도 눕지 않고 이를 악물고 견뎠다고 한다. 백악관은 후진타오 주석을 환영하는 공식 만찬 개최를 거부했으며 백악관에서 열린 도착 행사에서 중국의 국가가 중화민국(대만)의 국가로 잘못 언급되는 실수가 저질러졌다. 환영 인파에 대한 후진타오의 공식적 답사는 백악관 경찰이 야유꾼들을 몰아내는 데에 늑장을 부려서 불쾌할 정도로 방해를 받았다. 후진타오를 위한 워싱턴의 비공식 만찬에서도 전통적 순서인 국가 연주나 의장 사열이 제외 되었다. 중국의 문화에서 “체면”은 아주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무례한 행위에 후진타오 주석이 얼마나 이를 갈았겠는가 짐작이 간다. 등소평의 충실한 후계자인 후진타오가 등소평이 죽어가면서 당부한 60년간의 도광양회(칼날을 숨기고 힘을 기른다)를 20여년 앞당겨서 화평굴기(평화롭게 강대국으로 나선다)로 나선 것에 충분히 짐작이 간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흥망성쇠는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의 구조변화를 초래했고 구조의 변화는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을 초래했다. 국제질서의 불안정은 곧바로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1895년 일본과 중국 사이의 청일전쟁, 1904년 일본과 러시아간의 러일전쟁, 1930년대 중국과 일본간 중일전쟁, 그리고 이들 전쟁의 확대판인 태평양전쟁(2차대전),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등은 모두가 동북아시아에 집결되어 있는 강대국들이 주기적으로 벌렸던 갈등의 표출이었다.  일본이 급부상하던 시절, 또는 중국이 몰락하던 시절은 동아시아에 긴장과 분쟁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시점과 일치한다. 1950년의 한국전쟁도 1949년 중국이 공산국가를 건설해서 아편전쟁에서 패했던 시점 이후 100년의 치욕에서 막 벗어나던 시점과 일치하는 때에 일어났다. 한반도에 일본과 미국의 연합세력이 들어서는 것을 더구나 공산당의 중국이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한국전쟁에 중공군의 개입은 국제정세 상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1.2.3 이다. 

 

 2013년의 시점에서 동북아시아가 대단히 시끄러워지고 있다. 이것은 동북아시아의 힘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우선,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다. 중국의 부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지만 중국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중국의 부상은 군사적, 경제적 부상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 동아시아에서 국제정치 구조를 불안하게 만드는 최대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년 평균 약 9%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년 평균 15%가 넘는 수준으로 군사비를 증강시켜 왔다. 반면에 중국에 대응하는 일본과 미국은 어떤가? 지난 20년 동안 일본은 지속적으로 경기 침체의 몸살을 앓아 왔다. 2008년 월스트릿발 금융위기에서 촉발한 심각한 경제문제와 테러전쟁으로 인하여 중동지역에 몰입되어 온 안보불안의 미국의 처지를 고려하면 동아시아에서 야기되고 있는 국제 갈등의 본질과 원인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중국은 국력이 성장함에 따라 과거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민족주의적 입장을 강화시키고 있다. 또한 독재(공산주의)국가의 속성상 대외적인 문제에 에너지를 방출시킴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할 필요도 있다. 자국의 힘이 계속해서 강해진다고 인식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힘이 쇠퇴하고 있다고 상정하고 중국 주변의 작은 국가들에게 대단히도 고압적인 외교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 갈등의 직접적 원인은 아직 어느 나라 영토인지가 확실하게 결정되지 못한 수많은 섬들에 대한 영유권 문제다. 중국이 한국과는 이어도에서, 필리핀과는 스카보로(중국명으론 황옌다오)섬에서, 베트남과는 시샤군도에서,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난샤군도의 작은 섬들을 둘러싼 갈등을 벌리고 있다. 중국은 중국 부근의 동지나해 남지나해의 모든 바다를 중국의 바다로 선언했다. 당연히 그 바다위의 섬들을 중국령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에 비해서는 중국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중국은 한국을 자신과 동급의 나라로 생각한 적이 없는 나라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 중국은 근세 이후 일본에게 치욕적으로 당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복수심을 불태우는 모습조차 드러낸다. 최근에 들어서 ‘센카쿠/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분쟁에서 중국의 대중들이 보여준 태도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부 중국인들은 핵폭탄으로 일본을 공격하자는 극언도 서슴치 않는다. 심지어는 아직 일본의 해군력을 당할 수 없는 중국의 군부조차 영토분쟁인 센카쿠 섬을 무력으로 탈환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역사논쟁까지 안 가더라도 당장에 제 땅, 제 바다, 제 하늘이라고 주장하면서 인정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을 포함한 중국이 한국을 향해서 그렇다.  격화되는 영토분쟁이 크게 전쟁의 빌미로까지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국의 ‘조 바이든’ 부통령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을 달래면서 일본에겐 좀 참으라고 했다. 일본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 들러서 “ 한국은 미국에 배팅을 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에 배팅을 하는데…”라고 했다. 일본과 함께 미국편을 들라는 경고다.  미국 시민인 미주한인에게 쉽게 들리는 어려운 질문이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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