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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미국대선] ‘밋 롬니’의 클린턴 배우기 – 김동석

by k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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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정치 체제는 두 개의 정당이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를 적절히 당 내에 흡수하여 해소하는 양당제를 기본으로 한다. 이를테면 기업가들이 요구하는 자유로운 자본축적과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고용 안정과 임금인상을 당 정책에 함께 담아내야한다.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들의 차별시정과 백인들의 기득권 유지 요구를 한 정당 내에서 소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민사회에 형성된 계층이 서로 상반되는 요구를 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한 정당 안에서 양 계층을 동시에 충족시킬 정책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큰 틀 안에서 양당은 노동자와 기업을 대변하는 역할로, 그리고 사회적으론 백인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쪽과 유색인종의 지위를 향상 시키는 쪽으로 나뉘어졌다. 적어도 1980년대 초반까지는 이러한 틀로 양당이 나뉘어져 왔다.


 그런데 1980년 이후, 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노동계층의 분화로 사회계층간 이익관계에 큰 변화가 왔다. 인종적 측면에서 백인들의 기득권이 거의 사라졌고(적어도 구조와 제도적으로는), 금융과 정보산업의 확충으로 시장의 작동원리가 바뀌었고 노동자의 개념이 달라졌다. 각 당이 고수해 오던 이념과 정책의 지지기반이 달라졌고 복잡하게 변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간파해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백악관에 입성한 사람이 클린턴대통령이다.


클린턴은 여론조사 컨설팅 분야에서 최고의 대가로 평가받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마케팅담당 책임자인 ‘마크 펜’을 선거운동 책임자로 영입했다. < 클린턴은 8년 재임기간 동안 거의 모든 정책결정을 마크 펜의 여론조사에 의존했다 >.  ‘마크 펜’의 여론조사 기법은 클린턴으로 하여금 1990년대 대중들의 삶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세밀한 이해를 갖게 했다. 클린턴은 놀라울 정도의 감각으로 변화의 물결을 선점했다. 확장된 대중들의 커뮤니케이션의 공동체를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더 나은 사회적 재생산 공간의 창출을 역설했고 더 많은 여가시간을 통한 자아성취, 긍정의 정치, 국제 시민사회를 향한 대중들의 욕망을 적절하게 자극했다. 클린턴은 모든 정책결정을 여론조사의 결과에 의존했다. 대중들의 변화하는 욕망과 기호를 감지하는 데에 민감했다. 그는 중도주의적 유권자의 강세를 확인하고 거기에 자기의 자리를 만들었다. 사회의 도덕적 분위기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섹스 스캔들 등으로 강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8년 집권동안 “ 쿨 한 대통령”으로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직접 공감하는 경험과 가치를 국정 아젠다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구분 않고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대중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다.  이러한 방식으로 클린턴은 무당파 중도주의 유권자를 아군화 했다. 미국의 유권자는 35%가 민주당이고 25%가 공화당이다. 그리고 나머지 40%는 당의 울타리를 넘다들며 자기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고르는 중도파의 무당적 유권자다. 양당간 10%의 차이가 있지만 투표 참여율은 공화당이 훨씬 높다. 때문에 백악관입성은 중도파의 표를 가져오는 것이 관건이다.


공화당 예비경선이 중반전에 돌입했다. 중. 남부의 전통 보수주의 세력이 ‘뉴트 깅그리치’를 위해서 똘똘 뭉친다 해도, 예비경선이 언제 끝나는가의 문제이지 ‘미트 롬니’의 대세론을 뒤집지는 못할 것 같다. 예비경선이 예상보다 오르락내리락 해도 롬니가 중도주의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의 목표는 공화당후보가 아니고 오바마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결국에 오바마를 이기고 백악관을 차지하려면 클린턴이 구사했던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이다. 공화당이고 민주당이고가 아니고 유권자가 선호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방식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클린턴을 배우려는 ‘미트 롬니’가 “ 어설픈 신자유주의자가 되고 있다 ”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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