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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래들리’와 최준희의 선거 – 김동석

by k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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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대통령선거 예비경선이 시작되면서 민주당경선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클린턴휘하에서 만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가 민주당후보가 된다는 것에 다른 의견을 내는 언론은 한곳도 없었다. ‘앨 고어’는 해박한 지식과 정리된 언변으로 만 8년 동안 권부의 중심에서 최고급 정치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더구나 클린턴대통령이 기회만 있으면 자신을 세기와 세기를 연결하는 브릿지 대통령임을 자임했기 때문에 ‘앨 고어’후보는 21세기를 여는 새로운 지도자의 ‘평화와 환경’의 리더쉽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부통령의 8년 동안 그렇게 목표를 정하고 차기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경선이 시작되면서 ‘앨 고어’의 엘리트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는 철학의 정치인이 나왔다.  뉴저지출신으로 30년간 상원의원을 지낸 ‘빌 브래들리’가 후보경선에 뛰어 들었다. 그는 앨 고어가 내 세운 ‘지식과 야망’에 대신해서 ‘철학과 영혼’을 이야기 했다. 냉전 해체 후 클린턴정치 8년은 방향을 잃었다고 주장하며 민주당의 철학을 주창했다.  주류의 엘리트정치를 표방한 ‘앨 고어’에 대응해서 소수계의 철학과 서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젠다를 만들어 냈다.  ‘브래들리 바람’이 일어났고 소액의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앨 고어’ 중심의 민주당 주류가 당황했다. 

 

지지세가 앞서는 브래들리는 신이 났다. 부자연스럽고 딱딱한 고어의 대중연설에 비해서 브래들리의 나긋나긋 하지만 신념에 찬 말솜씨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치인으로의 진출을 희망하는 소수계 인재들이 자원봉사 선거운동원으로 브래들리 주변에 모여들었다. 뉴욕도시권의 아시안계 인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스톤(MIT)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콜롬비아대학교에서 공공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막 끝낸 ‘최준희’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브래들리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아예 훌 타임 선거요원으로 브래들리의 전국유세를 따라 나섰다.

 

당시 브래들리 바람은 민주당개혁의 불씨가 되었으며 그 다음 선거인 2004년엔 그 바통을 ‘ 하워드 딘’에게 넘겼으며 결국엔 2008년 바락 오바마‘가 백악관 입성에 성공을 하게 된다. 일반 시민들에겐 농구스타 뉴욕닉스의 전설로 더 유명하지만 필자에겐 철학과 영혼의 정치인이고 최준희씨의 정치스승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 27일 맨하탄에 브래들리군단 사람들 50여명이 모였다. 최준희의 선거운동을 위해서다. 민주당 정치개혁의 영웅이며, 일찌감치 흑인대통령의 길을 닦아 놓았던 ‘빌 브래들리’가 연방의원에 도전한 최준희의 선거운동 전면에 등장했다.  최준희의 2배장신인 브래들리가 50여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서 “ 내년도 연방의원 선거에서 최준희의 당선을 책임지자…! ”라고 말하면서 그는 “ 최준희의 연방하원 도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 최준희는 경찰이 은행을 털고 선생이 학생만큼의 실력도 못되는 부패하고 무능한 에디슨시를 단 4년 만에 정상으로 바꾸었다 ’고 최준희의 정치적인 지도력을 치켜세웠다.  아내와 양가 부모를 대동하고 나온 최준희의 자신감을 보면서 드디어 동부지역엔 최초의 아시안 연방의원을 한국인이 차지하겠구나 ! 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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