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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자체 연재 15 –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 정보연

by kace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로체스터시는 뉴욕주 북부의 주요 도시이다. 5대호의 하나인 온타리오호(Lake of Ontario)에 접한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1990년대 이후 도시의 생존과 관련된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다.
아래 표1에서 보듯 1970년 이후 로체스터시의 인구는 줄곧 줄어 2003년에는 1970년 대비 28%가 감소했다. 반면 로체스터시와 그 주변을 포함한 전체 도시권은(Metro Rochester)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었다. 로체스터시에서 빠져나간 주민들이 도시 주변의 교외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표1 : City라고 써있는 부분은 로체스터시의 인구 변화이고, MSA라고 써있는 부분은 로체스터시를 포함한 전체 도시권의(Metro Rochester) 인구 변화이다. 마지막 칼럼은 전체 도시권에서 로체스터시가 차지하는 인구비율의 추이다.  

인구만 줄어든 것이라면 “도시의 생존과 관련된 중대한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표2는 로체스터시의 빈곤문제와 관련된 통계이다.
1969년부터 1999년까지 30년 동안 로체스터시의 빈곤율은 두배, 실업율은 2.3배로 뛰었다. 중산층의 소득변화는 좀 더 적나라한 상황을 보여준다. 1969년 로체스터시의 중산층 평균소득은 $33,365이었는데(1999년 달러가치로 환산) 1999년에는 $27,123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도시의 중산층 평균소득이 $43,180에서 $44,014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소득액수에서나(전체 도시 평균의 62% 수준) 감소추세에서나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같은 기간 로체스터 전체 도시권은(Metro Rochester) 1969년의 평균 소득을 유지했으며 빈곤율이나 실업율도 미국 도시의 평균 수준이라는 점이다. 인구의 변화도 그렇고 빈곤율의 변화도 그렇고 로체스터시는 급격히 쇠락하고 있는 반면 주변 도시권은 인구가 늘거나 평균 소득을 유지했다.
전형적인 도시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체스터시의 곳곳에서 빈집이 생겨나고, 부랑자가 늘어나고, 범죄율도 높아졌다.


표2 : 첫 칼럼은 로체스터시와(City라고 써있는 부분) 로체스터시를 포함한 전체 도시권의(MSA라고 써있는 부분) 빈곤율 변화이고, 두번째 칼럼은 1999년 달러로 환산한 중산층의 소득변화이다. 마지막은 30년 동안의 실업율 변화이다.  

당연히 시의 전체적인 경제력도 약해졌다. 로체스터시의 재생을 이끌었던 존슨시장은 언젠가 시정 연설에서 점점 나빠지는 경제 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예를 들어볼까요? 20년 전 우리시는 다운타운의 요지마다 주요 33개의 금융기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단지 한줌이 남았을 뿐입니다.(Today, only a handful is left.)”

이렇게 사람들과 주요 사업체가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남아 있는 주민들은 견디기 힘든 조세부담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1990년대 동안 시는 9억불의 세수를 잃었다.

쉽게 말해 로체스터시는 망해가고 있었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흙 수렁에서 연꽃이 피듯, 최악의 상황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도 한다.
그로부터 10년, 로체스터시는 다시 꽃을 피웠다. 부활의 무기는 “거버넌스”였다.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미래

미국의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08년 10월 컬럼비아대학의 한 교수님은 사석에서 “부모님에게 듣던 그 대공황을(Great Depression) 내가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대공황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렵고 힘든 한 시절이랄까? 한국 사람들이 6.25전쟁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3년 새 GDP가 56%로 감소하고, 실업자가 1,300만명에 달했던 그 어려운 시기를 루즈벨트는 금융에 대한 규제 강화,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요약되는 뉴딜 정책으로 극복했다. 그 이후 루즈벨트의 해법은 하나의 모델이 되었고 사회 전반에서 전통적 자유방임주의가 케인즈적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창조되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 문서에 서명하고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 그러고 보니 루즈벨트 시대는 대공황에, 2차 대전에 큰 일이 참 많았다.  


나사를(NASA)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 그의 시대를 규정하는 두개의 키워드는 “신자유주의”와 “힘의 외교”이다. 그에 대한 최종 평가는 역사의 몫이겠지만 2009년 지금의 상황으로 보자면 그의 두가지 정책은 모두 파산한 것 같다.  

1980년대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미국이 추락하고 있으며, 곧 일본에 추월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태양이 떠오르듯 일본이 부상하고 “미국식”이란 단어가 비효율의 상징이 되어버린 당시의 상황을 풍자한 숀 코너리 주연의 “떠오르는 태양(Rising Sun)”이란 영화도 기억난다.
그 즈음, 미국을 이끌던 제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재정 적자는 속도를 더해 갔으며, 공공서비스의 낮은 질에 실망한 국민들은 곳곳에서 조세저항운동을 벌였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주민이 스스로 발의한 “재산세 제한을 위한 주민구상”이(일명 주민발의안 13호) 주민투표에서 통과되면서 지방정부의 재산세 수입이 57% 감소되기도 했다.
레이건은 “아홉 단어로 된 영어 중 가장 끔찍한 말은 ‘정부에서 당신을 도와주러 나왔소.(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 이다.”라고 비아냥대며 정부 기구와 사회복지를 축소했고, 금융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하는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처방을 내어 놓았다. 그렇게 지난 30년 미국은 번영을 구가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여하간 그가 하나의 세상을 연 것만은 분명하다.

루즈벨트와 레이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2007년 갤럽조사에 의하면 가장 존경하는 미국 대통령으로 루즈벨트 1위, 레이건 3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또 하나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작년 말 대담한 변화를 이야기하는 젊은 대통령을 선택했다. 미국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또 어떤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필자가 여러분과(이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변화를 원하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진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에 관한 것이다. 한국이 지금 봉착한 것은 어떤 종류의 위기인가? 이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 필자는 왜 로체스터시의 거버넌스 사례를 들고 나왔을까? 거버넌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에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맞닥뜨린 상황

상황1
우리는 1987년,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과 6월의 뜨거운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것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위시하여,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를 통해 한국의 정치적 에너지는 뜨겁게 분출되었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맛보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것이 시들해졌다. 정치에는 감동이 없어졌고, 후보들은 고만고만하고, 선거도 귀찮아졌다. 20대의 선거 참여율은 20%대이다.


2008년 6월의 촛불. 거 참 이상하다. 5분도 안 걸리는 투표는 하지 않으면서 얻어맞고 물대포 맞는 촛불집회에는 나온다. 거기에 뭔가 시대적 함의가 있는 것 아닐까?  

사회의 에너지가 떨어진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2002년 월드컵에서, 2004년 탄핵에서, 2007년 태안에서, 2008년 촛불에서 우리는 시민참여의 역동을 경험했다.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가 정치와 만나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딘가 막혀있다. 국민은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해 답답하고 정치는 에너지가 없어 무기력하다. 1980년대에 우리가 쟁취한 것이 “민주주의 1.0”이라면(정치인을 우리가 직접 뽑는 대의민주주의의 달성), 이제는 “민주주의 2.0”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2

1980년대 전두환대통령 시절,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국가가 처방을 내리면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되고는 했다. 국가는 힘이 셌고 국민은 잘 따랐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단순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10차원 방정식처럼 복잡해졌다. 더 이상 하나의 문제를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마치 모자이크를 맞추듯 다양한 처방을 구상하고, 그 처방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고려하여 얼개를 맞춰도 효과를 보지 못하기 십상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데 국가는 과거처럼 효율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볼까?
과거의 빈곤문제는 밖에 나앉지 않게 하고, 굶지 않게 하는 것 즉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건 비교적 간단했고 국가도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
하지만 지금의 빈곤문제는 복잡하다. 비정규직의 문제이기도 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하며, 외국인노동자라는 새로운 이슈와 관련이 있기도 하다. 더구나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문제를 넘어서서 경제적, 심리적 자활의 문제로 접근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런 복잡한 문제의 해결은 국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시민사회, 지역사회가 가진 다양한 자원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때만 가능하다.
복잡해진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한 상황이다.

상황3

얼마전 한 여성권익을 위해서 활동하는 분으로부터 “Backlash”란(사전적으로는 역회전, 반발을 뜻함) 말을 처음 들었다. 지난 20년 진보적 여성운동 덕분에 한국의 여성문제는 많은 진전을 보았다. 하지만 최근 군가산점 이슈에서 보듯 그 동안 이룬 성과에 대한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있다. 그 여성운동가는 “여성단체가 입법 과정에 적극 개입하면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상당히 진척되었지만, 시민의 삶과 의식을 바꾸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여 이런 지체현상이 발생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제도가 사람을 바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바꾸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87년 민주화를 통해 폭발한 시민사회의 힘이 금융실명제, 선거공영제, 호주제 철폐, 집단소송제, 사법제도 개혁 등 굵직한 제도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제 그런 제도변화가 좀 더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연결될 때가 되었다. 삶의 변화에 기초하지 않은 제도의 변화는 불안하고 또 공허하기 때문이다.

상황4

얼마전 G20 정상회담이 열렸다. G20으로 대표되는 “세계 정치체제”가 그 동안 사실상 어떤 간섭도 받지 않았던 “세계 금융체제”를 규제하는 상징적 조치들이 몇가지 취해졌다.(금융안정위원회 설치, 조세회피처 규제 등) 많은 언론들이 새로운 세계질서의 첫 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나도 그런 조짐을 보았다. 지난 30년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뭐라고 이름 짓건 간에, 그 새로운 시대가 또 30년을 갈 것이다.


G20 정상들이 4월2일 영국 런던에 모였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얄타회담, 리우회담 등을 배우듯 어쩌면 이 런던 회담도 역사가 기억하지 않을까? 평소 “한국의 금융감독위원회 같은 기능을 하는 세계적 금융감독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온 터라 필자에게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가 우파가 고안한 체제였다면 이제 공은 다시 진보로 넘어왔다. 진보가 세상 사람들 앞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구상을 꺼내 보일 때가 되었다. 그것이 구태의연한 과거의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다시 1930년대 루즈벨트 방식을 꺼내 보일 것인가? 그것이 “새로운” 세상인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보주의자인가? 그렇다면 지금 어떤 세상을 구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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