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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자체 연재 13- 작지만 꼭 필요한 구멍 “커뮤니티 보드”

by kace

작지만 꼭 필요한 구멍 “커뮤니티 보드”

2003년 컬럼비아 대학이 “맨하탄빌(Manhattanville) 계획” 일명 “컬럼비아 대학 확장 계획”을 발표한다. 고밀도의 맨하탄에서 부족한 공간 때문에 곤란을 겪던 터라 현재 대학 자리의 위쪽으로 공간을 좀 더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진설명) 맨하탄 커뮤니티 보드 #9의 관할 구역이다. 3개의 동네를 관할하는데 가장 아래가 모닝사이드 하이츠(현재 컬럼비아 대학이 위치한 곳), 중간이 문제의 맨하탄빌, 윗쪽이 해밀턴 하이츠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확장 문제가 어느 정도 일단락된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할렘은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Harlem is not for sale)”라는 벽글씨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계획이 발표되자 지역의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의 의견을 취합해 맨하탄빌 계획의 문제점을 백서로 발표한 프래트센타는(Pratt Center. 커뮤니티 베이스의 도시계획을 연구하는 시민단체) 강제수용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그간의 강제수용이 “거대자본에 의한 소수인종 및 저소득층 삶터 없애기”라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 지적은 많은 공감을 얻게 되었다.

거리에 나선 주민들과 지역단체들…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갈팡질팡 하더니 속속 커뮤니티 보드 #9에 모이기 시작한다. 커뮤니티 보드에는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지역발전계획 수립 권한인 197-a”라는 강력한 비밀 병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a는(시 헌장의 조항 이름이다.) 1975년 커뮤니티 보드가 뒤에서 언급할 ULURP의(Uniform Land Use Review Process. 표준토지이용검토절차) 검토 기관으로 인정될 당시, 시 헌장에(Charter. 지방정부의 헌법이다. 지방정부의 존립 근거이며 보통은 주민투표로 확정된다. 1975년 커뮤니티 보드가 현재의 이름과 역할로 시 헌장에 삽입될 때에도 주민투표를 통해서 최종 결정되었다.) 새로 도입된 제도로서 커뮤니티 보드에게 “주민이 직접 지역발전계획을 만들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진 지역발전계획이 해당 커뮤니티 보드를 통해서 발의되면 ULURP(표준토지이용검토절차)의 일반 절차를 거쳐 검토된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뉴욕시의 공식적인 장기지역발전계획에 포함된다. 거참! 주민이 스스로 자기 삶터의 지역발전계획을 발의하다니. 발상 한번 좋다.  

컬럼비아 대학 확장 계획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커뮤니티 보드 #9에 모여 도시계획 수립 능력을 갖춘 프래트센타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스스로의 지역발전계획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컬럼비아 대학의 계획에 맞서 커뮤니티 중심의 새로운 도시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무기로 싸우기 위해서이다.  

즉 한편에서는 단식도 하고, 컬럼비아 대학의 확장 계획에 따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맨하탄빌의 역사 유적을 탐방하는 “반대하는 운동”을 진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주민의 지혜를 모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사진설명) 컬럼비아 대학의 일방적 확장 계획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컬럼비아 대학은 68혁명 당시 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하기도 했던 강력한 학생운동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드디어 컬럼비아 대학의 공간 확장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지역의 커뮤니티와 조화되는, 강제수용이 배제된 “커뮤니티 지향적인 새로운 도시계획”이 완성된다.

이 계획은 2005년 8월 뉴욕시에 제출되었고 2007년 11월, 드디어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되었다. 그것도 컬럼비아 대학이 제출한 확장 계획과 나란히. 뉴욕의 눈이 서로 다른 두개의 도시계획을 심사하는 도시계획위원회에 집중되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부분은 열린사회시민연합 박희선님의 “도시재생과 주민참여”를 참고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뉴욕시 커뮤니티 보드의 역사, 운영,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자.  

역사

(커뮤니티 보드의 역사, 운영과 역할 부분은 배웅규님의 “도시계획,개발과정에서 주민참여 시스템으로서 뉴욕시 커뮤니티보드의 운영특성 및 시사점 연구”를 참고했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1951년 맨하탄 보로장 와그너(Robert F. Wagner)가 맨하턴 보로에 일반 주민이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12개의 커뮤니티계획위원회를(Community Planning Councils) 설립하면서 커뮤니티 보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시 헌장(Charter)상의 기구로 격상되어 위원회가 5개 보로에 모두 설치된 1963년이 커뮤니티 보드에게는 매우 중요한 해이다. 비록 권한도 적고 조직과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후속조처도 부족했지만 뉴욕시라는 자치정부의 존립근거인 헌장에 규정된 기구가 되면서 법적 기반을 확실히 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보드 역사에서 두 번째 중요한 순간은 1975년이다.

“뉴욕시를 위한 주 헌장개정위원회”가 토지의 이용과 개발에 관해 커뮤니티 보드가 주민의 의견을 잘 수렴할 수 있는 중요한 기구라고 판단하여 ULURP의(Uniform Land Use Review Process. 표준토지이용검토절차) 공식 검토 기관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ULURP는 토지이용에 관한 방대한 범위의 행정을 “제안서 제출-제안서 인정-커뮤니티 보드 검토-보로장 검토-시도시계획위원회 검토-시의회 승인-시장의 거부 여부”라는 일괄 과정으로 표준화한 것인데 커뮤니티 보드는 그 첫 검토기관이 된 것이다. 이로서 커뮤니티 보드는 분명한 자기 역할을 가진, 그것도 도시계획이라는 핵심적 행정에 영향력을 가진 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1989년 대규모 도시계획에 관한 환경검토 과정을 강화하면서 그 역할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운영과 역할  

뉴욕시 전체에 59개의 커뮤니티 보드가 있고 1개의 커뮤니티 보드는 최고 25만명의 인구를 커버한다.  

여기서 한 가지 설명하고 넘어가자. 우리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준 커뮤니티 보드 #7의 지역 매니저(District Manager) 메릴린 비터만은 강하게 블룸버그 시장을 비판했다.

“우리는 싸우고 있어요. 최초 시 헌장에는 인구 10만명당 커뮤니티 보드 1개씩으로 규정했지요. 인구는 자꾸 증가하는 반면 커뮤니티 보드는 늘어나지 않아 지금은 상한선이 25만명이 되었고 커뮤니티 보드 #7은 그 상한선도 넘어 26만명을 커버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블룸버그 시장은 예산을 줄이려 합니다. 커뮤니티 보드를 없앨 생각인 것 같아요.“

25명이면 용산구만한 인구이다. 커뮤니티 보드라는 일반 주민이 자원봉사로 참여한 자문적 기구가 주민 의사를 수렴하기에는 많은 인구이다. 커뮤니티 보드를 지원하고 시와 주민을 연결하기 위해 설치된 오피스에는 3명의 풀타임, 1명의 파트타임 공무원이 일을 하고 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3과 1/2의 실무자가 소화하기에는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이 중앙집권공화국이 아직 “주민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뉴욕시의 커뮤니티 보드는 그야말로 간당간당 아슬아슬 “작은 구멍”이었다.  

(사진 설명) 3월20일 방문한 커뮤니티 보드 #7 오피스의 전경. 앞에 앉아 있는 여성분이 지역 매니저인(District Manager) 메릴린 비터만이다. 커뮤니티 보드 #7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서 2년 전에는 비터만이 진주, 인천 등에 강연을 다녀왔다고 한다. 지역운동 하던 사람이 미국 대통령 되었는데 이분도 시장 꿈 좀 꾸어보시면 좋겠다.  

#7은 47명의(50명 이내로 선임) 보드 위원들이 있는 바, 이들은 해당 지역의 주민들로서 시의원 등이 추천하고 보로장이 임명한다. 2년의 임기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연임된다. 이날 한국측 참가자를 안내해준 주성욱위원님은 10년 넘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위 사진에서 사진을 찍고 계신 분)

커뮤니티 보드가 지역사회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에 비해 위원의 선임 과정은 투명하지 못했다. 보통 지역 정치인과의 친분 관계로 선임되는 형편이었다. 주성욱위원님도 줄리아 헤리슨이라는 민주당 출신 뉴욕시의원의 추천으로 위원이 되었다고 한다. 일정한 주민 추천을 받는다든지 하는 좀 더 객관적인 절차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47명의 위원들은 10여개의(특별한 일이 있으면 특위가 구성되므로 소위원회의 수는 그때그때 다르다.) 소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한다. 주요 소위원회를 보면 예산위원회, 건축및구역설정위원회, 경제개발위원회, 교육및청소년위원회, 환경및위생위원회, 법률위원회, 공원및휴양위원회, 경찰화재공공안전위원회, 교통위원회 등이다.

각 소위원회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회의를 개최하며 전체 회의는 1달 1회가 기본이다. 이 와는 별도로 주민과 함께 하는 공청회도(Public Hearing) 1달 1회 열린다.  

공청회는 두가지 경로로 개최된다.

시에서 요청하는 경우. 뉴욕시청의 “Board of Standards and Appeals”에서(표준항소위원회? 뭐라 번역할지 모르겠다. 도시계획 등의 행정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검토해 줄 것은 요청하는 최후의 행정 과정이다. 여기서도 좋은 결과가 없으면 소송밖에는 방법이 없다.) 주민 의견을 수렴해 줄 것을 요청한 사안이거나 도시계획 관련 사항으로 앞에서 이미 언급한 ULURP에(표준토지이용검토절차) 따라 주민 의사를 묻는 경우는 공청회를 꼭 개최해서 주민의견을 물어야 한다.  

또 하나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요청에 따른 공청회로 양방향 도로를 일방 통행길로 만들어 주세요, 우리 블럭에서 모일모시에 길을 막고 축제나 퍼레이드를 할테니 검토해 주세요 등등의 요청에 대해서 토론하고 결정하는 공청회이다. 이 경우는 관련 소위원회에서 먼저 검토한 후 보드 의장이 안건으로 채택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커뮤니티 보드는 자문기관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이고 공개적인 과정을 거쳐 주민의견을 모으기 때문에 시의회나 시장도 그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공청회를 통해 도시계획 등 특별한 사안에 대해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뉴욕시의 각종 행정 서비스 즉 소방, 치안, 환경, 공원관리, 상하수도 등에 대해서 협의와 모니터링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커뮤니티 보드의 의장과 지역 매니저는 시의 각종 부, 청, 위원회, 지역 정치인과 협의를 진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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