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큼 복잡한 사회에서 그 많은 사회적 갈등을 물리적 싸움이나 투쟁으로 해결하지 않고 법정에서 해결하는 것은 미국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일부 의식 있는 미국민들은 미국인들이 소송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고 우려하지만,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사회적 충돌을 방지하게 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개인사이 개인과 정부사이 그리고 연방정부와 주정부사이 분쟁 등 실로 사람의 권리와 이익이 관련되는 곳이라면 어느 분야에서건 ‘소송의 홍수(a flood of litigation)’를 이룬다. 매년 2천5백만 건의 소송이 미국 법정에서 제기된다. 이렇게 많은 소송의 와중에도 미국의 시민사회가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법부의 기능이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검은 법복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사법부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강의 힘을 갖고 있다. 검은색 법복이 국민들에게 권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만큼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법체계 최고의 정점은 연방대법원(Supreme Court)이다. 연방 항소법원과 주 대법원에서 넘어오는 사건을 심리할 뿐 아니라 미국 헌법의 최종 해석자로 기능한다.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두고 있지 않은 미국에선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에 대한 사법심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을 최종적으로 해석할뿐더러 위헌법률을 무효화해서 헌법을 수호하는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따라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헌법질서와 정치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른 나라에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워터게이트 사건, 2000년 대선 등 국가적 위기를 사법적 판단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연방대법원의 기능과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해서 상원의 인준을 거쳐서 임명되는데 상원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해 왔다. 대법관은 정해진 임기가 없기 때문에 사임하거나 탄핵을 당해 파면되지 않는 한 종신의 임기가 보장된다. 그런 탓에 한번 임명되면 20년이건 30년 동안 대법관으로 재직하는 경우가 많다.

  대법관을 정치적 성향에 의해서 임명을 하기 시작한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  부터이다. 당시 보수성향의 대법관들은 경제공항을 타개하기 위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시시때때로 제동을 걸고 나왔다. 1930년대에 들어서 나이 많은 대법관들이 은퇴하거나 사망하자 루즈벨트는 대통령은 진보적인 법률가들을 대법관으로 임명해서 사회주의적인 뉴딜 입법(정책)을 만들도록 했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서 임명된 얼 워렌 대법원장은 흑백분리 정책을 위헌으로 판시하고 형사피의자 권리를 강화하는 등 개인의 기본권을 강화시키는 판결을 연거푸 내 놓아서 사법적극주의 전성기를 만들기도 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성향을 기준으로 대법관을 임명하기 때문에 대법관은 임명되기 전에 분명히 정치적 색깔(민주. 공화. 진보. 보수)을 갖고 있고 이로 인해 상원의 인준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일단 임명되고 나면 그때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법관으로 임명되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충실하기 전에 “헌법의 수호자로서 다시 태어나 법률과 양심에 따라 충실히 그 직책을 수행하는 것” 이란 대법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법원의 색깔을 보수로 바꾸고자  렌퀴스트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고 대법관 3명을 새로 임명했지만 ‘샌드라 오코너’ 대법관과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줄기차게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2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는데 그중  흑인인 ‘클라렌스 토마스’만 확실한 보수 편이었지 ‘데이비드 수터’는 오히려 임명이 되고서 강한 진보 성향을 보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중 저명한 진보성향의 법률가인 ‘루스 긴스버그’와 ‘스티븐 브라이어’를 대법관에 임명했지만 기대만큼 사회가치 이슈에서 진보적인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미국 새 연방 대법관 후보에 사상 처음으로 히스페닉계 여성인 ‘소냐 소토마요르’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지명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히스페니계 대법관의 탄생은 법 앞에 평등한 정의라는 미국의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더 내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명 사실을 공표했다. 상원비준이 남아있지만 사상 첫 히스페닉계, 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이어서 미국이 또 하나의 장벽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토마요르는 프에르토리코 출신의 이민자 후손으로 뉴욕 사우스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와 예일대 법대를 나왔다. 9살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다.

200년이 넘는 세계 최고의 권위인 미국 대법원역사에 유색인종의 장을 다시 한 번 열어젖히는 ‘소냐 소토마요르’ 대법관 지명은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한인후세들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의 희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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