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공화국 뉴욕시가 주민과 만나고 싶을 때는?

“Community Board”


버겐 카운티와 팔팍은 시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고로 현대화된 대도시도 아니다. 난 서울 사람이고 서울에서 지역운동을 하고 있다.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의 지방자치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도시는 문명의 공간인가? 야만의 공간인가? 도시는 첨단 기술과 유행, 선진적 사상과 문화가 모여서 휘황한 문명을 이루고 있는 공간이다. 도시는 문명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도시야말로 진정한 야만의 세계이다. 도시는 익명에 기초한 무책임, 약자에 대한 무법과 폭력, 비인간적인 범죄와 차별의 공간이다.

세계평화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미국에서 안전하게 밤거리를 다닐 수 있는 도시는 거의 없다. 자기 도시의 안전과 평화조차 지키지 못하는 세계평화의 수호자는 좀 이상하지 않은가?

또 홈리스들은 도시의 곳곳에서 해가 갈수록 늘어 가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쌓고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병든 도시를 치유하는데 국가는 무능하다.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도시는 파괴적이다.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은 공동체를 가지고 있는가 여부이다… 인류는 지금 처음으로 공동체가 해체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 이강백 “사회적 기업을 누가 만들 것인가?” 중)

위의 도시 모습에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뉴욕시이다. 관광객에게는 낙원이지만 사는 사람에게는 지옥이라는 뉴욕시는 파괴된 공동체를(Community) 어떻게 복원하고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뉴욕시의 밤거리. 가끔 뉴욕시는 820만개의 고립된 섬 같다는 느낌이 든다. 관계가 단절되면 그곳은 삶터가 아니라 잠자리일 뿐이다.  

중앙집권공화국 뉴욕시

뉴욕시는 인구 820만의 대도시이다. 도시 하나가 뉴저지주의 인구와 맞먹는다. 서울보다 더 집약적이고 서울보다 더 뜨내기가(뉴욕시의 뜨내기는 세계적 뜨내기들이다. 그들은 공부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그냥 북적거리는 세계의 수도를 보고 싶어서 뉴욕시에 왔다.) 많다. 뉴욕시를 고향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그 거대한 뉴욕시에는 단 하나의 지방정부만 존재한다. 필자가 “지방자치를 한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채근하는 서울만 해도 서울시와 25개 구청, 이렇게 26개의 지방정부가 존재하는데 비슷한 인구의 뉴욕시에 달랑 하나, 뉴욕시 정부만 존재한다. 산하에 5개 보로(Borough)가 있고 보로장을 선출하지만 그것뿐이다. 보로 의회가 없으니 자체 입법권도 없고, 행정력도 공무원 80-90명 수준으로 매우 약하다. 뉴욕시청이 23만명, 시장실에만 1000명이 넘는 공무원을 채용하고 일반 행정은 물론이요, 치안과 교육까지 담당하고 있는 반면 보로는 그저 관할 지역의 예산안을 짜서 시에 올리고, 지역의 의견을 수렴해서 도시계획 등 여러 계획 수립에 자문하고, 시의 각종 행정 서비스를 모니터하여 건의하는 역할을 한다. 자치정부가 아니다.  

인구 2만의 팔팍도 시장에, 의회에, 판사에, 경찰에 다 갖추고 있었는데 200만에 가까운 보로에 겨우 보로장 하나를(그것도 사실 별다른 권한도 없는) 선출한다니. 역사적으로 뉴욕시는 하나의 Municipality로서 행정상으로만 보면 팔팍과 같은 급이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다.  

그래서 뉴욕시는 시장(The Mayor), 의회(The Council), 감사원장(The Comptroller.), 공익옹호관(The Public Advocate) 등 주요 요직의 힘이 매우 세다. 그들이 820만 뉴요커와 5개 보로, 그리고 그 막대한 예산을 분할하지 않고 모두 관할하기 때문이다.

뉴욕시! 가히 중앙집권공화국이라 할만하다.  

중앙집권공화국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뉴욕시가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항구로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인구는 점점 많아지고 돈은 남아도는데, 정치와 행정의 방대한 권한이 단 하나의 정부, 몇몇 핵심 정치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니 당연히 보스정치, 부패정치가 판을 치게 되었다. 당시 미국이 전체적으로 그랬다지만 뉴욕시는 그 정도에서 남달랐다.  

그 당시의 대표적 부패 정치인인 “보스” 트위디는(William Magear Tweed) 뉴욕시 법원을 신축할 때에 3백만불이면 충분히 지을 수 있는 이 건물을 1천3백만불짜리 계약으로 만들어 그 차액을 횡령하였다. 그래서 아직도 이 법원 건물을 트위드 법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보스정치, 부패정치에 신물이 난 젊은 진보주의자들이(루즈벨트 대통령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 대대적인 행정개혁을 단행하였고 그것이 미국 현대 행정시스템의 뼈대를 이루게 된다.  

뉴욕시의 감사원장은(The Comptroller) 직선으로 뽑히는 서열 2-3위의 매우 중요한 직책이다. 재정 정책과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감사하고, 모든 계약에 대한 조사권을 가지고, 재정과 관련된 위원회에 당연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재정 분야의 시장이라 할 만하다. 1921년, 처음 이 직책이 생겼으니 분명 당시의 극심했던 부패 정치를 척결하고자 하는 노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부패는 중앙집권공화국의 당연한 부작용이다.  


윌리엄 “보스” 트위드(William Magear “Boss” Tweed)
그리고 트위드 법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맨해튼 52 Chambers Street에 있는 법원 건물


하지만 중앙집권공화국의 문제는 부패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는 맨하탄은 이미 1950년대부터 도시계획과 관련된 각종 문제에 부딪치고 있었다. 예전에야 모든 권한을 가진 뉴욕시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강제수용하고 건물을 철거한 후 새로운 도시계획을 시행하면 되었는데 이즈음부터 강제수용에 대한 주민 반발이 강해지고 조직화된 것이다. 더구나 연방정부가 대형 도시계획에 환경영향평가를 의무화하자 뉴욕시 정부도 어쩔 수 없이 “커뮤니티에 기반한 도시계획”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뉴욕시 중앙집권공화국에서는 하나뿐인 높으신 지방정부와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주민으로 나뉘어 직접 만날 통로가 없었다.

바로 그때 맨하탄 보로장 와그너(Robert F. Wagner)가 도시계획과 예산수립에 관해 주민의견을 직접 접수하고자 커뮤니티계획위원회를(Community Planning Councils) 설립하였다. 그것이 오늘날 커뮤니티 보드의(Community Board. 지역사회위원회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원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그냥 커뮤니티 보드로 쓰겠다.) 전신이다.  

3월20일 “내일의 지방자치” 세미나(이 기고의 앞글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한국에서 참가한 13명의 지방의원과 함께 뉴욕시, 뉴저지의 지방자치 현장을 살펴본 세미나) 참가자들은 커뮤니티 보드 #7을 방문하였다.

그날 난 문득 이런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뉴욕시 중앙집권공화국이라는 풍선에 바람을 세게 불어 넣고 있다. 그 바람은 종로통보다 3배쯤 심한 교통체증, 살인적인 주차난,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불안한 치안, 심각한 빈부격차와 넘쳐나는 홈리스들이다. 풍선은 점점 팽팽해지고 곧 터질 것 같다. 그 팽팽한 풍선에 다행히 작은 구멍이 나있다. 미약하지만 그 구멍을 통해 바람이 새어 나온다. 구멍이 너무 작아 언제 터질지 위태위태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고마운 구멍인지 모른다.

그 구멍이 바로 커뮤니티 보드 아닐까? 뉴욕시와 뉴요커를 연결시켜주는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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