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변화, 그래서 한인회장감은…  ?

  클리턴 대통령은 자신의 두 번째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인 1999년도 말,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 재임중의 대통령 역할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자신은 21세기로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 다리역할을 했다 고 답했다.
냉전이 해체되어 소련이 사라져서 세계는 미국의 단극체제가 되었는데도 미국의 리더쉽이 전혀 준비가 안 되었었다. 자신은 8년 연임동안 그러한 준비를 했다고 술회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클린턴은 그동안 시장을 지배해 온 고전적인 자유경쟁의 자본논리가 새로운 상황에서는 절대로 미국(자본가)만을 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그의 ‘신경제정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념으로 나누어진 양당체제의 울타리를 허물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 양당의 중도세력들을 떼어 내어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었다. 클린턴시대를 개막한 신민주주의 세력이다. 따라서 클린턴은 재임중에 여소야대를 오히려 더 즐길 수 있었다. 사회가치 아젠다에서도 이념의 바탕을 떠나서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할 것을 지독하게 주장했다. 따라서 클린턴을 문화.예술인들은 최고의 지도자로 치게 되었다.

클린턴은 성공한 대통령이지만 아무도 그를 ‘위대한 지도력…’이라 하지 않고 인기높았던 ‘쿨( Cool )한 대통령’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퇴임하고서 오히려 몸값을 더 불렸다.

  클린턴이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서 그런대로 ‘다리’를 놓았다. 그의 후임인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센스가 없었다. ‘세기와 세기의 다리’가 무엇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부시대통령의 그러한 무지함의 약점을 그의 측근 참모들이 최대한 즐겼다.

놓여진 다리를 통해서 새로운 세기로 진입할 채비를 해야 했는데 국민들에게 다리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했다. 시장(자본가)의 독주를 막지도 못 했으며 막을 궁리도 하지 않았다. 마초맨의 기질로 당파성을 조장하여 워싱턴 정치구조를 양극체제로 만들고 말았다.

‘포스트 모던이즘’이 진부해 졌음에도 종교적 보수가치를 최고의 선으로 강제했다. 가치 이념으로 미국의 시민사회가 갈라졌다. 정서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미국의 사회가 갈기갈기 파편화 되고 말았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느라 나라의 꼴이 엉망이 되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가장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란 기록을 세우면서 지난 1월20일 헬기편으로 워싱턴을 떠났다.

  클린턴때 사회적 화두였던 ‘새로운 세기를 향한 변화’가 다시 시민사회에 등장했다. 그때에 그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변화’가 선택이 아니고 생존의 문제로 눈앞에 닥친 것이다. ‘자본의 논리’로 시장을 방치하고 갖은자(자본)의 ‘자선’을 기대하라고 했던 정치인들이 슬슬 뒤 꼬랑지를 내리고 있다.

자본가들의 탐욕을 시장발전의 요구로 아전인수 해석했던 정치인들이 궁색한 표정으로 미디어를 피해 다니고 있다. 그래서 올해부터를 워싱턴이 아니고 로컬의 시대라 하고, 시민의 시대, 국민의 정부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풀뿌리 운동의 가치가 그래서 반짝반짝 거리고 있다. 시민(서민)들이 움직이면 가장 큰 힘이 생기는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이 “변화”의 시기가 사회 정치적으로 소수이면서 약자인 소수계 서민들에게 최적의 기회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의 흐름과 분위기를 벌써 알아차린 발 빠른 커뮤니티는 벌서 저 만치 앞서 가 있다.
미디어에서만 접하는 금융구제액을 챙겨오는 중국계 은행이 한 둘이 아니다. 합법적인 정치기금을 모아서 자기동포를 고위직에 집어넣는 아시안계들이 우리의 부러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다.

지역정치권의 주류와 비주류가 뒤 바뀌는 틈을 타서 주도세력의 한 자리에 틀어 앉느라고 남미계와 흑인계가 거의 사활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 경제가 엉망인 틈을 타서 헐값의 매몰을 점유하느라 제동포끼리 십시일반 금전을 모으느라 여념이 없는 중국계를 볼 때에 부럽기까지 하다.

  이민100년이 지났다고 역사와 전통을 갖고서 호들갑 수준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목소리의  마이크를 서울 여의도로 돌려서 급기야는 한국내 참정권을 따내고 말았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전 때 도시권의 아시안계를 조직해서 풀뿌리 캠페인의 위력을 보여주었던 한인1.5세가 ‘한인커뮤니티의 참여도(Fundrasing Record)’가 낮다는 이유로 매번 인사지명에서 밀리고 있는 서글픈 상황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가 누구보다도 먼저 오바마의 편에 섯는대도 말이다. 동포사회의 1세들의 시민사회 참여(정치참여)가 중국계의 그것에 비해서 20%에도 못 미친다는 여론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인사회 지도자를 뽑는다는 뉴스다. 게다가 한인회장 후보가 벌써 여럿이란 소식도 있으니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봉사를 서로 하겠다고 치열한 경쟁이다. 한인커뮤니티가 아주 특별하게 결집이 잘 된 집단으로 소문나 있다. 좀 달리 설명하면 우리끼리만 고립되어 있는 형편이다. 마치 우리가 미국의 뉴욕시가 아니고 대한민국 뉴욕시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이다.

세금은 미국에 내고 민원은 한국으로 갖고 가는 습성이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결집된 집단의 가장 큰 위험은 지도력의 부재이다. 동포사회의 뒤를 돌아볼 때에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슴 조리며 위험천만을 겪어 왔는가? 인간의 생활은 현실이 기본이다. 우리는 미국의 시민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몸담고 있는 미국이 요동을 치면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미국의 지금은 독똑한 집단에겐 기회이고 미련하면 위기이다. 한인동포사회는 잘 결집되어 있기 때문에 지도력이 관건이다. 우리가 싫든 좋든, 아니면 인정하건 안하건 간에 한인회가 한인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다. 덕망이 있어서 많은 동포들로부터 편안한 지지를 받게 된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한인회장감은 적어도 미국의 이러한 시민사회의 흐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제는 우리가 미국의 뉴욕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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