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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보면, 지금 얼마나 대행인가..? – 김동석

by kace

Admin   2007-10-26 10:48:42, Hit : 295, Vote : 74

부시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 되었을 때 북한과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우호적인 상태를 맞고 있었다. 두 달 전인 2000년 10월 북한 군부의 2인자인 조명록 차수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데 이어 매를린 울부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이어 김위원장의 초청에 따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추진되고 있었다.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부시 당선자에게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반대하는가..? 고 물었다. 부시 당선자는 그것은 클린턴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당시 부시를 당선시킨 공화당은 클린턴의 대북유화정책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울부라이트는 2003년 출간한 그녀의 회고록 “ 마담 세크레터리( Madam Secretary ) “에서 이 부분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결국 정상회담은 무산 되었고 클린턴은 북한과의 협상을 부시에게 넘겼다. 부시가 취임한 지 두 달 남짓 뒤인 2001년 4월 부랴부랴 워싱턴을 찾아 온 김대중 대통령에게 새 행정부가 자체적으로 정책 검토를 끝낼 때까지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한다고 통고했다. 부시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 이 사람(this man) ” 이라고 지칭해 분위기가 어색해졌던 것도 이때다. 화해 분위기였던 미북 관계가 적대적인 기조로 바뀌고 동시에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2년 1월29일 부시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라크, 이란 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북한 등 7개 나라를 잠정적인 선제 핵 공격 대상국으로 지목하는 핵 태세 보고서도 언론에 공개됐다. 대북 특사로 임명된 제임스 캘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2002년 10월3일 서울을 거쳐서 평양을 방문했다. 협상을 위한 방문이 아니고 일방적인 통보와 경고의 입장 전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한미동맹관계 재조정”, 혹은 ” 주한미군 한강이남 재배치 ” , ”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 ” 라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초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네오콘들이 핵심인 미국 강경파가 이라크 다음으로 북한공격을 꾀하고 있다는 정보가 워싱턴서 솔솔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5월15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대통령은 ‘추가적 조치’ 라는 분명한 입장을, 그리고 5월23일 미일정상회담에서는 ‘좀 더 강경한 조치’ 라고 언급하면서 전쟁으로 한발 더 나갔다. 민족공조를 강화 시켜 나간다는 원칙을 강조해 나가던 노무현 대통령은 하는 수 없이 ‘남북 교류. 협력을 북한 핵문제와 연계 시킨다’라는 성명을 내면서 대북한 한.미.일 이 공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북한은 당해 3월에 핵 동결을 해제하고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다. 동시에 8천여 개의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이 완료 되었다고 미국에 통보했으며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원을 추방하고 핵시설에 대한 봉인과 감시 카메라를 제거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내 모든 주류미디어는 커버스토리로 북한의 핵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문짝만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다.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강경파는 탁상에서 정치하듯이 전쟁을 선언했다. 시작부터 전 세계 반대세력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2004년 부시의 년임 직 후 부터 잘못된 전쟁의 내막이 샅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보조작의 행태로 국제사회에서 완전하게 신뢰를 상실한 부시 행정부는 외교안보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북관련 실무라인으로 부터의 보고서가 전략가들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되면서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서서히 해소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엔 브레이크가 없고 중국의 부상은 이젠 현실이 되었다. 서남아시아를 두고서 미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러시아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폭탄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분단이고 감정적 적대관계이다. 더구나 권력교체기에는 이러한 측면에서 비이성 반지성이 흐름을 압도한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북을 정리하기 위해선 전쟁도 Tool(도구) 이라고 주장하는 비이성적인 소수 의견이 다수의 여론인양 동포사회에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전쟁은 아니다 그래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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