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TV의 시청이 미국시민들의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영민한 정치인이며 미국의 새로운 지도력을 부르짖으며 대선판에 뛰어든 민주당의 존 에프 케네디 후보가 TV를 그냥 놔 둘리가 없었다. 민주당의 케네디, 공화당의 닉슨이 TV스튜디오에 마주 앉았다. 그 유명한 1960년 닉슨과 케네디의 TV토론회다. 지루하기만 했던 당시 부통령 닉슨이 수려한 외모와 싱싱한 이미지의 케네디를 이길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1976년 민주당의 카터 후보와 포드 대통령간 토론화가 두 번째의 대선후보 TV토론회였고 그 이후부터는 대선때엔 정례적으로 개최 해 왔다. 국민들의 정치관심도를 높이고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유권자가 직접 판단할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로 자리매김 되었다. 처음엔 여성유권자연맹(League Of Women Voters)이 주관해 오다가 1988년부터는 비정당 초당파 성격의 대통령후보토론회(Commission on Presidential Debates)란 정부기구를 설립해서 운영하게 되었다.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들의 토론을 주관하며 동시에 토론과 관련한 연구와 교육기능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TV스튜디오에서 사회자의 재량에 의해서 토론을 진행해 오다가 1992년 클린턴의 주장으로 처음으로 토론회에 일반인을 참석시켜서 타운홀( Town Hall Meeting )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2004년 대선후보 토론회 직후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는 무려 그 지지율이 27% 껑충 뛰어 오른것에 비해서 조지 부시 후보는 겨우 10% 만이 올랐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위기감을 느껴서 토론회 직후부터 강하게 결집했다. 결국엔 토론회의 효과를 토론회에서 밀린 부시 후보가 갖게 된 결과였다. 공화당이 부시를 지지한 비율이 92% 인데 비해서 존 케리를 지지한 민주당은 81% 였다는 것이 이를 설명해 주고 있다.

  대선사상 가장 치열한 예비경선을 치룬 2008년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시작된다. 선거의 막바지 가장 중요한 고비가 될 세 번의 대선후보 토론회, 한번의 부통령후보 토론회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9월26일 미시시피주의 미시시피대학에서, 10월7일엔 테네시주의 벨몬트대학에서, 그리고 10월15일 뉴욕의 호프스트라대학에서 부통령후보 토론회는 10월2일 미주리주 세인트류이스 워싱턴대학에서 개최한다. 이번 대선후보토론회의 특징은 후보간 직접 묻고 답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야말로 맞짱토론이다. 때문에 예년에 비해서 전세계인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두 후보간의 실력을 직접 가늠해 볼수있는 기회이다. 경제살리기에 뾰족한 방책이 없는것은 양당의 후보들이 같은 사정이다. 다만, 집권당 후보로서 책임을 피할수 없는 입장인 존 맥케인이  오바마로부터의 책임공방전에서 부시 대통령과의 차별을 얼마나 만들어 낼지가 관건이다. 미국경제를 공황상황으로 몰고온 월스트릿의 투자은행들이 그동안 공화당에 집중적으로 로비해 온 기록을 오바마가 어떻게 폭로할지도 관심거리이다. 깜작 상품이었던 맥케인의 러닝메이트인 페일린이 어떻게 여성부통령이 흑인대통령 보다 미국역사에서 먼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펴야 여성유권자들을 설득할지가 주목거리이다. 오바마는 그 자체가 “변화“란 상징성이 있기 때무에 총론적으론 유리하겠지만 경륜과 외교정책의 경험에서는 토론에서 다소 불리할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대선후보 TV토론이 노장과 청년의 대결이고 흑.백의 대결이다. 더구나 부통령후보 토론회는 백인 노장과 젊은 여성과의 말싸움이 어떻게 판가름날지 그야말로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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