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지난 3월 오하이오와 텍사스 예비경선에서 힐러리에게 패했다. 2천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쏟아 부었는데도 대패를 했다. 뉴햄프셔에서 패한 후에 수퍼 화요일에도 ‘박빙승부’가 되면서 경선을 조기에 마무리 하려는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긴급전략회의에서 오바마는 우선, 후보인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모두의 책임이라고 단정하고 침울한 전략팀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오바마는 과묵하지만 부드럽고, 신중하지만 단호하다. 취재기자들에게 오바마의 캠페인 매니저인 데이빗 플라프는 “ 오바마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정치인은 기억에 없다 ” 라고 말할 정도이다. 참모들과 직원들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후보라고 입과 입을 통해서 선거판에 흘러 나왔다. 그의 전략회의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은 오바마라고 한다. 그는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의 의견에 더 주목 한다고 한다. 오바마 캠프의 전략회의는 늘 조용하다. 오바마는 고민거리가 있어도 그런 걱정을 다른 사람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한다. 그는 쉽게 동요하지 않고 늘 침착성을 유지한다고 한다. 제례미아 라이트 목사 발언의 여파로 인디애나와 노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수행기자들이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물어오자 그는 “실제의 상황이고 이러한 국면을 타개 하기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고 평정의 대답을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오바마는 핵심참모들에게 오히려 휴식을 취할 것을 권했다. 오바마의 캠프는 무보수 직원으로 점점 불어났다. 대다수가 당적이 없는 정치권내의 고급인력들이었다. 이러한 자원봉사 고급인력들은 전국의 각 주로 배정 파견되었다. 이것이 오바마의 성품이고 리더십이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대통령’ 이란 경이적인 기록을 역사책에 올렸다.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고 인류 역사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 에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다. 지금 미국은 짧지 않은 고통의 터널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지금이 어렵다. 이제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니다. 지금 미국이 처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각계각층이 함께 고통을 나눌 각오를 하자” 라고 호소했다. 그는 국제사회에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는 일이 또 중요한 일이라 했다. 세 번 이상을 “ 오늘은, 오늘밤의 승리는 바로 여러분의 것. 이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 라고 했다. 오바마는 시작과 끝이 팀웍이다. 이리저리 꼬이고 설키는 관계엔 질색을 한다. 필자는 2006년 뉴저지 호보콘, 오바마와의 만남에서(겨우 10여분이었지만)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시안계의 현실 정치참여, 그리고 아시안계의 투표율에 관해서다. 흑인들의 민권운동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는 “유색인종의 투표권 획득”이란 것을 두 번 강조했다. 간결하고 명확하다. 그리고 풀뿌리 사회운동이다. 오바마는 1960년대 흑인들의 민권운동 역사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개인의 능력과 실력으로 주류사회에 혼자서 뛰쳐나가는 일과 공동체의 평균적인 발전에 관해서 고민과 고민을 반복했다. 그는 과감하게 후자를 선택했다. 그가 공교육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이유는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근본적으로 끊으려면 공교육을 강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커뮤니티의 빈민 활동 과정에서 그는 깊은 비애와 사회적 책임을 통감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필자 같은(그가 그렇게 표현했다 : likely you) 풀뿌리 활동가들이 사회의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 했다. 오바마는 유세에서 “ 여러분! 우리는 선거운동이 아닙니다. 사회운동(Movement)입니다 ” 라고 하면서 “ 나를 지지하고 후원해 달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워싱턴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 라고 했다. 오바마에게 “함께(Together)”가 아니면 어떠한 소통(Communication)도 불가능하다. 그는 시민의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요청한다. 시카고 커뮤니티 활동에서 아시안계가 지역사회 참여가 미비하다는 그러한 인상을 갖고 있다. 필자에게 “참여” 라는 것을 언급한 것이 그러한 그의 경험에서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만 2년여 동안의 선거운동 기간에 오바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곪아터진 워싱턴의 모순, 로비스트에 오염된 워싱턴 권력”을 명확하고 그리고 과감하게 지적하고 비판했다. 그러한 오바마의 용기를 미국사회의 지성인들과 여론주도층이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견해는 캠페인을 위한 전략적 발언이 아니다. 만일에 오바마가 워싱턴 권력과 협력관계를 만들었다면 훨씬 수월하게 예비경선을 통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바마는 “승리” 라는 목표 이전에 우리의 초점이 시민들의 요구에 정확하게 맞추어 지는 것이라고 늘 강조했다. 지난 4월16일 펜실베이니아 경선을 앞두고 오바마의 최측근 참모인 데이빗 액슬로드는 펜실베이니아 주도인 해리스버그에 아시안계 시민활동가들을 초청해서 정책설명회를 개최했다. 엑슬로드는 80여명의 아시안계 커뮤니티 활동가들에게 “ 오바마후보는 이기고 지는 것과 관계없이 여러분들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초청했다 ”고 했다. 오바마는 돈도 없고 조직도 없었다. 단지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무모한 시도라는 충고만 많았다.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였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을 위해서 워싱턴을 바꿀 사람은 바로 당신뿐이다 ” 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고 한다.  당권을 독식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을 생각해서는 펠로시의 용기도 대단했다. 필자는 지난 1월8일 뉴햄프셔 예비경선장에서 오바마의 정치파트너인 일리노이의 “딕 더빈 ” 상원의원을 만났다. 필자가 건넨 명함을 보고는 오바마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바마는 한인들이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서 한인들이 풀뿌리 운동으로 워싱턴서 일본의 거대로비를 이겼다고 정말로 인상적인 일이라고 전해 주었다. 60년대에 사라진 풀뿌리 정치 운동에 집착하는 오바마의 의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오바마’가 신인이고 예상(선거 한 달 전부터 천하가 다 예상했음에도)치 못했는데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국에서는 오바마 인맥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워싱턴의 어느 분은 오바마와 가까운 인맥의 절반은 알고 지내고 있다고 한국은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고 한다. 오바마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다. 어쩌면 모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야말로 정치신인이고 내세울 만한 경력이 전무한 더구나 흑인인 “바락 후세인 오바마”를 미국의 국민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서 대통령으로 만들어 낸 원인과 과정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살피길 바란다. 지난 2월11일 오바마는 상원외교위원회에 한미관계에 대한 발언에서 ‘ 한미관계는 미국 내 200만 한국계 미국시민과 한 국내 10만의 미국시민들이 기본이다 “라고 했다 한인동포 풀뿌리 정치력이 이룩한 성과이다.  미주지역 한인동포의 비중과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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