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   2008-05-16 11:36:39, Hit : 89, Vote : 23

“이스라엘 땅은 유태인의 탄생지다. 우리는 여기서 최초로 국가를 만들었고 책 중의 책(성경)을 세계에 전했다’  이곳에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 국가의 건국을 선언 한다” 꼭 60년 전 오늘(5월14일), 유대국가 건국위원회 의장인 ‘벤 구리온”은 텔아비브 미술관에서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언했다. 2천년 유랑 끝에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세웠지만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이날은 재앙의 날이었다. 그래서 매년 5월14일은 유태인들에겐 잊지 못할 감격의 날이고 아랍인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치욕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 직후 이르군(Irgun: 민족군사조직)과 하가나(Haganah:방어)를 비롯한 유태인 무장조직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이틀 뒤인 16일에는 이집트를 비롯한 요르단, 시리아 등 연합군 2만 명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진입했다. 제 1차 중동전의 발발이다.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는 중동 분쟁의 시발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던 이 땅에 유태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BC 11세기경. 모세가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나와서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부터였다. 그 후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던 유태인들의 국가는 BC 8세기와 6세기에 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에 의해서 멸망했다. 이후 유태인들은 세계 각지를 떠돌며 2천 여 년 간 나라 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어야만 했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반유태주의가 기승을 부리자 유태인들 사이에는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유태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시오니즘(Zionism:유태인민족주의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1차 대전을 치르던 영국이 미국 내 유태인들의 도움을 끌어내기 위해서 공개적으로 시오니즘지지(밸푸어 선언)를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는 유태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2차 대전 후에는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대거 팔레스타인으로 유입되었다. 팔레스타인에 유태인이 숫자가 늘어나면서 유태 무장조직들의 테러 활동도 거세졌다. 유태계 무장조직인 ‘이르군’ 과 ‘하가나’ 는 팔레스타인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던 영국군이건, 아랍인이건, 심지어는 동족인 유태인들마저도 시오니즘을 반대하면 가리지 않고 무차별 테러를 가했다. 당시 이르군의 작전을 총 지휘했던 ‘메니햄 베긴’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었고 1982년엔 레바논을 침공하기도 했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는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원래 그는 이스라엘 극우테러 조직의 총 사령관이었다. 1947년 11월 29일 UN이 팔레스타인 땅의 56%를 유대인들의 국가에 주는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한 후, 1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대로 살아오던 삶의 근거지에서 쫓겨나 졸지에 난민의 신세가 되었다. 그 이후에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아랍세계 사이에는 세 차례의 전면전이 일어났고, 불안한 휴전상태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발하는 중동지역 산유국들의 ‘석유동맹’으로 인하여 미국경제의 경기지표가 늘 불안정하게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스라엘 탄생 60주년을 맞았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워싱턴 DC에선 이에 대한 찬반으로 큰 혼란이 있었다. 당시 투르먼 대통령은 유태인들의 주장인 분할에 동의했지만 국무부와 국방부는 유엔의 신탁 통지 안에 찬성을 하고 있었다. 국무부의 마셜 장관은 이스라엘의 독립국가 인정을 연기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대통령의 입장에 반대하고 나섰다. 아랍인들은 3000만이고 유태인들은 60만, 그리고 아랍계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 할 것이란 우려를 들고 나왔다. 미국의 안정을 위하는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유태인들의 편을 들고 나선 트루먼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은 국내정치 때문이었다. 대통령직 유지에 미국 내 유태인들의 지지와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엔 대통령의 입장이 관철되었다. 트루먼은 14일 오후6시11분에 유대국가의 독립을 인정했다. 텔아비브에서 ‘벤구리온’의 독립선언이 발표된 지 11분 뒤였다. 이래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한 최초의 국가 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로 날아갔다. 부시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민주당 후보가 될 바락 오바마의 대중동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인 아랍계 국가들이 오바마를 지지한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부시다운 논리이다. 공화당의 존 맥케인 후보가 기다렸다는 듯이 오바마의 정책은 이스라엘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고 헤즈볼라나 하마스가 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유태인들의 ‘오바마 길들이기”는 맥케인의 뒤편에 숨어든 네오콘들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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