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리더쉽의 철학(본질)
< 민주당의 실력자 임마누엘이 탄복한 오바마의 리더쉽 >
2006년 중간선거전에서 가장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시킨 지역은 일리노이주, 바로 시카고이다. 1991년 아칸소 사단에 합류하여 클린턴대통령 만들기의 공신이었던 이스라엘 이민자의 아들인 ‘라울 임마뉴엘’은 전국의 유태계 정치조직을 기반으로 2006년 중간선거 민주당선거대책위원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민주당은 ‘라울 임마뉴엘’의 지휘로 하원을 장악했다. 라울 임마뉴엘은 사회운동가 출신이다. 1980년대 중반 시카고지역에서 소비자권리운동으로 명성을 날렸다. 1985년 민주당선거대책위에 가담했고 1991년 클린턴 선거대책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리차드 Daley’ 시카고시장과 함께 일했었다. 1991년 중반 잠시 이스라엘로 귀국하여  걸프전에 가담하기도 했다. 클린턴의 측근이 되어서 백악관 실무핵심으로 일했다. 1999년 백악관을 떠나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왔다.

킹(클린턴)메이커였다는 자부심으로 스스로 선출직의 기회를 보게 되었다. 시카고 시장과 노동계의 지지를 기반으로 일리노이 제5지역에서 연방하원에 진출했다. 민주당이 완패했던 2002년 중간선거였다. ‘라울 임마뉴엘’은 이겨야 적성이 풀리는 승부욕의 사나이로 소문이 나있다. 정치권에서 특히 선거판에서는 그의 일 욕심과 추진력을 빗대어서 그를 다얀 장군의 “탱크머리”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영원한 참모에서 현역의원으로 정계에 복귀 했지만 전국정치판에 혜성같이 등장한 같은 지역내의 ‘바락 오바마’에 늘 주목했다. 자신보다 2살이 아래이지만 만날 때 마다 큰 정치인의 리더쉽을 발견하게 되었다. ‘라울 임마누엘’은 알게 모르게 점점 오바마의 사람이 되어갔다. 그가 힐러리 클린턴으로부터 오바마로 옮겨 간 것은 그것은 의지적으로 막을수가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오바마로부터 그러한 끌림을 고백한 사람들은 적지 않다.

이상과 철학이 같다고 일찍부터 오바마에 모든 것을 던진 데이빗 엑슬로드가 그렇다. 데이빗 엑슬로드는 2004년 기라성 같은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을 마다하고 당선의 가능성을 아무도 점치지 않았던 ‘바락 오바마’를 상원에 당선시켰다. 캠프를 구성해서 자신과 가장 신뢰관계의 파트너인 데이빗 플라프를 끌어 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모든 전략을 책임졌다. 데이빗 엑슬로드, 데이빗 플라프 그리고 바락 오바마 이렇게 세명은 서로가 눈 빛만 봐도 마음을 읽는다는 관계이다. 바락 오바마는 당선 연설에서 이들 세명을 특별히 거명했다. 이렇게 당선 연설에서 캠페인 전략가를 거명하는 예는 없던 일이다.

오바마의 리더쉽에 끌려서 그의 사람이 된 정치인들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일리노이주 제2지역구 하원의원이며 제시 잭슨목사의 아들인 ‘제시 잭슨 주니어’가 그렇다. 올해 43살인 제시 잭슨 주니어 하원의원은 흑인정치권의 1세대들이 오바마 지지에 머뭇거리자 그는 나서서 차세대 흑인지도자들을 대거 오바마 진영으로 끌어 들였다.

1996년 상원에 진출한, 지금은 오바마의 상원에서의 정치파트너인 “딕 더빈: Richard Durbin” 이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다. 필자는 ‘딕 더빈’ 의원을 지난 1월8일 뉴햄프셔 예비경선장에서 직접 만났다. 그는 필자가 뉴욕서 온 것을 짐작해서 힐러리 지지자로 알고서 오바마는 정당의 정치인들과 다른 후보이다. 그는 목표가 다르다. ”오바마는 당에서 내 세우는 후보가 아니고 국민이 추대하는 후보이다“ 라고 설명했다.

오바마에겐 사람을 빨아 들이는 흡인력이 있다. 현역상원 의원의 설명이 이럴 정도이다. 민주당 하원대표였던 ‘낸시 펠로시’는 2006년도 의회탈환의 임무를 ‘라울 임마뉴엘’에 맡겼다. 임마뉴엘은 부시의 대테러전의 실패를 공격하면서 선거자금 모금의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2006년 의회를 탈환하는 데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전국의 선거판을 총 지휘하면서 라움 임마뉴엘은 2004년 전국정치판에 혜성같이 등장한 “ 바락 오바마 ”를 십분 활용했다. 오바마의 지원유세는 공화당 강세지역을 민주당으로 돌려 세우는데에 특효를 발휘했다. 오바마는 대중판의 얼굴과 연설로 완벽했다. 더구나 그는 당시엔 지역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가장 앞장서서 반대한 정치인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오바마는 2004년 보스톤 전당대회에서 전국에 선을 보였고 2006년 중간선거전에서 대중 지도자로서의 실력을 발휘했다. 다수당인 공화당의 232석에서 20석을 빼앗아 왔다. 2006년 민주당이 233석, 공화당이 202석이 되었다. 적어도 15지역의 지지율의 반등은 ‘오바마“ 지원유세의 덕이었다.

오바마의 정치동지인 엑슬로드는 중간선거전을 통해서 전국정치판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일반 시민사회와 오바마가 자동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간파했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민주당 성향의 여론주도층(오피니언 리더)들이 오바마를 언급하는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중간선거 대승직후, 뉴스위크 기자의 물음에 “ 열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시카고의 어느 방송사 스튜디오 대기실이었는데 우연히 오프라 윈프리와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우리 일행을 알아보고 동석을 요청했습니다. 나와 오바마 단 둘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열명 정도가 되었지요. 모두가 오바마의 입에 주목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고 미소만 지을 뿐 이었습니다 오바마는 분위기를 이해하면 그냥 웃기만 하는 습관이 있지요.. ” 

 오바마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입장을 자기 정체성의 본질에서 밀착시기 위한 긴장을 조금도 늦추지 않는다.  맨하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가 시카고로 간 것은 그의 오랜 고민 끝의 결단이었다. ”혼자“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에 명확한 답을 내린 것이다. 1960년대 흑인민권 운동에서 쟁취한 투표권에 주목했다. 커뮤니티(서민사회)의 유권자운동을 통해서 서민사회를 사회중심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커뮤니티 활동의 중심은 유권자운동을 통한 ’정치참여‘였다. 흑인커뮤니티 빈곤의 악순환은 그를 가장 괴롭히는 부분이었다.

오바마가 전쟁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명분이 불분명한 것 이외에도 미국의 흑인 청소년들이  ”돈” 때문에 전쟁터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월남전을 반대한 킹 목사의 철학과 명분이 닿아있다. 주류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흑인이 적지 않다. 각 분야에서 성공한 흑인들이 많지만 오바마의 고민은 늘 ’평균적인 지위향상‘이었다. 그가 하버드 법대에서 책에 파묻혔지만 자기 개인과 흑인사회 그리고 흑인사회와 전체사회의 연관을 생각했다. 상층부에서 리더쉽을 발휘하는 역할도 있지만 본인은 “평균으로 간다” 를 결심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대권선언을 한 직후 필자는 오바마가 콜롬비아대학 재학시절 기숙했던 위치에서 할렘가 까지 몇 번이고 걸어서 다녀봤다. 지금은 맨하탄 125가 할렘이 번창해서 타지역에 비해서 오히려 경기가 활발하지만 당시엔 그야말로 길 하나 사이를 두고서 천국과 지옥이었다. 백인동네와 흑인동네의 차이뿐인데 그것이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었다. 필자는 흑인인 오바마가 여기를 와 보고서 얼마나 많은 비애와 갈등을 겪었겠는가를 상상해 보곤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필자는 오바마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의 정치행보에 쏠리게 되었다.  

콜린 파월이나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흑인 명성가들이 ’오바마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말 한마디로 수천만, 수억명의 마음을 움직이는 오프라 윈프리가 오바마를 지지한다고 선언하고서 그녀는 백인중산층 여성들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당했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막아 나섰다고 여성을 배반했다는 공격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 오바마에 대한 나의 평가와 지지는 역사적인 가치로 따져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선거일 꼭 열흘전에 공개적으로 오바마지지를 선언한 파월 장관은 오바마의 리더쉽은 역사(미국사회)발전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오바마의 대통령결심에 영향력을 행사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바로 오바마의 정치적 리더쉽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이러한 철학적 측면에 주목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비경선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지인 펜실베니아 경선을 일주일 앞둔 4월 중순에 오바마의 전략가인 엑슬로드는 뉴욕,필라델피아, 워싱턴DC의 아시안계 커뮤니티 활동가 100여명을 펜실베니아 주도인 해리스버그에 1박2일 초청했다. 오바마는 여러분들의 사회활동 목표를 위해서 함께 일하길 원한다, 그래서 오바마는 기존의 로비를 통한 시민사회와의 소통방식을 거부하고 커뮤니티 활동가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가면서 정책 브리핑을 했다.

지난 20여년동안 대통령선거 5번을 겪은 필자에게 이러한 현상은 처음이었다. 대선본부와 직접 접촉이 되고 대권후보를 유세장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되고 더구나 최측근 전략가의 초청을 받아서 마주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은 무엇인가 크게 다른 방식이다. 전국의 시민사회가 왜 오바마에 열광했는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오바마 리더쉽의 본질이 사회발전의 법칙에 합치 되었기 때문에 의지적인 사회활동가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진정한 지지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11월4일 당선이 확정되고 시카고 그랜드파크에서 당선연설을 했다. 엑슬로드는 연설문을 검토하면서 오바마와 깊게 공감했다고 한다. “정직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그렇게 가야 한다는 이제까지의 원칙에서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오바마는 당선 연설에서 “  메인스트릿(서민층)의 고통으로 월스트릿(부자층)이 풍요로울수는 없습니다. ”고 선언했다. 오바마는 침착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때에 더욱더 여러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 But I will always be honest with you about challengs we face. I will listen to you, especially when we disagree )”. 오바마의 리더쉽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의 어떤 성품이 국민들에게 이렇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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