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6일 오바마가 맨하탄의 할렘을 찿았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을 하고서는 가장 먼저 달려오고 싶었던 곳이다. 1980년대 콜롬비아대학에 재학할 때 이곳을 자주 찾아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고 인종과 빈곤이란 문제에 많은 고민을 하도록 한 정신적인 고향이었다.

그가 대학을 다닐때에 그곳은 125가를 사이에 두고서 한쪽은 천국이고 한쪽은 지옥이었다. 단지 흑인과 백인동네라는 차이 뿐이었다. 청년기때 ‘실존’에 대한 고민을 신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해서 의식을 굳건히 한 곳이다. 오바마는 백인동네와 흑인동네의 차이를 아침저녁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자신의 삶을 공적인 영역에 결합시키겠다고 바로 이곳에서 결심을 했다.

그래서 오바마는 콜롬비아를 떠나서 시카고에서, 보스톤에서 그리고 지역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가장 그리워 했던 곳은 맨하탄의 할렘이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대권선언을 하고서 10개월이 지나고서야 맨하탄 할렘을 찾았다. 20년 만에 오바마가 찿아온 맨하탄 할렘의 아폴로 극장은 1960년대 흑인문화의 상징인 곳이다. 말콤 엑스가 뒷골목에서 헤매다가 철들은 곳이고 킹 목사가 미국의 본질을 파헤치고 멧세지를 달리한 곳이기도 했다. 흑인들의 영웅이었던 킹 목사와 말콤 엑스 이후 40년만에 대통령에 출마한 흑인후보가 아폴로 극장에 나타났다.

말콤 엑스가 흑인들의 분노를 폭팔 시켰던 아폴로 극장의 바로 그 무대에 오바마가 올라섰다. 겨우겨우 극장2층 난간에 입장한 필자에게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을 앞둔 정치후보자가 아니었다. 흑인 특유의 커다란 몸동작을 하면서 껑충껑충 무대에 뛰어 오른 오바마는 몸짓과는 달리 비장하고 엄숙한 표정이었다. 2층 난간에서 필자는 그의 카리스마에 완전히 넉을 잃고 말았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선지자 같은 이미지였다. 그는 흑인사회의 완전한 세대교체를 알리고 있었다.

지금도 미국의 흑인 사회는 1960년대 킹목사의 민권운동세대들이 리더쉽을 움켜쥐고 있는 형편이다. 정치권에선 더욱더 그렇다. 제시 잭슨, 앤드류 영, 찰스 랭글, 조 루이스…등등 이들 흑인 정치지도자들은(연방급 의원) 거의 모두가 1960년대 민권운동 세대들이고 좀처럼 은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바마가 뉴욕의 맨하탄을 오기까지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한번 진입하면 세력을 규합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뉴욕의 흑인사회는 이미 힐러리 클린턴의 수중에 들어있었다. 더구나 빌 클리턴 대통령은 은퇴한 후에 자신의 사무실을 바로 할렘의 아폴로극장 옆에 마련하기도 했다. 힐러리도 마찬가지이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흑인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흑인 지도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예비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부터 오바마의 폭풍이 불어 닥쳤다. 오히려 백인들의 지지세가 더 급증하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클린턴의 수하에 있는 흑인지도자들은 미동도 없었다. <사실, 전략적으로 백인들의 지지세를 먼저 끌어 올렸기 때문에 무난하게 바람을 몰고 다닐 수 있었지만…이것은 계획된 전략은 아니었다고 그의 전략가 엑슬로드는 밝혔다. >

  오바마 열풍이 서서히 불어 오르기 시작할 때인 2007년 상반기 내내 필자는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워싱턴 의회에 거의 상주했었다. 흑인의원들을 만날 때 마다 누구를 지지 하는가?를 물었는데 오바마의 가능성을 점치는 흑인 의원이 거의 없었다. 당의 권력은 거의 완벽하게 힐러리의 것이었다. 오바마는 이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오바마 캠프가 1월3일 아이오와 당원대회부터 6월3일 힐러리가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당 간부와 연방급 의원으로 구성되는 당연직대의원(수퍼델리게이트)에 관해서는 단 한 번의 언급도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위안부결의안을 추진할 때 외교위원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해준 하원외교위의 아태소위원장인 ”애니 팔레오마베가“ 의원만이 공개적으로 2007년 3월초부터 ” 오바마시대가 오고있다  ” 를 이야기 하는것이 전부였다. 흑인이 아니면서도 연방하원중에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의원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특별한 능력은 (주류사회의 특별한 일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공적인 사회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바마는 자신이 ‘혼혈 흑인’임을 냉정하게 자각했다. 그때를 자신이 철이 든 때라고 했다. 개인이 특출하게 튀어 오르는 길을 거부했고 집단사회의 평균적인 지위상승에 집착했다. 그러한 의지로 그는 삶의 목표를 확고히 했으며 그의 삶의 목표는 미국이란 거대한 사회의 희망으로 다가왔다.

백인동네에 산다고 한국인이 한국인이 아닐 수는 없다. 어머니가 언챙이라고 밖에 나가서 우리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이 사람이겠는가? 오바마의 자각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흑인이 흑인임을 분명히 했을 때에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미국 역사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기간 중에 오바마에 열광한 한인2세들의 이야기에 끝이 없다.  ‘하버드법대’(명문대)란 학력을 동포사회 미래에 기꺼이 투여하는 한인2세들이 눈앞에 보인다. 그들이 왜 오바마를 따라 배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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